한국 소설가 116

권비영 장편소설 <하란사>

작가의 말 (…) 자료는 여기저기 조금씩 흩어져 있었지만, 정작 알고 싶은 사실들은 알 길이 없었다. 거기에 상상력을 입혀 나라 위해 독립운동을 하고, 여성 교육에 힘쓴 란사의 일생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고백하건대, 나는 어떤 인물에 푹 빠지게 되면 거의 무아지경이 된다.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란사 이야기를 하고 자료를 구걸하고 꿈에서도 그녀를 찾아다녔다. 『덕혜옹주』를 쓸 때와 비슷한 증세였다. 쓰는 동안 캄캄한 밤길을 걷는 듯한 느낌에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내 몫의 ‘하란사 찾아내기’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초고를 완성하고, 원고를 다듬는 동안 그녀는 내 안에 머물렀다. (…) 2020년, 그녀의 위패가 현충원에 모셔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현충원으로 달려갔다. 그녀를 본 듯이 반..

한국 소설가 2021.07.09

공애린 장편소설 <가면올빼미>

작가의 말 기온의 급강하로 정릉천 자전거 도로가 눈에 띄게 한산해졌던 지난 겨울의 어느 날, 악조건 속에서도 굳이 위험한 하천가로 내려가 꽁꽁 얼어붙은 냇물을 돌멩이로 두드리고 있는 한 남자를 보았다. 처음엔 의아해서 내심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수초 후 나도 모르게 돌멩이에 머리를 맞은 듯 신선한 충격에 젖어 들게 되었다. 남자야말로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의 후예가 아닐까? 어쩌면 그는 극지방의 빙하코어 같은 자신의 뇌를 두드려 그 안에 웅크린 낡은 가치관을 과감히 깨부수고 있는 걸까? 1.5 킬로그램의 작은 우주로 불리는 인간의 두뇌는 스트레스에서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우울의 늪에 빠져드는 방어기제를 택한다고 한다. 최소한의 에너지와 동선으로 위험에서 멀어지기 위해. 하지만 뇌는 이기적이다. 힘겹게 균..

한국 소설가 2021.07.08

백정희 소설가 소설집 <가라앉는 마을>

삶의 존재 근거를 향하는 아득한 길 백정희 작가의 소설집 『가라앉는 마을』이 푸른사상사에서 출간되었다. 구조적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한 삶의 현장을 목도하며 섬세한 필치로 그려낸 소설 8편을 소설집에 실었다. 계급과 자본의 논리로 작동하는 현실에서 고통 받는 민중들의 고통을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외된 자들을 껴안는다.

한국 소설가 2021.06.08

한국 소설가 신간 박충훈 소설집 <사랑, 행복을 읽는 시간>

사랑 행복을 읽는 시간 박충훈의 소설은 일단 손에 잡으면 술술 읽힐 정도가 아니라 흥미진진하여 그냥 빠져들어 찔끔거리는 오줌도 미룰 지경이다. 보통사람들의 세상의 뒷이야기를 박충훈처럼 구수하면서도 속 시원하게 확 털어놓는 예는 흔치 않다. 이번 소설집에는 보통사람들의 삶을 황폐화시키는 인간답잖은 존재들의 악바리 같은 염치없는 뻔뻔스러움 앞에서 분노와 증오를 넘어 ‘저주’에 이르는 미세한 감정을 파헤치고 있다. 아무리 정직하고 착하게 살아가려고 해도 좀비처럼 번지는 악의 무리들이 횡행하고, 믿었던 법조차도 악의 편을 옹호해버리는 절망감이 ‘저주’를 낳는다. 그것은 장엄한 비극이 아니라 코미디 같은 희극으로 우리 시대를 범람하고 있다. -임헌영 (문학평론가)

한국 소설가 2021.04.27

한국 소설가 신간 정승재 소설집 <로체가 있던 자리, 금호동>

■ 추천의 글 오랜만에 작가의 새로운 소설을 만난다. 먼저 이 소설은 요즘은 보기 어려운 활력의 전지적 시선을 우리에게 전한다. 주인공의 무대도 여러 곳이지만 같은 주인공도 분해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연작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는데, 이 또한 쉽게 단정 지을 수 없다. 이야기조차 하나의 궤도 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머 소설의 일종으로서 철학적 분석을 소설이라는 형태로 변형시키고 있는 듯도 하다. 전체적으로 보면 내용은 사랑의 탐구라 하겠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형식이 사색의 탐구로 흐른다. 아무쪼록 특징 있는 소설을 접하며 그 문장에 눈길을 다시 준다. _윤후명(소설가)

한국 소설가 2021.04.23

한국소설가 신간 '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김호운 장편소설 <장자의 비밀정원>

김호운 작가의 장편소설로 장자의 ‘나를 죽여야 나를 찾는’ 오상아(吾喪我)의 세계를 소설로 구성하고 있다. 오상아의 세계란 사람이 행동하고 의식하는 데 있어서 제약과 장애가 되는 모든 요소를 없애 버린 완전히 자유로운 경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가 지닌 마음, 욕망, 감정 같은 것을 모두 없애 버려야 한다. 심지어는 자기의 의식이나 존재까지도 잊어야만, 즉 나까지도 죽여야 비로소 완전한 자유의 경지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장자의 비밀정원』은 요·순시대, 춘추전국시대 등 이곳저곳을 비행하는 나비를 화자로 내세워 ‘사람답게 세상으로 가는 길’을 제시하는 장자의 철학을 재조명하고 있다. 화자인 나비가 네 곳의 비밀정원을 드나들며 욕심을 버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며 본성으로 살아야 한..

한국 소설가 2021.04.19

한국소설가 신간 제8회 직지소설문학상 수상작 '노령' 작가 장편소설 <청주>

노령 작가의 소설 청주(淸州)는 2020 ‘제 8회 직지 소설문학상 수상작품’으로 금속활자와 직지코드의 역사적 심층을 심도 있게 형상화하여 직지의 옛 기억과 청주의 현재적 경험들을 종과 횡으로 엮어 가독성과 실감을 높인 점이 눈에 띈다. 심사위원들은 작품이 가지는 문장의 안정성과 주제의 구체성, 그리고 공적인 상징 등이 밀도 높은 결속력을 갖추고 있다고 평가하고 제8회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작가는 앞으로 한국 소설의 발전과 심화를 위한 더욱 심도 있는 진경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 소설가 2021.04.16

제2회 무예소설문학상 대상 수상작 <용천검명>

이 소설은… 2020 무예소설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임경업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풍부한 사료와 현장탐사를 바탕으로 한 서사의 힘이 뛰어난 역사소설이자 무예의 본령을 다룬 무예소설이다. 선조와 인조시대 왜적과 오랑캐에 짓밟혀 풍전등화와 같았던 시기의 무사였던 임경업 장군과 그의 호위무사이자 책사인 매환(梅環)을 중심인물로,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무예인들의 삶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치밀한 고증과 탄탄한 문장력이 뛰어나 한국 무예소설의 선두가 될 만한 작품이다. 책을 많이 읽은 시인이자 무사였던 임경업은 우리의 전통무예 수박희(手搏?)를 되살려 나라를 지키는 전장에서 참된 용기로 앞장서 수많은 무예인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그를 따른다. 그의 정인인 매환은 왕조실록에도 이름을 올린 협부(俠婦)이다. 호..

한국 소설가 2021.04.16

유시연 소설가 <이태리에서 수도원을 순례하다>

유시연의 기행에세이 『 이태리에서 수도원을 순례하다』(리토피아)가 나왔다. 이 책에는 칼라사진 150여 점과 작가의 여행지에 대한 단상이 실려 있다. 오래전 수도자를 꿈꾸었던 작가는 짧은 수도생활을 접고 작가로서의 삶을 지속하다가 회자정리의 심경으로 로마 수도원을 향한 여정을 시작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로마 FMM 수도원에 온 후 삼십여 년 전 함께 생활했던 이냐케 스페인 수녀를 만나는 장면은 생의 불가해함을 떠올리게 한다. 창립자 수도원장의 석관 앞에 무릎 꿇은 작가의 머릿속으로 지난 인생이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수녀원 성당에서 수도공동체 회원들과 함께하며 작가는 오래전 ‘가지 않은 길’에 대해 비로소 대면한다. 어쩔 수 없이 먼 길을 돌고돌아 한때의 열정이 녹아 있는 수도원에서 지나온 시..

한국 소설가 2021.04.16

김영민 소설가 <종각역>

이 소설은 김영민 작가가 세 번째 펴내는 작품집이다. 소설집 『카모테스』에서 관조의 우아한 시선으로 독특한 미학적 효과를 보여준 작가는 이번 소설집 『종각역』에서 죽은 자(낯선 것)들과 산 자(익숙한 것)들의 기이한 결합의 환상성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표제작인 「종각역」에서 나는 낮과 밤에 알바를 하면서 악착같이 살다 사고를 당해 죽지만 죽은 사실을 모른 채 이승과 저승의 중간지대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만난다. 익숙한 지명 때문에 한 번쯤 걸어봤을 그 ‘종각역’을 떠올리던 독자들은 그곳의 전혀 낯선 분위기에 호기심과 두려움을 느끼면서, 주인공이 죽었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으며 놀라움도 절정에 다다른다. 그래서 ‘종각역’이라는 익숙한 공간은 사건의 서술을 넘어서는 낯선 맥락으로 독자들을 압도한다. 죽은..

한국 소설가 2021.0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