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평 등대
원평 등대
원평항의 가을하늘이 바다와 어울려 파란 세상을 시원하게 펼쳐보였다. 섬섬히 떠있는 무인도 앞으로 방파제가 두 마리 용처럼 기다랗다 누워있었다. 좌측 방파제는 빨간 등대를 왕관처럼 쓰고 있고 우측 방파제는 하얀 등대를 머리에 마법사의 모자처럼 쓰고 있었다.
나는 낚싯대를 메고 빨간 등대 방파제 끝으로 자전거를 타고 갔다. 진돌이가 숨을 헐떡이며 자전거를 쫓아왔다. 우리 동네에서는 내가 유일한 어린이다. 친구 없이 혼자 노는 것이 안쓰러워 아빠가 진도에 사는 친구 분에게 부탁해 순종 진돗개 진돌이는 데려왔다. 방파제가 가까워질수록 진돌이가 날뛰며 짖었다. 방파제 끝 빨간등대 아래 내 나이또래 여자아이가 까만 강아지를 안고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아지가 먼저 우리를 보고 사납게 짖어댔다. 여자아이가 나와 진돗개를 보고 움찔움찔했다.
날뛰는 진돌이 목줄을 자전거에 묶자 여자아이가 다소 안심하는 눈치였다. 까만 강아지는 계속 짖으며 사납게 굴었다. 여자아이가 나와 진돌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 얘와 눈이 마주치자 괜히 얼굴이 붉어지고 귀밑이 화끈거렸다. 그리고 힘껏 달리는 자전거 바퀴처럼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걔는 꼼짝 않고 앉아있었다. 나는 낚싯대를 챙겨 토끼마냥 빨간등대 앞 테트라포드 구멍을 찾아다니며 우럭 낚시를 시작했다.
여자아이는 신기한 듯 나를 계속 쳐다봤다. 멋지게 커다란 우럭 한 마리 낚아 보이고 싶었다. 그럼 여자아이가 말이라도 걸어올 거 같았다. 그러나 날마다 그렇게 잘 물던 우럭이 입질 한 번 안 했다. 나는 뒤통수가 따끔거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얼굴만 붉어졌다. 까만 강아지는 나를 향해 멈추지 않고 짖어대 화가 치밀었다.
여자아이에게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까만 강아지 때문에 부끄럽고 창피해서 낚싯대를 거둬 서둘러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오면서 몇 번이나 뒤돌아보았지만 여자아이는 한 번도 쳐다보지 않았다. 멀리 수평선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애는 하얀 얼굴에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내가 상상하는 천사 같았다. 일 년 내내 빨간등대 방파제에서 낚시를 해도 내 또래의 여자 아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 처음으로 나타난 아이였다. 내 인생 열 살 동안 처음으로 느끼는 마음의 혼돈이었다. 다음 날은 꼭 커다란 우럭을 낚아 여자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다음 날 학교가 끝나기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다 자전거가 부서지도록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돼지저금통을 흔들어보았다. 묵직하게 동전이 흔들렸다. 나는 주저 없이 칼로 돼지저금통을 찢었다. 우르르 백원짜리 동전이 쏟아졌다. 천원짜리 지폐도 두어 장 있었다. 나는 돈을 들고 낚시점으로 달렸다. 갯지렁이 한 통을 사고도 돈이 남았다. 우럭을 낚아 그 여자아이에게 반드시 보여주고 싶었다. 남은 돈으로 낚싯바늘도 새 걸로 사고 낚싯줄도 새로 샀다. 그리고 천 원이 남았다. 나는 여자아이가 안 나왔으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바람처럼 빠르게 자전거를 몰았다. 길옆의 풀들이 빠르게 뒤로 사라졌다.
집으로 돌아와 낚싯대를 챙기고 비싼 갯지렁이를 챙겨 자전거를 몰고 빨간등대 방파제로 달렸다. 진돌이는 나를 앞질러 꼬리를 흔들며 뛰었다. 방파제 시작부터 진돌이가 짖기 시작했다. 여자아이와 까만 강아지가 방파제 끝에서 놀고 있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나를 보고 놀라 강아지를 껴안았다.
다행히 진돌이가 어제처럼 날뛰지 않고 얌전히 까만 강아지만 쳐다봤다. 진돌이도 친구가 생겨 반가운 모양이었다. 나는 그 여자아이를 보자 다시 얼굴이 빨간등대처럼 붉어졌다. 여자아이는 어제보다 훨씬 경계심이 적어보이고 진돌이가 얌전하게 굴자 쓰다듬으며 진돌이에게 이름을 물었다.
“흰둥아! 너는 이름이 뭐야?”
대답은 내가 했다.
“진돌이, 진도에서 온 순종 진돗개.”
여자아이는 내가 아닌 진돌이 눈을 보고 얘기했다.
“착하게 생겼네.”
그리고 까만 강아지를 소개했다.
“까만이는 이름이 초랭이야, 그리고 푸들 순종이야.”
나는 이름이 초랭이라는 소리에 웃음이 나왔다. 여자아이가 나를 째려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왜 웃어?”
나는 대답하지 않고 끽끽거리며 낚싯대를 챙겼다. 어느 물때보다 물고기가 잘 잡히는 초들물이었다. 빨리 그 여자아이에게 낚시 실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여자아이가 말을 걸어오자 알 수 없이 기분이 좋았다. 여자아이는 초랭이를 안고 서 있고 그 옆에 진돌이가 쪼그리고 앉아 나를 지켜봤다.
갯지렁이를 낚싯바늘에 끼우고 테트라포드 사이를 짱뚱어처럼 뛰어다니며 구멍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 우럭을 유인했다. 그러나 급한 마음과 다르게 전혀 입질이 없었다. 나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우럭을 낚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여자아이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나에게 관심을 더 이상 두지 않았다. 진돌이와 초랭이하고 셋이서 방파제를 뛰어다니며 즐겁게 놀고 있었다. 우럭은 해 뜰 때하고 저녁노을이 물들면 잘 물었다. 매일 한두 마리는 꼭 낚았다. 그런데 여자아이가 나타나고는 한 마리도 못 잡았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왔다. 여자아이는 방파제에 남아 바다를 멀리 바라보고 초랭이는 방파제를 뛰어다녔다. 내가 출발하자. 진돌이는 어쩔 줄 몰라하며 자전거를 따라오다가 다시 초랭이를 향해 뛰어가고 내가 부르면 다시 뛰어왔다.
내가 뒤돌아보자 여자아이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나는 너무 좋아 미소가 멈추질 않았다. 웃느라 자전거가 요리저리 비틀거렸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 했다. 그래도 나는 너무 좋았다. 심장이 콩닥콩닥 거리고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원평항이 그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었다. 다시 뒤돌아보면 빨간등대가 춤을 추는 것 같았다.
나는 손을 흔드는 그 여자아이의 얼굴이 떠올라 뒹굴고 뒹굴다 한숨도 못 잤다. 여자아이는 어디서 왔고 왜 왔을까?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그 여자아이가 우리 동네로 이사 왔다면 나에게도 친구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고 십 년 만에 처음으로 함께 놀 친구가 생기는 즐거운 일이다.
나는 밤새 여자아이를 어떻게 즐겁게 해줄까 고민하다 최고로 즐거운 놀이를 생각해 냈다. 진돗개의 묘기를 보여주면 여자아이가 깜짝 놀랄 거 같았다. 다음 날도 학교가 끝나기 무섭게 자전거를 타고 빨간등대로 갔다. 진돌이는 너무 빨리 나를 앞질러 달리다 한참 앞에서 잠깐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자전거가 다가가면 또 달리고를 반복했다.
우리가 달려가자 등대 아래서 초랭이가 짖어대기 시작했다. 여자아이도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파제에 도착하자 여자아이가 반가운 친구를 만난듯 웃으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안녕! 너는 이름이 뭐야?”
“응 나는 송바다.”
“그래 나는 신나라.”
여자아이는 이름이 신나라이고, 열 살 나하고 동갑이었다. 서울에서 엄마 아빠하고 함께 왔다고 했다. 하지만 왜 왔는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방파제는 밀물이 만조 때라 물이 찰랑찰랑 거렸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테니스공을 꺼내 바다로 던졌다. 공이 물에 떨어지자 진돌이가 바다로 뛰어들었다. 나라는 진돌이가 물에 빠진 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러나 잽싸게 헤엄쳐 가서 공을 물어왔다. 진돌이가 방파제로 올라와 공을 나에게 주고 여자아이 앞에서 몸을 털었다. 털에 묻은 물이 사방으로 털리며 신나라가 물벼락을 맞았다. 초랭이를 내려놓고 손으로 옷을 떨며 웃었다. 나는 다시 한 번 더 멀리 공을 던졌다. 진돌이는 또 잽싸게 헤엄쳐 가서 공을 물어오고 초랭이는 요리조리 뛰며 방파제 끝에서 진돌이를 기다렸다.
나는 이번에는 멀리 던지지 않고 가깝게 던졌다. 진돌이가 바다로 뛰어들고 초랭이도 진돌이를 따라 바다로 뛰었다.
나라가 놀라서 벌쩍벌쩍 뛰었다.
“우리 초랭이는 수영 못해.”
“......”
“바다야! 빨리 초랭이 구해 줘!”
그러나 초랭이는 지친 진돌이를 재치고 테니스공을 물어왔다. 나는 모든 개는 개헤엄을 친다는 것을 안다. 개들은 수영을 잘한다. 나라는 초랭이가 방파제로 올라오기 무섭게 가서 안았다. 초랭이가 나라 품에서 짠물에 젖은 몸을 털어 얼굴까지 물투성이가 되었다. 나라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초랭이를 안고 행하니 가버렸다. 나는 나에게 화가 났다. 멍청한 짓해서 나라를 화나게 한 게 원망스러웠다. 다시는 안 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다.
나는 나의 머리를 주먹으로 치고 죄 없는 자전거를 발로 찼다. 얼마나 세게 찼는지 발가락이 부러진 것처럼 아팠다. 나는 테니스공을 힘껏 아주 멀리 바다 수평선을 향해 던져버렸다. 진돌이가 방파제 끝에서 공을 향해 짖어댔다. 힘없이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왔다. 진돌이도 풀이 죽어 뛰지 않고 천천히 걸었다.
다음 날은 조심스럽게 빨간등대로 나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멀리서 방파제 끝을 바라보았다. 다행히도 나라와 초랭이가 등대 아래 앉아있었다. 진돌이가 총알같이 달려가고 초랭이가 꼬리를 치며 진돌이를 반겼다. 나라도 나를 보고 웃어주었다.
나라가 조개처럼 입을 쪼금 열었다.
“어제는 정말 놀랐는데, 초랭이가 수영을 한다는 것이 신기해!”
나는 날아갈 듯이 기뻤다. 나라가 웃어주고 화를 풀어 정말 좋았다.
나라는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왜, 빨간등대와 하얀등대가 마주보고 있어?”
나는 자신 있게 알려주었다.
방파제 끝에는 등대가 두 개 있는데 항구에서 좌측 방파제는 빨간등대가 있고 우측 방파제는 하얀등대가 있어 배들은 항구로 들어올 때 빨간등대와 하얀등대 사이로 들어와야 한다. 깜깜한 밤이나 안개가 짙은 날에는 수 미터 앞도 안 보이기 때문에 방파제에 배가 부딪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빨간등대와 하얀등대를 세우고 밤에는 빨간등대에 홍색 불을 밝히고 하얀등대는 청색 불을 밝혀 배의 항로를 알려준다.
비금도 웑평항
나라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 건너편 방파제 하얀등대를 가보고 싶다고 했다.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하자 나라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나는 자전거 뒷자리에 나라를 태우고 서서히 페달을 밟았다. 개들은 장난치며 자전거를 앞서 달렸다. 시멘트포장이 군데군데 파여 자전거가 뚱뚱 튀었다. 자전거가 흔들릴 때마다 나라는 내 허리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나의 등에 머리를 기댔다. 나라가 껴안을 때마다 커다란 우럭이 물었을 때 손맛이 오는 것처럼 가슴이 마구 떨렸다. 더구나 나라가 머리를 등에 기댈 때는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 내 마음을 들킬까봐 숨도 크게 못 쉬었다.
나는 흔들리는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굴렸다. 나라는 자전거가 흔들리면 “아야!” “엄마야!” 소리치며 나를 더욱 꼭 껴안았다. 진돌이와 초랭이는 길을 벗어나 원평항의 갯벌로 뛰어다녔다. 아무리 불러도 두 마리 다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썰물에 물이 빠진 원평항은 갯벌이 드넓게 펼쳐졌다. 나는 하얀둥대로 이어진 방파제에 자전거를 세우고 개들을 잡으러 가고 나라도 나를 따라 갯벌로 들어왔다. 개들은 개펄을 뛰어다녀 두 마리 다 뻘 투성이었다.
나라가 갯벌에 미끄러워 넘어지자 나는 나라 손을 잡아 일으키려고 손을 뻗었다. 그때 별안간 나라가 뻘을 한 주먹 던졌다. 나는 피하려다 넘어져 나라를 향해 뻘을 한 움큼 던졌다. 나라의 얼굴에 명중하자 나라는 화가 난 듯 나를 향해 마구 뻘을 던졌다.
우리는 진돌이와 초랭이를 향해서도 뻘을 뿌렸다. 개들도 날뛰며 우리 넷은 뻘싸움으로 눈만 반짝일 뿐 온몸이 뻘 투성이었다. 나라가 웃을 때면 이빨만 하얗게 보였다. 옷이 뻘 범벅이 된 우리는 몸이 무거워 걷기도 힘들었다. 진돌이는 털에 뻘이 붙어 제대로 걷지 못하고 초랭이는 뻘에 돌돌 말린 거 같았다.
하얀등대로 이어진 방파제 반대편은 원평항과 다르게 방파제 하나 사이로 모래밭이 넓게 펼쳐진 해수욕장이었다. 수심이 얕아 멀리 들어가도 무릎이 찰까 말까했다. 나는 나라와 개들을 데리고 해수욕장으로 들어갔다. 초가을이라 바닷물은 차갑지 않았다. 날씨에 비하면 시원하기까지 했다. 개들도 물속을 뛰어다니며 털에 붙은 개펄을 떨었다. 나라와 나는 물싸움을 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개펄을 씻어주고 개들 목욕도 시켰다.
나라와 나는 윗옷을 벗어 빨아 털고 바지는 입은 채로 물속에서 비벼 빨았다. 나라는 속옷을 입고 있었지만 나는 알몸이었다. 나라 얼굴이 붉어졌다. 나는 부끄러워 얼른 옷을 입었다. 나는 지금까지 혼자 수영하면서 홀딱 벗고 했어도 창피한 거를 몰랐다.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나라 앞에서 옷을 벗고 알몸으로 서 있기가 부끄러웠다. 나는 빨간등대처럼 온몸이 빨개졌다. 부끄럽고 창피하기도 해 원평해수욕장을 달렸다. 개들이 나를 따라 뛰고 나라도 개들을 쫓아 달렸다.
우리는 장고도 방파제 끝까지 가서 장고도 갯바위를 걸어갔다. 갯바위에는 움푹움푹 파인 웅덩이에 물이 고여 말미잘이나 게 그리고 작은 물고기들이 썰물에 갇혀 있었다. 나라가 말미잘을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자 한순간에 몸을 움츠리며 바위 속으로 숨었다. 나라는 돌 틈에 숨어 있는 게한테 손가락을 물리고 게는 집게발에 힘을 주고 떨어지려하지 않았다.
나는 게의 집게발을 잘랐다. 그제야 게가 나라 손가락에서 떨어졌다. 나라 손가락에서는 피가 났다. 나는 피가 멈추도록 꼭 쥐고 있었다. 나라가 아파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주며 오랫동안 나라 손가락을 잡고 있었다.
방파제 중간이 끊어져 있어 하얀등대까지는 갈 수가 없다. 나는 자전거에 나라를 태우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페달을 함차게 굴렀다. 나라가 두 손으로 내 배를 꼭 껴안으며 등에 기댔다. 나라의 몸이 따뜻했다. 진돌이와 초랭이도 신나게 달렸다.
다음 날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 소시지 세 개를 샀다. 소시지를 호주머니에 담고 자전거를 몰고 나는 방파제로 달렸다. 진돌이도 빠르게 쫓아왔다. 나는 등대 아래 앉아 있는 나라에게 소시지 하나를 주고 나도 하나 먹었다. 마지막 소시지를 뜯어 반 토막으로 잘라 초랭이에게 먹였다. 그리고 반 토막은 진돌이에게 던졌는데 초랭이가 날름 먹어버렸다. 그 순간 진돌이가 초랭이 목덜미를 덥석 물었다. 초랭이 목덜미에서 피가 흘렀다. 놀란 나라가 울며 초랭이를 안고 뛰어 가버렸다. 나는 화가 나서 진돌이를 걷어찼다. 깨갱거리며 도망가 자전거를 타고 쫓아갔지만 진돌이는 보이지 않았다.
다음 날은 방파제에 나라와 초랭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진돌이가 미웠다. 다가오지 않고 진돌이는 멀리 떨어져서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 다음 날도 방파제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진돌이 밥통을 걷어차고 밥을 주지 않아, 낑낑거리며 밥통 앞을 어슬렁거렸다. 그날 진돌이는 종일 굶었다.
토요일엔 커다란 우럭을 꼭 낚아 나라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나는 일찍 방파제로 나갔다. 물때가 아주 좋았다. 특별한 미끼로 오징어를 준비해 테트라포드 구멍을 찾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우럭의 입질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고 묵직한 입질이 왔다. 낚싯대가 쭉 끌려들어가는 순간 챔질했다. 낚싯대가 활처럼 휘어지며 물고기가 버텼다. 힘을 쓰는 것이 커다란 우럭이 분명했다. 한참을 버티다 끌려나온 고기는 삼십 센티가 넘는 팔뚝만한 놀래미였다.
나는 어망에 담아 바다에 띄워놓았다. 진돌이는 방파제에서 졸고 있었다. 나는 눈이 빠지게 나라와 초랭이를 기다렸다. 낚시를 하면서도 눈은 방파제 입구에 있었다. 해가 뜨고 한참 지난 후에 진돌이가 짖으며 달려갔다. 나라가 초랭이를 데리고 빨간등대로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나라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나라가 등대 아래까지 와 손을 살짝 들어 인사했다. 나는 신이 났다. 나라가 지켜볼 때 우럭을 잡고 싶어 놀래미가 나온 구멍을 계속 노렸다.
물고기는 있는 곳에 모여 있다. 나라가 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입질이 왔다. 낚싯대가 꾹꾹 박혔다. 나는 입질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낚싯대가 부러질 듯 휘어졌다. 바위틈에서 요동치던 커다란 우럭이 팔딱이며 올라왔다. 정말로 개 머리통만한 통통한 우럭이었다.
나라가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우와! 진짜 크다.”
“......”
“우리 엄마 끓여주면 좋겠다.”
나는 우럭을 어망에 담아 바다에 던지고 나라 곁으로 갔다. 그리고 옆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방파제 앞에는 우세도와 소우세도가 아빠 엄마처럼 떠있고 그 사이에 동구도가 아이처럼 앉아 있었다.
나는 손가락으로 바다에 떠 있는 섬들을 가리키며 다도해 얘기를 들려주었다.
다도해에는 1004개의 섬이 보석처럼 푸르게 박혀있어서 신안군을 “천사의 섬”이라고 불러 그리고 지구상에 가장 커다란 다이아몬드가 다도해에 있는데 1004개의 섬이 모여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보이기 때문에 다도해를 다이아몬드 제도라고 부른다.
나라가 고개를 끄덕이자 물었다.
“서울에서 왜 왔어? 아빠 엄마는 뭐해?”
나라는 천천히 얘기했다.
“엄마가 암에 걸려 많이 아파 그래서 요양하러 왔어, 아빠는 엄마 간호를 위해 직장을 휴직하고 왔어, 나는 엄마 아빠를 따라 왔고, 펜션에 방을 얻어 지내며 아빠하고 홈스쿨링으로 공부한다. 우리 엄마는 학교 선생님이었다.
나는 우리 아빠와 엄마는 작은 주낙배로 간재미와 장어를 잡는 어부라고 말하고 요즘은 엄마가 아파서 아빠 혼자는 고기를 잡을 수 없어 사람을 구할 때까지는 고기를 잡으러 못 간다고 말했다.
나는 우럭하고 놀래미를 나라에게 주며 펜션에 가서 엄마아빠하고 회 떠먹으라고 했다. 나라는 굉장히 좋아하며 어망 채 들고 초랭이와 함께 뛰어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진돌이와 집으로 돌아오며 나라 엄마와 아빠에게 칭찬받을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다음 날 아빠는 어부를 구했다고 일찍 조업을 나갔다. 비금도 앞 바다를 훤히 들여다보는 아빠는 원평항에서 알아주는 어부로 언제나 고기를 제일 많이 잡아왔다. 나는 학교 끝나고 방파제로 달려나갔다. 빨간등대 아래 나라와 초랭이가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돌이가 초랭이를 핥으며 난리쳤다.
나라가 작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우리 아빠 바다로 고기 잡으러 갔다.”
나는 단번에 아빠가 구한 사람이 나라아빠라는 것을 알았다. 이 작은 어촌에 외지인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럼 우리 아빠 배를 타고 함께 갔을 거야!”
나라가 놀라며 말했다.
“그럼 많이 잡아 왔으면 좋겠다.”
우리는 배를 기다리며 등대 아래 앉아 노래를 불렀다. 개들도 따라 짖었다.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 멍멍! 멍멍~ 우리는 여러 번 반복해서 불렀다. 바로 앞의 하얀 등대에 불이 들어왔다. 낮에는 보이던 우세도와 소우세도가 보이질 않았다. 바다 쪽에서 방파제로 구름처럼 안개가 몰려와 순식간에 방파제와 항구를 덮었다. 아빠는 늦어도 해질녘에는 항구로 돌아오는데 밤이 되어도 우리 주낙배는 나타나지 않았다.
등댓불은 안개에 막혀 바로 앞에서 반사되며 퍼졌다. 등대의 싸이렌이 울렸다. 나라는 아빠가 돌아오지 않아 울음을 터트렸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커다란 냄비 두 개와 막대기 두 개를 주워왔다. 옛날에 아빠에게 들은 얘기가 있었다. 안개가 많이 낀 날에는 소리를 내 배들이 항구로 찾아올 수 있게 했다고 했다.
나라에게도 냄비를 하나 주고 우리는 힘껏 두드리기 시작했다. 진돌이와 초랭이도 바다를 향해 짖어댔다. 나라는 눈물을 흘리며 쉬지 않고 냄비를 두드렸다. 나는 목청껏 소리치며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두드렸다.
우리는 바다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아빠! 여기요! 아빠아! 여기요!”
나라도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빠아! 여기! 아빠 여기!”
하지만 멀리 우세도에서 메아리만 들려왔다. 바다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랫동안 냄비를 두드린 우리는 지치고 개들도 짖는 것을 멈췄다. 우리는 빨간 등대 아래 주저앉았다. 사방이 조용했다. 그때 바다 멀리서 배 엔진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우리는 다시 일어나 힘껏 냄비를 두드리며 소리 지르며 방파제를 뛰어다녔다. 개들도 다시 짖기 시작했다. 배 엔진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냄비 두 개를 맞잡고 심벌즈처럼 두드렸다. 배 엔진소리는 아주 가까이서 들리기 시작했다.
다도해 항구 야경
진돌이가 하얀 등대 쪽을 바라보고 열심히 짖었다. 안개 속에서 엔진소리가 들리고 천천히 우리 배가 나타났다. 아빠는 키를 잡고 나라아빠는 뱃머리에서 후레쉬를 요리저리 비추며 방파제를 따라 항구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리는 소리를 지르며 항구로 달려갔다. 나라아빠가 던진 줄을 얼른 말뚝에 걸었다. 배에서 내리는 아빠에게 나라가 달려가서 안겼다. 우리 아빠는 배에서 내리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희들이 냄비를 두드리고 소리 질러 찾아올 수 있었다.”
아빠는 나와 나라를 칭찬하고 진돌이와 초랭이를 어루만졌다. 나라는 아빠 손을 잡고 걸어가며 내일 등대에서 만나자고 손을 흔들며 갔다. 나는 초랭이가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다음 날 나는 신이 나서 학교 수업을 마치기 무섭게 자전거를 타고 방파제 끝 등대를 향해 바람처럼 달려갔다. 진돌이도 꼬리를 힘차게 흔들었다. 방파제 끝 등대에 도달했는데 어찌된 일인지 나라와 초랭이가 보이질 않았다. 원평항에는 모래바람이 불고 모래알이 날렸다. 빨간등대에서 노란 쪽지가 바람에 나부꼈다. 나는 얼른 달려가서 쪽지를 읽어보았다.
나라가 나에게 남긴 편지였다.
바다야! 엄마가 위독해서 아빠가 오늘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어. 도초도 화도항에서 오후에 여객선을 타고 간다. 너 못 만나고 떠날 거 같아 편지를 쓴다.
바다야! 안녕...
나는 아무 생각이 안 났다. 무작정 자전거를 타고 비금과 도초 간의 다리 서남문대교를 향해 무작정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로 한 시간은 걸리는 거리였다. 힘껏 페달을 돌리는데 고물 자전거는 속력이 나질 않았다. 다리가 뻣뻣해지도록 페달을 밟았다. 진돌이가 따라오고 나는 눈물이 났다. 넓고 넓은 염전이 길게 펼쳐졌다.
반시간 쯤 달렸을 때 도초도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땀이 줄줄 흐르고 바지에 허벅지가 쓸려 따가웠다. 염전에서 소금이 하얀 수국꽃처럼 반짝였다. 바람이 세게 불어와 자전거는 좌우로 크게 흔들리며 앞으로 나갔다. 나라가 떠나는 것은 꼭 보고 싶었다. 나는 안장에서 일어서 페달을 굴렸다. 온힘을 다해 한 시간 정도 달려왔을 때 멀리 비금과 도초를 잇는 서남문대교가 보였다. 마지막 힘을 다해 다리까지 쉬지 않고 고물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여객선은 목포로 출발하기 위해 막 도초 화도항을 떠나려고 “부앙! 부앙!” 뱃고동을 울렸다. 서남문대교는 큰 배들의 통과를 위해 가운데가 높이 올라간 아주 배부른 다리로 경사가 급해 자전거를 타고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었다. 나는 자전거를 내팽개치고 여객선이 통과하는 다리의 가장 높은 중간을 향해 뛰었다. 경사가 급해 숨이 차 헐떡거리는데 여객선은 벌써 출발해 속력을 올리고 있었다.
아직 다리 중간까지는 오십 미터는 남았는데 여객선은 다리 아래로 진입하고 있었다. 나는 참말로 마지막 힘을 다해 달렸다. 진돌이는 이미 다리 중간까지 달려가 혀를 내밀고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여객선 기관 소리가 다리 밑에서 들리고 나는 헐떡거리며 다리 한 가운데 섰다. 서남문대교 밑을 통과하는 여객선의 뱃머리가 서서히 들어났다. 그리고 곧 다리를 완전히 통과한 여객선의 선미가 보였다. 진돌이가 여객선을 향해 미칠 듯이 짖었다.
나라와 초랭이는 여객선 선미 간판에 서 있었다. 나는 나라를 보았지만 나라는 나를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진돌이 소리를 듣고 초랭이가 나라 품에서 빠져나오며 간판 끝으로 쪼르륵 달려오며 우리를 보고 짖어댔다.
그때야 나라도 우리를 보고 손을 크게 휘저었다. 나는 양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며 손을 흔들었다. 개들은 계속 짖어댔다. 여객선이 멀어지자 나라는 주저앉아 엉엉 소리 내 울었다. 나는 두 손을 흔들며 나라가 잘 보이도록 깡충깡충 뛰어오르며 손나팔을 입에 대고 소리쳤다.
“나라야! 잘 가!”
“신나라! 잘 가!”
나는 목을 더 길게 빼며 소리쳤다.
“나라야! 이다음에 크면 꼭 놀러 와야 해...”
“멍멍! 멍멍...”
나는 “엉엉! 엉엉...” 울며 소리치고 나라는 계속 손을 흔들었다. 여객선은 도초도 하얀 등대를 돌아서며 눈에서 사라졌다. 나는 서남문대교 위에서 여객선이 안 보일 때까지 눈물을 흘렸다. 갈매기가 저녁노을에 물든 바다 위로 여객선을 따라 날았다.
-끝-
비금도 하트해변에서
송주성 소설가
2014년 제1회 금샘문학상 단편 <금샘>으로 대상 수상하고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제6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제1회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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