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성 소설 발표작

「불섬 송주성 단편소설​ - 천사(1004)섬 도초도

소설가 송주성 2022. 11. 23. 12:37

불섬

 

[경축! 박으뜸 서울대학교 법대 합격]

불섬 선창가에 매달린 플래카드 아래 동네사람들이 모였다. 불섬이 생긴 이래 서울대학교 합격생은 처음이라고 숭어 떼가 튀어 오르듯 한마디씩 자랑을 뱉었다. 그리고 이구동성으로 낙지가 구멍으로 기어들어가듯 말꼬리를 늘어트렸다. “장학생으로 합격했으면 참 좋았을 걸...”저녁놀에 플래카드가 노을빛으로 붉어졌다. 나는 저녁 해를 따라 불섬 산꼭대기로 달렸다. 흑산도로 넘어가는 저녁 햇빛에 반사된 섬들이 바다에 점점이 박힌 호박보석처럼 반짝였다.

-버금아!

-아이, 버금아!

온 동네를 울리고 불섬 산꼭대기까지 징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엄마의 목소리였다. 숨도 안 쉬고 바람처럼 집으로 달려 내려왔다. 선창가 플래카드 아래를 지날 때는 형 이름이 유난히 커보였다.

형은 초등학교 육 년 동안 단 한번도 일등을 놓치지 않았고 중학교 다니면서도 전교 일등을 빼앗긴 적이 없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집요한 감시와 억압에 의한 결과였다. 아버지는 불섬에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는 목포로 유학을 갔다. 어렵게 논밭 팔아 자취하면서 학업을 계속했지만 불섬 땅값은 참으로 형편없어 농토를 다 팔아먹고도 중학교 삼학년 마지막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중학교 졸업장을 못 받고 불섬으로 돌아와야 했다. 아버지는 작은 주낙배로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었다.

엄마는 불섬에서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아주 조그만 섬에서 태어났다. 그 작은 섬에는 초등학교 분교가 있었는데 초등학교까지만 다니고 그 다음부터는 갯벌에 나가 굴을 깐 돈으로 식량을 사야 했다. 겨우 초등학교만 마친 엄마도 아버지만큼 형에게 기대가 컸다.

중학교를 마친 형은 고등학교는 목포로 유학을 갔다. 하지만 도시에서 자란 학생들과 전라남도 각지에서 유학을 온 학생들이 가득한 목포의 고등학교에서 형은 일등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바람이 부는 날도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고, 낙지를 파고, 미역을 따 특별히 과외비를 마련해 서울대를 중퇴한 과외선생에게 남모르게 형을 공부시켰다.

형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발은 갈퀴처럼 휘어지고 얼굴은 폭삭 늙어버렸다. 그러나 형은 고등학교 내내 중상위권에서 성적이 맴돌았다. 형은 대학입학시험에 원서도 내지 못했다. 아버지는 무조건 서울대 법대를 가야한다고 우겼지만 선생님은 그런 성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원서도 안 써주었다. 아버지는 무작정 형을 서울로 데려가 고시원에 집어넣었다. 형은 학원 다니며 공부했지만 재수를 실패하고, 삼수도 실패하고, 사수마저 떨어지더니 오수 만에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그래도 불섬에서 서울대 합격생은 처음이었다. 아버지 어머니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서울대학교 등록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합격의 기쁨보다 더 큰 걱정에 빠졌다.

엄마는 나를 찾으려고 얼굴이 상기돼 있었다.

-버금아, 아줌마 두 사람 우리 배로 우이도에 태워다주고 올래? 오늘밤에 태워다주면 백만 원 준단다.

-내가요?

-너희 아버지는 목포 이모한테 형 입학금 빌리러 가셨다.

나는 우이도까지 단 한번도 배를 몰고 간 적은 없었다. 이삼년 전에 아버지와 함께 우이도를 가다 경치도 부근에서 안개가 끼어 못 간다고 아버지도 배를 돌려 돌아왔다. 그런 우이도까지 엄마는 나 혼자 그것도 밤이 되어 가는데 가라고 했다. 나는 죽어도 못 간다고 했다. 우이도는 불섬에서 두 시간 넘게 가야하는 먼 외딴섬이었다.

엄마가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백만 원만 받으면 너희 아버지가 돈 빌려오고 집에 있는 돈하고 합하면 형 입학금 낼 수 있을 거다.

엄마는 이미 아줌마들을 배에 태우고 내 눈치를 살폈다. 아줌마들은 자기들도 우이도까지 뱃길은 좀 안다고 걱정 말고 가자고 했다. 나는 무서웠다. 우이도는 큰 바다를 항해해야 했다. 엄마는 내 등을 떠밀어 배에 태웠다. 그리고는 밧줄을 풀어 배 위로 던졌다. 시동도 안 건 배는 썰물에 떠밀리며 선창에서 멀어졌다. 선창가 플래카드가 저녁놀에 붉게 살랑거렸다.

 

형이 서울대 법대 합격했다는 전화받고 아버지는 손수 흰 천에 붉은 페인트로 글씨를 써서 불섬 사람들이 들고나는 선창가에 플래카드를 걸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동네잔치를 열고 장구 장단에 덩실거리던 환한 얼굴이 불섬 노을에 되살아났다. 나는 배에 시동을 걸었다. 엄마는 시동 소리를 듣고 선창에 서서 어서 가라고 손짓했다. 키를 잡고 천천히 솔섬으로 향했다. 바다는 태양을 거의 다 삼키고 머리만 남기고 있었다. 하늘은 산불을 놓은 듯 타 오르고 바다는 꽃무릇을 지천으로 피어놓은 듯 빨갛게 출렁였다. 주낙배는 저녁놀을 향해 나아가고 불타는 듯한 불섬이 멀어지며 솔섬을 지나 망망대해로 들어섰다.

신라의 최치원이 당나라 사신으로 배를 타고 가다 해질녘 활활 타는 섬을 보고 “불섬이다!” 외친 후로 섬사람들은 도초도 선창가를 불섬으로 불렀다고 한다. 배는 꽃무릇빛으로 노을든 바다를 통! 통! 통... 울며 달려 나갔다. 경운기대가리 엔진소리에 심장이 쿵쿵거렸다. 흑산 바다가 해를 숨기고 어둠을 잡아당겨 하늘과 바다를 까맣게 만들어 솔섬 등대에 불이 들어오고 멀리 칠발도 등대도 도깨비불처럼 깜박였다. 칠발도 뒤쪽으로 흑산도가 어둠 속에서 아른아른 마치 신기루마냥 희미하게 눈에 들어왔다.

우이도로 가는 이정표 경치도 등대가 가깝게 반짝였다. 경치도 뒤로 우이도의 높고 뾰쪽한 산봉우리들이 검게 아련히 솟아 있었다. 나는 도초도 해안선을 따라가다 경치도 옆을 지나 우이도로 항해하기로 뱃길을 잡았다. 배는 문바위의 깎아지른 절벽 밑을 경운기 속도로 달렸다. 바다는 더욱 어둠에 싸이고 경치도 등대는 한층 불을 밝게 반짝였다. 스크루에 부서지는 작은 파도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도초도 문바위 끝에 다다라 경치도를 향해 키를 돌렸다. 해안선에서 멀어지며 경치도 등댓불을 향해 불나방처럼 바다 위를 천천히 미끄러졌다. 이 밤중에 작은 배를 타고 우이도를 왜 급히 가는지 나는 궁금했다.

아줌마들은 짧게 답했다.

-요즘 꽃게잡이가 풍어라 꽃게 그물 손질 간다.

-버금이는 올해 몇 살이야?

-열다섯 살이요.

우이도로 그물 손질해 돈 벌러 가는 두 아줌마 남편들은 친구 사이로 작년에 제일호를 타고 함께 꽃게잡이를 나갔다가 그물에 걸린 복어를 배에서 요리해 먹고 복어 독에 중독돼 죽었다. 그날 선창가는 난리가 났었다. 한밤중까지 제일호가 불섬으로 돌아오지 않자 사람들은 횃불을 밝히고 밤늦게까지 기다렸다. 새벽녘에 불섬으로 돌아온 제일호는 화장(밥하는 선원)이 키를 잡고 왔었다. 선장과 기관장이었던 아줌마의 남편들은 이미 바다에서 사망한 뒤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화장은 복어를 한 입밖에 안 먹어 나중에 깨어났다고 했다.

해안선을 벗어난 주낙배는 경치도를 향해 부지런히 통통거렸다. 문바위 끝에서 우이도까지는 한 시간 반이 걸리는 거리로 주낙배가 해안선에서 멀어질수록 아기가 엄마 품을 벗어나는 것처럼 나는 점점 불안했다. 큰 바다의 썰물은 요란했다. 소용돌이가 엄청 크고 소리도 요란하게 내며 물살은 빠르게 흘러갔다. 썰물을 거슬러 가는 배의 속도는 사람의 걸음걸이처럼 더뎠다. 거칠게 “쏴아악! 쏴아아악!” 흐르는 물살 소리에 머리끝이 바짝 솟아올라 갑자기 덜꺽 겁이 났다.

나는 배의 속도를 약간 올렸다. 경운대가리 엔진소리가 ‘토동통통! 토동통통!“ 조금 빨라졌다. 배는 급물살을 가르며 경치도 등댓불만 바라보고 달렸다. 상괭이 두 마리가 나타나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하며 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 왔다. 반질반질한 상괭이 가죽에 달빛이 반사돼 검게 반짝이며 바다 속으로 사라지곤 했다. 상괭이는 돌고래보다 작은 고래지만 든든한 호위병을 만난 것처럼 잠시 두려움이 사라졌다. 상괭이들은 사라지고 경치도까지 왔을 때 아줌마들은 이제 반 왔다고 했다. 주낙배는 경쾌한 경운기소리를 내며 경치도 옆을 지나고 경치도는 발동기 소리를 메아리로 돌려주었다.

경치도 등대는 “하나 둘 셋 넷 다섯” 하고 세면 등댓불을 반짝이며 빙글빙글 돌았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등댓불의 번뜩임이 눈으로 들어왔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우이도 등대는 일곱을 세면 반짝였다. 하늘에는 둥근달이 높이 떠있고 달빛에 반짝이는 윤슬이 우이도까지 쫙 은빛 길을 깔아주었다. 경치도를 뒤로하고 배는 우이도를 향해 달렸다.

달빛에 반사된 커다란 허연 뭔가가 주낙배를 향해 다가왔다. 숨이 멈췄다. 순간 송장처럼 느껴졌다. 빠르게 배 옆을 스치는 물체를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다시 허연 물체가 배 옆으로 떠왔다. 왕해파리가 달빛을 받아 빛을 달하며 떠갔다. 갑자기 무서움이 몰려왔다. 바다는 넓어지고 썰물의 물살은 더욱 빨랐다. 주낙배의 속도는 황소걸음처럼 느려만 졌다. 주낙배의 경운기대가리 엔진 속도를 최대한 더욱 높였다. “토도동통통! 토도동통통!” 경운기대가리는 마라톤 선수가 반환점을 돌아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선수처럼 숨 가쁘게 엔진소리를 냈다.

밤바다는 바람 한 점이 없어 우이도 등대를 바라보고 달리고 바다가 무섭게 검어지더니, 어느 순간 짙은 안개가 바다를 감싸버려 우이도 산꼭대기만 간신히 보였다. 나는 겁에 확 질렸다. 안개에 휩싸이면 아버지도 우이도를 못 찾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경치도를 지나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안개에 뒤덮인 우이도를 보고 아줌마들은 겁에 질렸는지 찬송가를 크게 부르기 시작했다. 짙은 안개에 뒤덮인 우이도는 사라지고 등댓불마저 안 보였다. 사방을 분간할 수 없었다. 등대의 사이렌 소리는 희미하게 들려오는데 나는 솔섬 등대소리인지, 경치도 등대에서 나는 소리인지, 우이도 등대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

아주 짙은 안개 속에서는 일 미터 앞도 안 보여 선박끼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배들도 밤에는 불을 밝히고 다니는데, 주낙배에는 손전등 하나 없고 나침반도 없었다. 혹 있다 해도 나는 항해술을 모른다. 배마저 안개가 감싸버리면 배의 시동을 끄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배에는 닻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는 배를 완전히 뒤덮어 아무것도 안 보였다. 채 십 미터도 안 되는 배 앞쪽에 무릎 꿇고 앉아 기도하는 아줌마들의 모습마저 희미했다.

우리 배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시동을 껐다. 배는 표류하기 시작하고 아줌마들의 울음 섞인 기도 소리만 바다 위에 울려 퍼졌다. 여기는 군산과 인천으로 가는 대형화물선과 유조선의 항로로 어마어마하게 큰 배들에게 부딪친다면 우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아줌마들은 기도를 멈추고 다시 목청껏 찬송가를 불렀다. 나는 기도하는 것보다 찬송가 부르는 것이 더 좋았다. 배들이 찬송가 소리를 듣고 우리를 구조해 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짙은 안개 속은 꼭 구름 속에 있는 듯했다. 물알갱이들이 피부에 닿으면 물방울처럼 흘러내렸다. 옷도 축축해졌다. 바다 표면에서는 지옥 온천에서 피어나는 수증기처럼 물안개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안개 속 공포의 시간이 도깨비에게 홀린 것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배는 물살을 따라 떠내려갔다. 이마에 싸늘한 바람이 느껴지고 배가 조금씩 파도에 흔들렸다. 다행이었다. 바람이 불면서 배 주위의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멀리 밤하늘 한가운데 안개에 가린 달이 흐릿하게 보였다. 우이도가 달 아래 있었던 것을 생각하고 주낙배에 시동을 걸고 달을 바라보고 키를 잡고 서서히 항해했다. 아줌마들의 찬송가는 다시 기도 소리로 바뀌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내 입에서 구슬을 뱉듯 절로 튀어나왔다. 안개는 차츰 사라지며 북두칠성 아래 우이도의 산봉우리가 서서히 나타났다. 어둠 속에서도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다.

나는 배의 엔진속도를 최대한 높였다. 경운기대가리는 곧 부서질 듯 급하게 통통거렸지만 속도를 늦추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배는 빠르게 숨을 헐떡이며 우이도를 향해 달렸다.

안개가 완전히 걷히고 우이도의 거무스름한 윤곽이 수평선까지 나타났다. 아줌마들도 안정을 찾았는지 기도를 멈추고 작은 소리로 찬송가를 불렀다. 우이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졌다. 그래도 바다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훨씬 멀었다. 살랑이던 바람도 멈추고, 바다는 조용하고, 고요해 파도도 전혀 일지 않았다. 우이도는 고요하고 맑은 날 새벽에는 중국에서 우는 닭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내일 아침에는 중국 닭 홰치는 소리를 꼭 한 번 들어볼 생각이었다.

배는 우이도 코앞까지 다다랐다. 그런데 피식피식 거리던 엔진이 크게 덜컥 소리를 내고 엔진이 꺼지고 말았다. 경운기대가리 밑에 깨진 부속품 두 개가 나뒹굴었다. 다행히 우이도 모래언덕이 손에 잡힐 듯 눈앞에 있었다. 해변까지는 한 백오십 미터 정도 되어보였다. 배에는 노도 없고 갑작이 벌어진 일에 크게 당황했다. 나는 배 바닥에 엎드렸다. 간신히 바닷물에 손이 닿았다. 손으로 노를 대신해 주낙배를 저어나갔다. 물살은 뭍에서 바다 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줌마들도 나를 따라 팔을 걷고 배 바닥에 엎드려 손으로 노를 저었다, 배는 소라가 기어가듯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정신없이 허둥지둥 미친놈처럼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손을 물갈퀴처럼 오므리고 칠흑 같은 바닷물을 첨벙첨벙 저었다. 얼마나 세차게 저었는지 손은 마비되어 절여왔다. 아줌마들도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다.

나는 아줌마들과 좌우로 자리를 바꿔가며 오른손 왼손을 번갈아 손으로 노를 저었다. 밤바다에 날치 떼가 나타난 것처럼 요란하게 풍덩거려 튕기는 물방울에 옷은 흠뻑 젖었다. 아줌마들도 바다에 들어갔다 나온 사람들처럼 옷이 몸에 쫙 달라붙어 물에 빠진 생쥐털이 뭉쳐버린 꼴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손에 힘이 빠지고 배는 앞으로 나가지 않았다. 아직 백 미터 정도 남은 것 같은데 배는 물귀신에 붙잡힌 듯 제자리걸음하고 있었다. 손이 물에 젖어 퉁퉁 부풀어 올랐다. 아줌마들도 손이 하얗게 색이 변해갔다. 나는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옷을 모두 벗었다. 팬티만 입고 배 앞 말뚝에 매어진 밧줄을 허리에 묶었다.

제일호 선장부인이 소리쳤다.

-버금아, 어쩌려고?

-내가 바다로 뛰어들어 헤엄쳐 배를 끌고 갈게요.

-버금아, 안 돼, 여기는 물살 거센 바다여.

-내가 불섬 물개잖아요.

제일호 기관장부인이 나를 양손으로 붙잡으며 말했다.

-버금아, 여기는 큰 바다라 불섬 바다하고는 달라.

-선장아줌마, 기관장아줌마 걱정 마세요. 나 수영 잘한다고요.

기관장아줌마가 손을 꽉 붙들고 말렸다.

-버금아, 너 바다로 뛰어들면 죽어 이놈아!

-내가 주낙배를 헤엄쳐 끌고 갈 수 있으니까, 염려하지 마세요.

나는 시꺼먼 바다를 내려다봤다. 금방이라도 바다 속에서 물귀신이라도 나올 듯 섬뜩했다. 나는 숨을 크게 쉬고 밤바다로 “풍덩!” 뛰어내렸다. 그리고 온힘을 다해 팔을 쭉쭉 뻗으며 헤엄쳤다. 빗줄이 당겨지고 뱃가죽이 아프도록 팽팽해졌다. 나는 빠르게 헤엄치며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나 죽을힘을 다해 헤엄쳤는지 팔에 힘에 빠져 마음대로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밤바다에 누워 배영으로 천천히 헤엄치며 잠시 쉬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빈 공간 없이 촘촘히 박혀 반짝였다. 바다가 일렁이며 코로 짠물이 훅 들어왔다. 아줌마들이 주낙배 양 옆에서 손바닥으로 노를 저으며 외쳤다. “영차! 영차! 영차...” 구령에 맞춰 손으로 노를 젓는 것을 보고 나는 다시 수영 자세를 가다듬고 평형으로 수영하며 다리를 쭉쭉 힘차게 내뻗었다. 주낙배가 다시 앞으로 나갔다. 젖 먹던 힘까지 다해 헤엄쳤다.

불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걷기 시작하면서 수영도 배웠다. 늘 바다에서 수영을 하며 놀아 바다가 무섭지는 않았다. 금방 갈 줄 알고 자신 있게 바다로 뛰어들었는데 배는 쉽게 끌려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 팔다리의 힘이 빠지며 몸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팔다리를 움직일 힘이 없었다. 죽는구나 생각하며 아줌마들을 향해 소리쳤다.

-나 좀 살려주세요. 밧줄 빨리 당겨요.

아줌마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버금아! 조금만 참아라.

아줌마 둘이 얼마나 빠르게 밧줄을 잡아당기는지 내 몸이 물속으로 끌려갔다. 짠물을 수없이 먹었다. 주낙배 옆에 다다르자 아줌마 둘이 내 양팔을 하나씩 잡고 배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원래 불섬 아줌마들이 힘이 센 것은 알았지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주낙배에 누워 짠물을 토해냈다.

선장아줌마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버금아, 괜찮냐?

-네, 짠물은 많이 먹었어도 다친 데는 없어요.

-여기는 물살이 거친 바다라 큰일 난다고 했냐. 안 했냐?

-나는 금방 헤엄쳐 주낙배를 끌고 갈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드네요.

기관장아줌마가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내가 바다로 뛰어들면 죽는다고 하던 안 하던...

-아줌마, 나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선장아줌마가 다급히 말했다.

-그나저나 배가 우이도에서 점점 멀어지는데 어떻게 하냐?

나는 몸을 일으켜 우이도를 바라봤다. 배는 점점 떠밀려가고 우이도 해변까지는 한 칠십 미터 정도 남아있었다. 주낙배가 계속 떠내려가면 큰 바다를 하염없이 표류하게 된다는 생각에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밧줄을 허리에 묶었다.

기관장 아줌마가 말했다.

-또 바다로 뛰어들라고?

-예, 어떻게든 우이도까지 끌고 가야지요.

-그러긴 하다만 너 죽을까봐 걱정이다.

선장아줌마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이제 조금만 더 끌고 가면 해변에 닿을 것 같기는 하다.

-내가 헤엄쳐 끌고 가지 않으면 어디로 떠내려갈지 몰라요.

기관장아줌마가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떻게 하든 주낙배를 우이도에 대고 봐야지. 그래야 우리가 살 것 아니냐?

선장아줌마가 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손으로 열심히 노를 저을 텐께 버금이가 다시 한번 헤엄쳐 배를 끌어봐라.

아줌마들이 어서 바다로 뛰어들라고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았지만 다른 방법은 없었다. 나는 밤바다를 한 번 쳐다보고 아줌마들을 바라봤다. 두려움이 가득한 눈에 눈물이 보였다.

나는 아줌마들에게 소리쳤다.

-내가 밧줄 당기라고 소리치면 빨리 당겨야 해요.

-버금아, 걱정 말라고 어서 배를 끌어야겠다. 점점 해변에서 멀어진다.

나는 아줌마들의 걱정과 응원을 받으며 두려움 속에 몸을 달달 떨며 깜깜한 바다로 뛰어들었다. 밤바다의 물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차가웠다. 나는 해변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헤엄쳤다. 아줌마들은 첨벙첨벙 소리가 들리도록 세차게 손으로 노를 저었다.  주낙배가 다시 천천히 해변을 향해 움직였다.

 

 

심청이가 백령도 앞바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나이가 열다섯 살이었다. 계속 헤엄을 치면서도 심청이가 떠올랐다. 죽을힘을 다해 헤엄쳤다. 배는 아주 천천히 조금씩 끌려왔다. 다시 팔다리의 힘이 빠져갔다. 힘이 빠질 때마다 몸을 뒤집고 송장헤엄을 치면서 간간히 휴식을 취했다. 아줌마들은 그만 배로 올라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개구리헤엄으로 안 되면 개헤엄도 쳤다. 힘이 다 해갔다. 육지는 한 오십 미터 남아보였다.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아 계속 수영을 하다가는 죽을 것만 같아 다시 배로 돌아가야겠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언덕 아래 넓은 백사장에서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힘은 빠지고 몸은 물속으로 가라않았다. 물속에 서보아도 발이 닿지 않았다. 양팔을 높이 들고 발가락 끝을 세우고 머리끝까지 잠수했을 때 발가락 끝이 모래땅에 닿았다. “이제는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래사장이 넓게 펼쳐진 곳이라 바다 멀리까지 완만한 경사 덕에 다행히도 수심은 깊지 않았다.

숨을 참고 머리를 물속에 처박고 힘껏 바닷물을 헤치며 뭍을 향해 발끝으로 걸어나갔다. 그렇게 대여섯 번 만에 머리가 물 밖으로 나오고 발이 모래밭에 닿았다. 서서히 물속에서 뒤로 걸어 나오며 배를 끌어당기자 게걸음 치듯 슬슬 끌려왔다.

수심이 가슴 깊이까지 왔을 때는 쉽게 배를 끌어당길 수 있었다. 밧줄을 잡아당겨 큰 바위에 밧줄을 묶었다. 그리고 백사장에 그대로 쓰러졌다. 아줌마들은 주낙배에서 옷보다리를 들고 내리더니 내 곁을 지나며 말했다.

-버금아, 고생했다.

-버금아, 불섬에서 보자. 맛있는 거 사줄게...

기관장아줌마가 내 코를 비뚤고 지나갔다. 아줌마들은 나를 모래사장에 버리고 꽃게잡이 선주 집으로 가버렸다. 나는 모래사장에 누워 꼼짝하지 않았다. 밤하늘에서 잔별들이 눈으로 쏟아졌다. 눈물이 주룩 뺨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엄마의 모진 얼굴이 아른거렸다. 시동도 안 건 주낙배의 밧줄을 풀어 던지고 어서 출발하라고 손짓하던 엄마의 손이 삼천발이처럼 꿈틀거렸다. 다시는 엄마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나를 주낙배 선원으로 평생 부려 먹으려고 어디서 데려온 아이가 아닐까, 아니면 계모가 아닐까 의심도 들었다. 모래사장의 모래알보다 많은 못쓸 생각이 스쳐갔다. 모래밭에 부서지는 파도만이 분을 쓰다듬었다.

나는 여명이 밝아오도록 바닷가 모래밭에 꼼짝 않고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아침이 되어도 화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해가 떠오르기 직전 바닷물이 쫙 빠져나간 우이도 모래언덕은 드넓은 사막 같았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운무에 휩싸인 모래밭을 걸었다. 모래사장은 달랑게들이 빚어 놓은 수억 개의 모래알 진주들이 물기를 머금고 떠오르는 햇빛에 오색 빛으로 아롱거렸다. 한걸음을 옮길 때마다 달랑게들이 백만 대군의 분열과 사열하듯 일사분란하게 집단으로 움직였다. 나는 달랑게들의 현란한 집단 군무에 한나절이나 혼을 빼앗겨버렸다.

 

다음날 정오쯤 목포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희망호를 타고 주낙배를 끌어가려고 왔다. 희망호 뒷말뚝에 주낙배 밧줄을 묶고 나는 끌려가는 우리 배의 키를 잡았다. 속도가 빠른 희망호는 주낙배를 끌고도 힘차게 물살을 가르며 고래처럼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갔다. 우이도 절벽을 기어오르는 염소들 모습이 동물의 왕국 같았다. 절벽을 오르는 새끼염소 곁을 지키는 어미염소를 보자 다시 화가 치밀었다. 염소도 새끼는 소중하게 보살피는데 우리 엄마는 마녀일까. 생각하며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으로 주낙배의 바닥을 “꽝! 꽝!” 쳤다. 아버지가 뒤돌아보며 나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워 보였다. 희망호는 경치도 옆을 지나 문바위를 향하고 있었다. 도초도가 눈앞으로 다가서며 다도해국립공원의 아름다운 경치가 병풍처럼 펼쳐졌다.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도초도 앞바다에서 풍랑을 만나 문바위 뒤 가는개해수욕장으로 피항했다. 그때 최치원은 가는개 후박나무숲을 보고 당나라 수도 도성보다 수목이 무성하다하여 “도초도”라 불렀다.

문바위 절벽 위 풀밭으로 소를 끌고 가는 섬 소년의 모습이 그림처럼 눈에 박혔다. 문바위를 지난 희망호는 솔섬을 지나고 도초도와 비금도 사이의 좁은 바다를 달렸다. 오봉산 끝자락을 돌아서자 불섬 선창이 보였다. 멀리서 바라보아도 엄마가 선창가 끝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희망호가 도착하자 배의 밧줄을 엄마가 받아 선창 말뚝에 묶었다. 나는 엄마가 마녀보다 더 무서워 보였다. 어린 자식을 밤바다로 내몰아버린 엄마는 엄마가 아니라 악마였다. 엄마가 배에서 내리는 나를 잡아주려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엄마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횅하니 집으로 뛰어갔다. 선창에서 집까지 뛰어가는 동안 설움이 북받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한참 후 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들어온 엄마가 말했다.

-남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울면 안 된다.

아버지는 웃으시면서 방으로 들어가고 엄마가 따라 들어가며 물었다.

-목포 언니한테 돈은 빌렸어요?

-아니.

아버지는 힘없이 대답했다.

-그럼 어쩌려고요?

-불섬에서 빌려 봐야지...

-불섬에 그렇게 큰돈을 가진 집이 있을까요?

형의 서울대 법대 입학금을 어떻게 마련할지 걱정하는 소리가 문틈으로 부모님의 긴 한숨과 함께 새어나왔다. 며칠 후 우이도에서 꽃게를 가득 실은 어선 대여섯 척이 만선 깃발을 나부끼며 불섬 선창으로 들어왔다. 우이도로 갔던 그 아줌마 두 분이 대성호에서 내리자 엄마가 선창으로 달려나가 두 아줌마를 붙잡고 물었다.

-꽃게는 많이 잡았는가?

-말도 마세요. 꽃게를 너무 많이 잡혀 배가 가라앉게 생겼소.

-꽃게 어선들이 재미를 봤으면 자네들도 한몫 톡톡히 받겠구먼?

아줌마들은 옷가방을 들고 집으로 가며 소리쳤다.

-버금이, 이제 뱃사람 다 되었소.

-뭔 말인가?

-버금이가 우리 두 사람 목숨을 살렸어요. 이제 진짜 바다 사나이요.

대성호 선장과 기관장은 젊은 사람들이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과 다부진 몸에서 뱃사람의 강인한 짠물 냄새가 퍼졌다. 우락부락한 체격의 그들은 연이어 함박웃음을 터트렸다. 우이도 꽃게어장의 풍어기라 그물을 올릴 때마다 꽃게가 큰 산을 이루고 어창에까지 가득 차면 불섬으로 들어와 목포 상선에게 팔았다. 불섬에 파시가 서는 날에는 선창가가 들썩였다. 뱃사람들은 쌀과 부식도 사고, 식수도 싣고, 기름도 실었다. 술집도 분주하게 바쁜 날이었다. 뱃사람들은 돈을 물 쓰듯 했다.

대성호 선원들도 아줌마들과 술집으로 들어가 대낮부터 웃음소리와 노랫가락에 불섬 선창이 붉게 요동쳤다. 불섬은 잘 삶아진 꽃게의 등짝처럼 저녁놀이 빨갛게 물들며 차츰 검불어지다 어두워졌다. 술집은 하나 둘 불이 꺼지고 대성호 선원들이 아쉬운 듯 신발을 질질 끌며 배에 올랐다. 꽃게를 옮겨 실은 상선은 목포로 가고 목돈을 받은 대성호도 아줌마들에게 꽃게 몇 상자와 신문지에 싼 돈뭉치를 하나씩 주고 우이도로 돌아갔다. 아줌마들은 돈뭉치를 큰 가방에 넣고, 꽃게 상자를 양손에 들고 우리 집으로 들어왔다. 아줌마들은 어깨에 메고 있던 큰 가방에서 돈을 한 묶음씩 꺼내 엄마 앞에 놓았다. 선장아줌마가 꽃게 한 상자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꽃게는 버금이 삶아주세요.

엄마는 돈을 세며 듣는 둥 마는 둥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기관장아줌마가 큰소리로 입을 열었다.

-돈은 안 세 봐도 돼요. 버금이가 살려준 우리 목숨 값이라 생각하고 넣었으니까.

엄마는 돈다발을 양손에 들고 덩실덩실 춤을 췄다.

-고마워. 참말로 고맙네. 우리 큰아들 법대 입학금 마련해줘서...

선장아줌마가 웃으며 말했다.

-버금이 검판사 되면 우리 덕이라고 꼭 말해야 해요.

-여부가 있겠는가. 우리 큰아들 법관되면 불섬 사람은 물론, 도초도 사람 그리고 우이도 사람들도 억울한 일 당하면 모두 덕을 볼 날이 있을 것이네.

기관장아줌마가 나를 쳐다보고 엄마에게 말했다.

-버금이도 똑똑하고 용감해 공부시키면 잘 할 것인데...

-우리 버금이는 고등학교는 광주로 유학 보내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어...

나는 눈물이 빙 돌았다. 불섬에서 목포로 유학은 가도 힘든 일이라 광주까지 유학을 보내는 집은 거의 없었다. 그만그만한 섬 살림에 목포로 유학보내기도 힘든 일인데 광주까지 유학을 보내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엄마는 돈다발을 챙겨 장롱 이불 속에 깊이 숨기고 나를 쳐다봤다.

-이제, 니 형 입학금은 걱정 없다.

눈물 흘리며 환하게 미소 짓는 엄마의 얼굴을 보자 나도 화가 풀렸다. 이젠 형도 서울대 법대생이 될 수 있다고, 아버지는 기쁨이 넘치는 환한 표정으로 서울대학교 입학 등록일만 기다렸다. 그동안 우리 집은 매일 잔칫집이었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아 삶고, 홍어를 썰어놓고, 막걸리를 박스로 쌓아두고, 오고가는 도초 사람들에게 홍어 한 점에 돼지고기 한 점을 올리고 김치를 얹어 삼합 한 점에 막걸리 한 잔씩 홍탁을 대접했다. 도초 사람들이 오가며 형에 대한 칭찬이 자자했다.

아버지와 엄마가 행복하게 웃고 즐거워하는 것은 보고 나도 행복했다. 아버지는 대학등록일 삼 일을 앞두고 불섬 사람들 환송받으며 이미 아들이 검판사라도 된 듯 입학금이 든 가방을 두 손으로 꼭 껴안고 쾌속선을 타고 서울로 떠났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삼 일 후 서울에서 내려 온 아버지는 아무런 말도 없이 술만 마셨다. 아버지가 내려온 날 밤 선창가에서 자랑스럽게 나부끼던 플래카드도 사라졌다. 엄마도 눈물로 며칠을 보냈다. 그리고 어느 날 술에 취한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버금아...

숨이 멈을 것 같은 침묵이 길게 이어졌다.

-아버지가 서울 가서 형은 못 만나고 마감 날 등록이라도 하려고 서울대학교로 찾아갔는데, 합격생 명단에 니 형 이름은 없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니 형은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행방을 감췄다.

-왜 그런 뻔한 거짓말을...

-우리 집 형편에 입학금은 절대 마련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거짓말을 한 모양이다.

엄마가 울며 한탄했다.

-서울대 법대 안 가면 어쩐다고, 불섬 내려와 고기 잡으며 살아도 남부럽지 않게 살 수 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나는 아련하게 소금물보다 짠 눈물이 흘러내렸다. 형은 여름이 되어도 연락이 없었다. 아버지는 불섬 사람 얼굴보기 창피하다고 바다에 나가 살다 시피하고, 엄마는 매일 불섬 선창에 서서 여객선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형을 기다렸다.

 

-끝-

 

송주성 소설가

2014년 제1회 금샘문학상 단편 <금샘>으로 대상 수상하고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제6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제1회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