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성 소설 발표작

<손암과 다산 형제애> 송주성 단편소설 -정약전과 정약용 유배지 우애

소설가 송주성 2022. 11. 30. 10:23

 

 

                                                                        도초도 자산어보 촬영지

손암과 다산 형제애

 

손암은 사촌서실의 방문을 열어놓고 흑산 바다에서 불어오는 짠바람을 맞으며 자산어보 집필을 마무리 중이었다. 바다는 푸르고, 섬은 검고, 하늘은 파랬다. 그는 서리 선창으로 고깃배들이 들어오는 것을 무심히 바라봤다. 흑산도 어선들보다 훨씬 커다란 고깃배 한 척이 쌍돛을 세우고 들어와 선창에 정박했다. 젊은 어부가 단숨에 사촌서당(사촌서실)을 향해 뛰어 올라오며 소리쳤다.

-손암 나으리! 정약전 나으리!

-이게 누군가 홍어장수 문순득 아닌가?

-네 나으리, 소인 우이도 문순득이어라우.

-그래 웬 호들갑인가?

-나으리, 참말로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당께요.

-임금이 나를 유배에서 풀어준다는 소식이라도 갖고 왔는가?

-나으리, 그보다 더 기쁜 소식이랑께요.

-무슨 일인지 어서 말해보게.

-나으리, 강진에서 편지를 보냈어라우.

손암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맨발로 문순득 앞으로 걸어 나갔다.

-동생이 편지를 보냈단 말인가?

-예, 강진 다산초당 정약용 대감이 보낸 편지를 갖고 왔구만요.

문순득은 품에서 고이 접은 다산의 편지를 손암에게 전했다. 그는 편지를 몇 번이나 읽고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손암이 눈물을 감추며 문순득에게 물었다.

-언제 우이도로 돌아갈 예정인가?

-나으리, 홍어어장을 마치면 떠나야지요.

-다산에게 보낸 물건은 잘 전달하였는가?

-예, 나으리 굴비와 말린 민어, 서대, 우럭 그리고 물치 육포를 잘 전달하고 홍어도 암치기로 한 마리 영산강 영암포구에서 내려드렸어라우.

-다산이 직접 나왔던가?

-아닙니다. 이강회란 제자가 영암포구까지 말을 타고 나와 물건을 받고 편지를 주더랑께요.

-수고 많았네. 흑산을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나에게 알려줄 수 있겠는가?

-예, 나으리 알았구만요.

손암은 다산의 편지를 다시 꺼내 읽고 서당 앞 학원동전망대에 올라 이마에 손그늘을 만들어 동쪽 바다를 바라보았다. 팔십리 뱃길의 우이도가 희미하게 넓고 넓은 바다 위에 갈매기 한 마리처럼 앉아있었다. 조금 고개를 돌리자 백리가 넘는 바닷길의 도초도가 신기류처럼 살짝 그림자만 보였다. 손암은 뱃길을 더듬어 보았다. 도초에서 목포까지는 또 뱃길이 백리요, 목포에서 동생이 있는 강진 다산초당까지는 또 육짓길이 백리였다. 흑산에서 강진은 삼백리 길이었다. 그런데 다산은 유배에서 곧 풀려날 것 같으며 유배가 풀리면 목포에서 배를 타고 험한 바다를 건너 흑산으로 들어와 형을 만나고 고향 경기도 광주 한강의 두물머리로 돌아가겠다는 편지였다.

손암은 그날이 떠올랐다. 1801년(순조1년)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하고 천주교 금압령을 내려 신우박해로 천주교도들이 처형되었다. 큰형 정약현은 사형당하고 약전과 약용은 목숨은 건져 신안 신지도와 장기현(포항)으로 이월 이십육일 유배형을 받았다. 하지만 큰형 약현의 사위 황사영이 북경의 프랑스 주교에게 보낸, 함대를 동원해 조선 조정을 압박하라는 백서가 발각되어 약전과 약용은 한양으로 다시 압송되어 처형될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어명에 의해 그해 십일월 오일 두 형제는 더욱 험하고 먼 전라도 흑산도와 강진으로 각각 다시 유배형에 처해졌다. 팔대에 걸쳐 벼슬을 한 조선의 명문 가문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약전과 약용은 전라도로 유배를 떠났다. 형제는 나주 율정에서 강진과 흑산으로 가는 길이 갈리면서 기약 없는 이별하고 다산은 강진으로 가고 손암은 흑산으로 향했다.

손암은 목포에서 배를 타고 흑산으로 오면서 죽을 고비를 서너 번이나 맞이했다. 도초도까지는 바다인지 강인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섬과 섬이 바다에 둥둥 떠 있어, 강물처럼 잔잔한 뱃길을 풍선 타고 하루 종일 항해했다. 하지만 도초도를 벗어나면서 흑산도까지는 망망대해라 파도는 높고 물살은 거칠었다. 흑산으로 들어오며 우이도는 슬쩍 보았으나 도초도에서도 한나절 뱃길이었다. 날이 좋아 순풍에 썰물을 타야 흑산까지 이틀 뱃길이지, 날이 궂고, 역풍이 불거나 바람이 불지 않고, 물때를 타지 못하면 며칠 뱃길이었다.

손암은 흑산으로 오겠다는 다산이 걱정되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문순득이 사는 우이도로 나가면 다산이 험한 바다를 건너지 않아도 되었다. 목포에서 도초도까지는 뱃길이 한강을 향해하는 것 같고 도초에서 우이도는 눈에 가까이 보이는 이십여 리의 멀지 않은 뱃길이었다. 손암은 흑산소실과 아들 학소와 학매를 불렀다. 그들은 흑산소실이 낳은 열 살과 일곱 살 형제였다.

-잘 들어라, 나는 우이도로 나가 동생 다산을 기다렸다 만나고 다시 흑산으로 돌아올 것이다.

젊은 흑산소실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으리, 언제 흑산으로 돌아올 예정입니까?

-그것은 기약이 없소, 다산이 언제 유배에서 풀려날지 모르는 일이니...

어린 학소가 물었다.

-아버님, 빨리 돌아오소서.

손암은 지천명이 다돼 얻은 아들 학소와 학매의 머리를 쓰다듬고 소실에게 아이들을 잘 보살피라고 당부했다. 그러나 다음날 날이 밝기 무섭게 흑산 주민들이 사촌서당으로 몰려왔다.

촌장이 울먹이며 말했다.

-나으리가 우이도로 떠나면 흑산도 아이들은 누가 공부를 가르치겠습니까? 절대 흑산을 떠나시면 안 됩니다.

-나는 우이도에 나가 동생 다산을 만나고 곧 돌아올 것이니 걱정들 말게.

-나으리, 우리는 절대로 보내드릴 수가 없습니다.

-형제의 정을 끊어놓으려고 하는가?

손암은 흑산 사람들의 만류에도 뜻을 굳히지 않고 소실과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떠날 채비를 했다. 문순득이 찾아와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곧바로 우이도로 떠날 예정이라 하였다. 손암은 마무리한 자산어보를 짐 속에 넣었다. 동생에게 가장 먼저 보여주고 싶은 책이었다. 다산도 자산어보에 관심이 많았다. 손암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다산을 만날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는데 다산이 탄 배가 풍랑을 만나 산산이 부서지는 꿈을 꾸고 놀라 소리 지르며 눈을 뜨고 벌떡 일어났다.

 

                                                                                          도초에서 바라본 흑산도

 

사촌서당 마당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손암은 속히 나오시오.

그는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사또가 창을 든 나졸들을 데리고 와 사촌서당을 포위하고 있었다. 손암은 영문을 몰라 방을 나오며 물었다.

-사또, 무슨 일이오.

-대감은 절도안치(섬으로 유배) 중입니다. 흑산도를 떠나 그 어디로도 갈 수 없습니다.

-사또, 우이도도 흑산의 섬 중 하나 아닙니까? 내 마음 같아서는 도초도나 아예 목포로 나가 동생을 만나고 싶으나 흑산에 절도안치 중이므로 흑산을 벗어나지 않고 우이도까지만 가려는 것입니다. 형제의 우애를 위해 우이도로 가려는 것이니 그리 아시오.

손암은 짐을 지고 방을 나섰다. 사또도 어쩌지 못하고 손암의 길을 열어주며 말했다.

-대감 우이도로 가는 것은 허락하겠으나 우이도에서는 위리안치(탱자나무 가시로 울타리를 치는 형벌)하겠습니다.

문순득은 서리포구에서 우이도로 출발할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손암이 배에 오르자 돛을 올리고 풍선이 출발했다. 서리포구에는 흑산도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눈물을 흘리고, 사또와 나졸들도 자리를 뜨지 않고 손암이 떠나는 것을 지켜보고, 아들 학소와 학매의 손을 잡고 흑산소실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손암은 곧 다시 돌아올 것이니 걱정 말라고 손짓했다.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도 흑산소실과 아이들은 풍선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리포구에 서 있었다.

영산도를 돌아서자 파도가 거세졌다. 잔잔한 날도 흑산 바다는 종잡을 수 없었다. 파도가 높게 일며 풍선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고 쌍돛이 바람을 타며 고래만한 파도에 뱃머리가 푹 들어갔다 쑥 올라왔다. 손암은 흑산으로 들어갈 때 겪은 풍랑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는 정말로 흑산 바다가 지옥과 다르지 않았다. 물귀신이 되지 않고 흑산까지 갈 수 있었던 것을 천운으로 여겼다. 그는 다시는 살아서 돌아나오지 못할 것이란 생각에 ‘뉘우치며 살자’는 매심(每心)이란 호를 버리고 흑산 섬에 오르면서 손암(巽庵)이라 하였다. 또한 그는 끔찍하게 두려운 흑산 대신 자산이라 부르며 흑산어보를 자산어보라 이름 지었다.

영산도가 멀어지면서 너울이 산처럼 솟았다가 절벽처럼 떨어지곤 했다. 손암은 풍선 갑판에서 호박이 구르듯 구르며 배멀미를 했다. 입에서는 쓴물이 올라오고 하늘이 빙빙 돌았다. 문순득이 물 한바가지를 떠다주고 손암의 등을 두드려주며 웃었다.

-나으리, 아따 이건 파도도 아니랑께요.

-얼마나 심해야 파도란 말인가?

-나으리, 소인들은 풍랑을 만나 세상을 한 바퀴 돌아불었으라우.

-그래 어디어디 가보았는가?

-1802년 일월 홍어를 사러 흑산에 갔다가 험한 풍랑을 만나 표류해 십여 일 만에 도착한 곳이 유구국(오키나와)이당께요. 그곳에서 환대를 받고 그들의 말을 배우고 여덟 달을 머물고 청나라로 가는 배를 탔는디, 다시 높은 풍랑에 휩쓸며 표류해 간 곳이 여송국(필리핀)이었당께요. 그곳에서 또 아홉 달을 지내고 마카오 상선을 타고 마카오로 가게 되었고요. 난징을 거쳐 북경에서 조선 사신을 만나 1804년 십이월 한양에 도착해 삼 년 이 개월 만인 1805년 일월에 우이도로 다시 돌아왔어라우.

-정말인가? 그럼 자네가 조선 사람으로서는 세상을 처음으로 돌아본 천초일세.

-나으리, 고생도 숱하게 했지만 새로운 문물을 많이 보고 듣고 겪어불었소.

-흥미로운 일일세 우이도 도착하면 세상을 한 바퀴 돌아온 이야기 자세히 나눠보세.

-소인은 글을 잘 모른께 나으리가 글로 남겨주시면 그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당가요.

문순득의 풍선은 파도를 수만 번 넘어 물살을 가르며 바람을 타고 하루 만에 우이도 진리에 도착했다. 다도해는 섬마다 절도안치 유배형을 받은 선비들이 많아 우이도 진리에도 빈 위리안치 거적지가 있었다. 탱자나무 가시가 손가락 길이로 돋아있고 탱자가 열려 눈알만하게 달려있었다. 문순득은 홍어를 싣고 영산포로 다시 출발할 준비했다. 손암은 다산에게 유배가 풀리면 우이도로 와 만나자는 편지를 써 문순득에게 주며 물었다.

-다산에게 어떻게 편지를 전하는가?

-영산포에 가면 강진에서도 홍어를 사러오는 보부상들이 많이 있구만요. 그들을 통하면 전국 팔도 어디든 소식을 전하고 소식을 받을 수 있당께요.

-영산포까지 여러 날이 걸리는데 홍어는 상하지 않는가?

-홍어는 삭는 과정에서 숙성이 되고 오들오들 씹히는 맛이 최고지라우. 또한 삭힌 홍어는 몸속의 독소를 제거는 효과가 있당께요. 삭힌 알싸한 맛은 인체에는 무해하고 홍어의 독특한 맛을 가지게 되는데, 흑산에서 풍선이 출발해 목포를 거쳐 영산강으로 들어서 밀물을 타고 나주 영산포로 거슬러 오르는 동안 홍어가 알맞게 삭아 영산포에서 최고의 맛을 내불지라우.

-나는 흑산도에서 처음 홍어 맛을 보았네. 흑산 사람들은 삭히지 않은 싱싱한 홍어를 먹더군.

-섬사람들은 굳이 삭힐 필요가 뭐 있당가요. 싱싱한 붉은 홍어 살을 더 좋아하는데 잔치를 위해서 항아리에 짚을 넣고 홍어를 삭혀 먹기도 하지라우. 김치가 익으면 생김치가 익은 김치가 되고 익은 김치가 신김치가 되는 것처럼 홍어도 삭히면 김치처럼 오묘한 맛을 내게 된당께요.

문순득은 홍어를 가득 실은 풍선을 타고 영산포로 떠났다. 그에게서 바다에 대한 두려움은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손암은 우이도 탐방에 나서 진리를 출발해 섬에서 가장 높은 상산봉에 올랐다. 황해의 섬들이 하늘에서 옥을 뿌려놓은 듯 바다에 박혀있었다. 가장 가까운 도초도가 동쪽으로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그는 미소 지으며 동생이 고생하지 않고 형을 만나러 오겠다는 생각에 흐뭇했다. 그는 남쪽으로 몸을 돌려 바라보았다. 커다란 섬 진도가 눈에 들어왔다. 진도는 제주도, 거제, 흑산도와 조선의 4대 유배 섬이었다. 진도 넘어 육지가 강진이라는 생각에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하지만 곧 동생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미소 지었다. 그는 서쪽으로 몸을 돌렸다. 흑산도가 까마득하게 바다에 떠있었다. 그곳에 있을 흑산소실과 두 아들을 생각하면 어서 다산을 만나고 돌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다시 몸을 돌리고 흑산에서 고개를 돌려 북쪽을 보았다. 경치도가 보이고 멀리 바다제비, 슴새 등 철새들이 남쪽 나라로 날아갈 때 쉬어간다는 무인도 칠발도가 희미하게 보였다. 손암은 새처럼 하늘을 날아 강진에 다녀오는 상상하며 문순득은 무사히 영산포에 도착했는지 궁금했다.

                                                                                      도초도에서 바라본 우이도

나주에서 강진 다산초당까지 백리길 말을 타고 달리면 반나절이면 도달할 거리였다. 손암은 은근히 답장까지 받아오면 좋겠다는 생각에 웃음이 절로 났다. 그는 상산봉을 내려와 돈목마을로 향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손암에게 절하며 반겼다. 그는 마을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하고 돈목해변의 금가루 같은 모래밭을 맨발로 걸었다. 넓은 모래사장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해변 끝에는 산처럼 높은 모래언덕이 앞을 막았다. 발을 디디면 모래가 스르륵 흘러내려 모래산을 오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모래언덕을 넘어가자 작은 어촌 성촌마을의 초가 몇 채가 옹기종기 얼굴을 내밀었다. 흑산보다 훨씬 살기 힘들어 보이는 작은 섬이었다. 소가 누워 있는 듯하다는 섬, 우이도 처녀들은 모래를 서 말은 먹어야 시집을 간다는 모래섬이었다.

우이도 사람들은 돈목총각 어부와 성촌처녀가 사랑했는데 총각이 바다에 나가 풍랑을 만나 죽자 처녀도 바다로 뛰어들어 죽었는데, 처녀는 모래가 되어 모래언덕에서 기다리고 총각은 바닷바람이 되어 모래언덕에 금빛 사랑을 그린다고 하였다.

손암은 성촌해변에서 황홀한 광경을 보았다. 걸을 때마다 수만 마리의 달랑게들이 군무를 치듯 게 구멍으로 숨는 것이 황홀해 그는 해변을 맨발로 달리다 걷다하며 달랑게와 함께 군무를 즐겼다. 성촌 해변 끝에서 마두산을 넘자 띠밭넘어해수욕장이 광활하게 나타났다. 시원한 바닷바람에 하얀 포말의 파도가 넘실댔다. 그는 짚신을 벗어들고 모래사장을 걸었다. 부드러운 금모래 가루가 발바닥에 간지간질하게 달라붙었다.

손암은 띠밭넘어해변을 걷고 다시 산을 넘어 진리 위리안치 가옥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은 우이도 주민들이 몰려와 섬 아이들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그는 다산이 올 때까지만 아이들을 가르치기로 마음먹었다.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우이도 사람들도 모두 귀양 온 선비의 후손들이 많아 아이들은 흑산도 아이들처럼 똑똑하고 총명했다. 손암의 적거지에 서당을 열자 돈목과 성촌의 아이들까지 몰려와 우이도서당은 아이들 글 읽는 소리가 파도소리 같았다. 그는 공부가 끝나면 아이들과 상산봉에 오르고 돈목해변 모래언덕으로 성촌해변으로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띠밭넘어해변을 걸어 진리 우이도서당으로 돌아오곤 했다.

주민들은 정성껏 바다에서 잡은 싱싱한 생선을 손질해주고 마른생선도 가져왔다. 그것이 우이도 사람들이 주는 아이들의 공부 값이었다. 작은 섬이라 논은 없고 밭이 산언덕마다 손바닥만하게 있었다. 쌀 대신 생선을 먹고 사는 섬사람들이지만 강하고 마음씨는 순수하고 고왔다.

문순득은 거의 한 달 만에 우이도로 돌아왔다. 그는 홍어를 팔아 쌀을 잔뜩 사오고 섬사람들이 모두 포구에 나와 그의 풍선을 반겼다. 다섯 명의 선원이 늘 함께였으며 모두 표류를 경험한 뱃사람들이라 육체는 강인하고 힘과 패기가 넘쳤다. 해적들도 그들을 당하지 못할 것 같았다. 손암은 우이도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든든하고 가장 안전하게 강진까지 편지를 전해줄 사람으로 믿음이 갔다.

문순득은 포구에 배가 닿기도 전에 뛰어내려 손암에게 달려왔다.

-나으리, 소인이 직접 말을 타고 강진 다산초당으로 달려가 다산 대감의 답장을 받아와불었당께요

손암은 문순득의 손을 덥석 잡으며 반가워했다.

-그래, 다산은 건강하던가?

-네, 나으리 다산 대감은 겁나게 건강합디다.

-정말인가?

-나으리, 다산 대감이 나으리 건강을 걱정하신당께요. 섬에는 짐승도 없는데 어떻게 기력을 보강하는지 걱정이라고 했어라우.

손암은 봉투를 서둘러 뜯었다. 한지에 쓴 편지를 펼쳐들고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차츰 손암의 손이 떨렸다. 그는 편지 내용을 믿지 못하고 몇 번이나 반복해 읽다가 결국 눈물을 흘리며 편지를 접었다. 눈물이 빗물처럼 한 없이 흘러내렸다.

다산의 편지는 정적들의 반대로 해배가 연기돼 형을 만나러 오지 못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언제 유배형에서 풀려날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이 오면 가장 먼저 우이도로 달려오겠다고 하였다.

손암은 막막해 동쪽의 강진을 바라보며 눈물짓고 서쪽 흑산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그는 다산을 만나기 전에는 흑산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어떻게라도 아우를 만나겠다는 마음뿐이었다.

그는 문순득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표류하면서 겪은 오키나와, 필리핀 그리고 중국에서 경험한 이야기를 날짜 별로 받아 적어 ‘표해시말’ 집필을 시작했다. 문순득의 표류담은 참으로 흥미로웠다.

조선에서는 보도 듣지도 못한 얘기들이었다.

-오키나와에서는 어떻게 생활하였는가?

-새끼줄을 꼬아 팔아 살왔지라우. 내가 오키나와와 필리핀에 조선의 새끼줄 꼬는 기술을 가르쳐준 사람이당께요.

-조선에는 없는 새로운 것을 보았는가?

-오키나와 배는 조선의 평저선과 다르게 배 밑바닥이 뾰족한 침저선인디 엄청 빠르당게요.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은을 화폐로 사용하더랑께요. 그리고 마카오에서는 말이 끄는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마차도 봤어라우...

문순득의 표류기는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손암은 그를 만나면 묻고 또 물었다. 문순득이 영산포로 홍어를 팔러가면 언제나 아우에게 편지를 보냈다.

손암은 서당이 끝나면 아이들과 백사장을 파헤쳐 줄무늬 조개를 캐 함께 삶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머리가 큰 아이들은 좋아하는 사람끼리 손을 잡고 맨발로 돈목해변을 걸으면 사랑이 이루어지고 성촌해변을 걸으면 결혼을 하게 된다고 했다. 그리고 띠밭넘어모래사장을 걸으면 헤어진 사랑도 다시 이루어진다고 깔깔거리며 얼굴이 붉어졌다.

 

문순득이 영산포에서 다시 돌아왔다. 그런데 다산이 보낸 염소 한쌍과 멧돼지 새끼 한쌍 때문에 진리선창에서 난리가 났다. 우이도 사람들은 생전 처음 보는 멧돼지를 구경하러 돈목과 성촌, 대초리, 예리 사람들까지 대초리몰랑(고개), 진리몰랑을 넘어오고 동소우이도와 서소우이도(서리)에서도 배를 타고 멧돼지를 보러왔다.

아마도 손암이 보낸 생선만 먹어 기력이 없다는 편지를 읽고 아우가 보낸 듯했다. 오십 대 중반의 손암에게는 생선도 좋지만 기름진 육고기를 먹어야 힘이 난다는 생각에서 다산이 마늘 종자와 고추씨, 들깨와 함께 보내왔다.

손암은 아우의 정성을 생각하며 우이도 사람들에게 물었다.

-염소와 멧돼지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문순득이 나섰다.

-진리마을에서 멧돼지는 가둬 키우고 염소는 목줄을 매 묶어두고 풀을 먹여 키워 새끼 낳으면 집집마다 나누어 키우도록 해야 한당께요.

우이도 사람들이 모두 찬성하며 박수를 쳤다. 하지만 손암은 반대했다.

-멧돼지는 구정물을 먹고 사는 돼지가 아닙니다.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아야 빠르게 번식하고 우이도 사람들에게 육고기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염소는 험한 바윗길도 잘 다니므로 섬에 풀어놓고 키우면 금방 성장해 새끼를 낳고 번식할 것입니다.

-염소는 우유도 짜 먹어야 하는데 섬에 풀어놓으면 우유는 어떻게 짠당가요?

-염소 고기는 기력보강에는 최고이고 한두 마리면 온 가족이 일 년 내내 젖을 짜 먹을 수 있습니다. 염소는 육 개월 성장하면 새끼를 낳을 수 있고 한 배에 두세 마리를 낳으므로 번식이 빨라 이 년 후에는 각 집마다 염소 한두 마리를 포획해 목줄을 매 야산에 묶어놓고 키우면 충분한 염소젖을 얻을 수 있고 일 년에 한 번 우이도 공동으로 염소를 포획하면 염소 수가 조절되고 내다 팔아 생활에 도움도 될 것입니다.

-멧돼지를 섬에 풀어놓으면 어떻게 잡아먹는당가요?

-멧돼지는 일 년이면 새끼를 낳을 수 있고 한 배에 십여 마리를 낳으므로 이 년 후부터는 명절이나 잔칫날 마을공동으로 멧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면 주민들은 기력을 보강하고 멧돼지 수는 적절하게 유지될 것입니다.

우이도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문순득이 손암의 뜻에 따르기로 하고 멧돼지와 염소는 그 자리에서 산에 풀어주었다. 손암은 문순득에게 마늘 종자와 고추씨, 들깨 자루를 열어 주민들에게 나눠주도록 하였다. 손암은 우이도 섬사람들에게 봄에 텃밭에 씨를 뿌려 기르면 염소와 멧돼지 요리에 좋은 재료가 된다고 알려주고 친절하게 다산이 적어 보낸 요리법까지 가르쳐주었다. 우이도 사람들은 침을 삼키며 손암의 이야기를 들었다.

손암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다산을 생각하며 우이도에 계속 있을 수는 없었다. 흑산도 사또에게는 알렸으나 조정에서 관리들이 나오면 낭패였다. 손암은 우이도 사람들을 모아놓고 사정을 얘기하고 흑산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우이도 사람들이 손암을 붙들고 절대 흑산으로 보낼 수 없다고 막무가내로 막아섰다. 우이도 아이들을 위해서 우이도에 남아 계속 공부를 가르쳐줄 것을 간곡히 호소해, 손암은 흑산의 처자식을 생각하면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우이도 사람들이 꾀를 하나 냈다. 우이도를 소흑산이라 부르고 흑산과 똑같은 지명으로 진리, 예리, 서리로 지명조차 바꾸었다. 조정에서 사람이 나오면 뱃사람들이 관리들을 흑산이 아닌 소흑산 우이도로 데려오겠다는 약속도 하였다. 우이도 사람들은 육지에서 배가 들어오는 선창의 이름을 흑산과 똑 같은 진리라고 불렀다. 손암은 우이도 사람들의 정성어린 만루를 뿌리치지 못해 흑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다산을 만날 때까지만 머물기로 우이도 사람들과 약속했다.

손암은 문순득과 몇 개월에 걸쳐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여 표류기 표해시말을 마무리했다. 그는 영산포로 다시 떠나는 문순득에게 자산어보와 표해시말의 필사본을 들려 보내며 강진으로 가 다산에게 직접 편지를 전달해줄 것을 부탁했다.

문순득은 영산포에 도착해 말을 타고 달려 강진 다산초당으로 갔다. 동백나무를 심던 다산이 책보다리와 편지를 받고 반가워 환하게 웃으며 형님이 보낸 편지를 펼쳐들었다.

 

봄이 오고 살구꽃이 피기 시작하면 강진 바다에서 조기가 잡히고 여름이 와 섬원추리가 피면 흑산 바다에서도 조기가 낚시에 올라온다네. 우이도에 원추리꽃이 피면 나는 바다에 나가 대나무통을 바닷물 속에 꽂고 강진에서 올라온 조기가 아우의 소식을 전해주려나 귀를 기울이네. 여름밤 한강의 개구리 울음처럼 “뿌우욱! 뿌우욱!” 들리는 조기 울음을 아우의 시조창으로 듣네. 나는 아우가 좌부승지 시절 형제가 그리워 조정의 허락도 받지 않고 도성을 빠져나와 고향집에서 한강으로 배를 타고 나가 잡은 오십여 마리의 잉어와 붕어 등 크고 작은 민물고기로 매운탕 끓이고 술을 마시며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고 고사리, 두릅 등 오십여 종의 산나물을 먹으며 술 한잔에 시 한 수씩을 주고받으며 읊었던 형제애를 잊을 수 없네. 그 삼 일간의 기억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억이네. 나는 아우의 유배가 어서 풀려 우이도로 나를 찾아와 만나길 바라고 원하네. 우리 형제 만날 그날이 언제 일꼬.

-손암-

 

다산은 편지를 접어 봉투에 담으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는 책보다리를 풀어 자산어보와 표해시말을 읽고 편지를 썼다. 문순득은 조용히 기다리며 다산초당의 만덕산 동백 숲을 거닐었다. 그는 답장을 기다리며 하룻밤을 다산초당에서 보내며 다산 대감에게 손암 대감의 우이도 생활을 생생하게 전달하고 표해시말의 표류기 이야기도 나누었다.

손암은 우이도서당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정성을 다했다. 흑산도, 우이도, 도초도, 비금도 할 것 없이 다도해의 섬 아이들은 모두 시대를 잘못 만난 영웅호걸의 후손들 아닌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 나라의 대들보가 될 총명한 아이들이 많았다. 손암은 천지가 개벽하면 이백 년 후에는 다도해의 한 아이가 나라의 왕이 되고 우이도의 한 아이가 정당의 당수가 될 것이라 예언했다.

문순득이 영산포에서 돌아와 다산의 편지를 손암에서 전달했다. 문순득은 도초도에서 우이도 사이에 안개가 끼어 뱃길을 잘못 들어 흑산까지 갔다가 간 김에 홍어를 사고 안개가 걷혀 돌아왔다고 하였다. 흑산 사촌서당에서 아들 학소가 어미의 말을 받아 적은 삐뚤빼뚤한 편지를 받아들고 손암은 손이 떨렸다. 흑산소실은 날마다 학원동전망대에 올라 정한수 떠놓고 지아비가 돌아오기만을 기도한다고 쓰고 아이들도 아버지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만 바라본다고 하였다. 손암은 눈물을 감추며 다산이 보낸 편지를 펼쳤다.

 

강진 만덕산 백련사 동백꽃은 추운 십이월에 피어 겨울의 끝을 알리고 일월에 피어서는 봄이 다가옴을 알리고 이월에 피어나면 봄이 왔음을 알리고 삼월에 피어난 동백꽃은 세상을 향기롭게 하는데, 정적들은 우리 형제의 해배를 방해하므로 언제 그날이 올지 알 수 없어 마음이 아픕니다. 동백꽃이 한두 번 더 피면 우리 형제의 마음이 하늘에 닿지 않겠습니까?

형님 우리 아버님 화순현감 시절에 우리 형제는 함께 책을 읽었지요. 나는 책 속의 오묘한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 뜻을 형님에게 물어 명쾌하게 깨달음을 얻었었습니다. 나는 중노릇을 하려면 고기도 술도 여색도 멀리해야 하는데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살까 의문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이제야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세상의 고통에 물들지 않고 삶의 철학을 깨닫는 것은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생에는 스님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는 화순 동림사에서 우리 형제가 독서하며 토론을 벌인 일이 평생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형님 험한 바닷길이 천리라도 파도가 태산처럼 높게 일어도 해배되는 날 우이도로 달려가겠습니다. 기력을 잃지 마시고 건강하시면 반드시 우리 형제가 다시 만날 날이 올 것입니다.

추신

형님 조카 학초가 죽은 지도 십여 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후사를 위해 흑산도 아이들을 족보에 올려 대를 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산-

 

손암은 아우의 편지를 받고 후사문제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보다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섬 생활을 하면서 왜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산이라면 충분히 그 이치를 깨닫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손암은 밤하늘의 달을 보며 편지를 적어 다산에게 보냈다.

 

다산

달이 떠 달빛이 수평선에 길게 비추면 밀물이 일어나 바닷물이 밀려들어오고 달이 하늘 가운데 떠 달빛을 직선으로 내리비추면 썰물이 되어 바닷물이 빠지고 다시 달이 지며 수평선에 달빛이 길게 반사되면 곧 밀물이 되어 다시 바닷물이 차오르는 이치는 어떤 연유인가? 아우 후사문제는 며느리가 청상과부로 있으니 먼 친척 중에 양자를 들일 생각이네.

 

추신

오적어(갑오징어) 뼛가루는 부스럼을 아물게 해 세살이 돋고 뼈가 붙게 하고 말의 부스럼이나 등창에는 오적어 뼛가루만 한 것이 없으니 말린 오적어 한 꾸러미 보내니 살은 먹고 등뼈는 가루내 약으로 쓰도록 하시게나.

-손암-

 

다산은 강진 초당에서 편지를 받고 문순득을 “천초”라 부르며 극진히 대접하였다. 그는 영산포를 오갈 때마다 실수 없이 정확하게 편지를 전하고 전해주었다. 다산은 문순득을 만나면 짧게나마 표류 중에 보고 들은 것을 물어 궁금증을 풀었다. 다산 제자 이강회는 영산포까지 쫓아와 술을 사며 문순득을 못살게 굴며 표류 중에 본 것은 티끌만한 것이라도 좋으니 다 털어놓으라고 사정했다.

문순득은 우이도로 돌아와 다산이 보낸 강진 도자기 몇 점을 손암에게 전달하고 편지를 주었다.

-천초, 자네가 우리 형제의 편지를 전하는 비둘기 일세.

-나으리, 우리 아그들한테 공부를 가르치는데 편지 전달하는 것이 무슨 대수랑가요? 우이도를 떠나지 말고 평생 우리 아그들 공부만 시켜주신다면 저희들이 먹고살 것은 벌어 오겠당께요. 그라고 흑산 가족들도 원하시면 우이도로 모셔와불랑께요.

-천초, 고맙네, 하지만 나는 귀양을 온 죄인 아닌가...

손암은 문순득이 물러가자 편지를 꺼내 펼쳤다.

 

형님 달과 지구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는데 달과 가까운 바다는 달의 힘이 바닷물을 잡아당겨 솟아오르고 달과 먼 바다는 지구가 회전운동하는 원심력 때문에 바닷물이 지구로부터 달아나려고 솟구치는 원리입니다. 그러므로 달과 지구가 일직선을 이루는 바다는 밀물이 되고 반대로 수직선상에 있는 바다는 썰물이 되는 것이므로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반복하는 원리입니다. 오적어는 다산초당의 제자들에게 고루 나눠주었습니다. 상처에 뿌리면 신기하게도 피가 금방 지혈되어 상처에는 특효약인 듯합니다. 그리고 강진은 청자가 유명한 고장입니다. 우이도는 섬이라 변변한 밥그릇 하나 없을 듯해 제자들에게 부탁하여 구해 보내드립니다. 청자에 밥을 담아 먹을 때마다 우리 형제 만날 날을 생각하면 그날이 더 빨리 다가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형님 양자를 들이는 것보다는 흑산도 아이들이 서출이기는하나 우리 핏줄이니 대를 잇는 예법에도 맞을 것입니다.

-다산-

 

다산은 편지를 쓰며 형님과 형수가 청상의 며느리가 안쓰러워 일찍 양자를 들이길 원하는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그래도 양자보다는 형님의 핏줄인 흑산소실의 아들 학소와 학매가 형의 대를 있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다산은 형제와 가족의 정을 극진하게 여겼으며 가문의 집안 간에 서로 아름다운 우애가 넘쳐나길 바라고 원했다. 다산이 편지를 쓰는 동안 다산초당에서 인연을 맺은 강진소실이 네 살배기 딸에게 밥을 먹이고 있었다. 다산은 어린 홍임을 보며 미소 지었다.

손암은 우이도에서 삼 년을 보내면서 극도로 건강이 나빠졌다. 섬에서 보내는 귀양살이는 손암의 건강과 정신을 송두리째 빼앗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우이도에는 아파도 치료할 약이나 의원이 없었다. 섬사람들은 아프면 참는 방법이 유일한 치료법이고 섬에서 구할 수 있는 약초를 달여 마시는 것이 최고의 치료법이었다.

손암은 환갑을 앞둔 노인이었다. 튼튼한 체력을 타고났으나 먹는 것이 생선에 편중되고 변변한 야채도 없어 고루 음식을 섭취하지 못해 기력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다산이 보내준 염소와 멧돼지들이 번식해 그 수가 늘어나고 우이도 주민들이 명절이나 잔치 때는 잡아서 고기를 섭취하였지만 동물을 포획하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염소들은 험한 바위절벽으로 다니고 멧돼지들은 깊은 숲에 들어가 나오지 않으므로 사냥을 하는 것도 큰 문제였다. 가끔 바위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져 죽은 염소를 건져와 때 아닌 동네잔치가 열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손암은 기력을 잃고 우이도 사람들이 환갑잔치를 준비하는 것도 무색하게 1816년 사월 삼십일 우이도 입도 삼 년 만에 우이도서당에서 눈을 감았다. 우이도 사람들이 모두 통곡하며 멧돼지와 염소를 잡고 홍어 수십 마리를 썰어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그리고 우이도 사람들은 손암이 나중에라도 고향인 경기도 광주 선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바닷가에 초분을 짓고 풍장을 치렀다.

손암의 장례식을 정성껏 치러준 문순득은 강진의 다산에게 손암의 죽음을 알렸다. 다산은 산천이 울리도록 통곡하였으나 형님의 시신조차 찾으러 갈 수 없는 유배 중이었다. 그는 네 살 위 형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만덕산에 올라 서쪽 흑산을 향해 눈물 흘리며 시를 읊었다.

 

나주 울정의 두 갈래 길보다 미운 것이 있을쏘냐

형제는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우리 형제 땅끝 강진과 절해고도 흑산으로 헤어졌네

멀고 먼 우이도에 손암 형을 두고

소인배처럼 이내 몸만 살피니 눈물이 마르지 않네

 

외로운 천지 손암만이 내 마음 헤아렸네

형님이 세상을 떠났으니

세상 철학을 깨우쳐도 말할 형이 없네

나를 알아줄 이 그 누구인가

천지에 나를 알아주던 형님 돌아가셨으니

슬픔이 밀물처럼 밀려드네

어찌 눈물이 흐리지 않으랴

 

손암이 죽은 두 해 뒤 바닷길을 건너 우이도로 다산과 제자 이강회가 문순득을 찾아왔다. 다산은 1818년 구월 십사일 해배되어 손암의 초분을 열어 유골을 수습해 고향 경기도 광주로 돌아가고 이강회는 우이도에 머물며 문순득의 표류기를 완성하기 위해 흑산 바다 파도와 우이도의 모래바람과 싸웠다.

-끝-

 

*참고문헌  <다산시문집>

 

송주성 소설가

2014년 제1회 금샘문학상 단편 <금샘>으로 대상 수상하고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제6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제1회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