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주성 소설 발표작

<잊혀진 영웅들> 송주성 단편소설 영덕 장사리해변 학도병 상륙작전

소설가 송주성 2022. 11. 14. 10:34
잊혀진 영웅들
송주성 소설가의 소설읽기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2/11/12 [03:07]
 
▲사진=송주성 소설가. © 포스트24
 
잊혀진 영웅들
 
송주성 소설가



1950년 6월 27일 북한군은 한국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오후가 되자 대통령 사저 이화장에 사람들이 몰려들어 분주히 짐 옮기는 것을 목격한 아버지는 집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모두 집에 있나?
우리 집은 대통령 사저 이화장과 백여 미터 거리에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삼학년이었다. 임시휴교령이 내려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중학교 삼학년 동생은 이미 집에 와 있고, 중학교 일학년 막내는 집에 없었다.
아버지가 다급하게 두리번거리며 다시 외쳤다.
-뭣들 해! 어서 피난 떠날 준비 안 하고...
어머니가 놀라 물었다.
-국군이 잘 싸우고 있다면서요...
-다 헛소리여 어서 짐 싸!
그때 찍찍거리던 라디오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리 국군이 북한 괴뢰군을 물리치고 있습니다. 반드시 괴뢰군을 섬멸하고 서울을 지켜낼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은 절대 동요하지 마시고 생업에 종사하기 바랍니다. 우리 국군이 곧 반격해 평양까지 밀고 올라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국군이 반드시 승리합니다.
 
어머니가 흥분해 아버지를 바라봤다.
-봐요! 국군이 괴뢰군에게 승리를 거두고 있다고 하잖아요?
아버지는 코웃음 쳤다.
-새빨간 거짓말이여! 대통령은 이미 남쪽으로 떠났어.
이화장 관리직 말단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아버지가 분을 이기지 못하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오만가지를 다 싸들고 가다가는 우리 식구 다 총 맞아 죽어, 간단한 옷가지와 먹을 것 있으면 챙기고, 돈하고 금붙이만 챙기란 말이여!
어머니는 못내 아쉬운 듯 이것저것 다시 들어내며 국군이 반격해 북진하면 하루 이틀 새에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다. 이화동 주민들이 잠든 자정 경에 아버지는 가족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한강다리는 군인들이 통제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돌아 우리는 성수동나루터로 향했다. 가깝게 따발총 소리가 들리고 멀리서 쿵쿵 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는 이미 인민군이 미아리를 넘었을 거라고 했다.
서울시민들은 총소리 때문에 집 안에 꼼짝 않고 숨어있었다. 정보가 빠른 몇몇 가족만 사람들 눈을 피해 피난을 떠났다. 순진한 사람들은 대통령의 방송을 굳게 믿고 국군이 곧 반격을 시작하면 인민군쯤은 파리 잡듯 쉽게 때려잡을 줄 알았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성수동나루터에 도착하자 뱃사공이 나타나 아버지 이름을 불렀다.
-이운찬 서기님!
-아이고, 기다리고 계셨군요. 사람들을 피해 오느라 예정보다 많이 늦었습니다.
뱃사공에게 돈을 건네자 액수를 확인하고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는 호주머니에서 돈을 더 꺼내주며 통사정했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두려움 가득한 간절한 목소리에 사공은 인상을 쓰며 배에 타라고 손짓했다. 아버지가 나지막이 빠르게 속삭였다.
-어서들 타.
나룻배가 첨벙첨벙 한강 물을 갈랐다. 한밤중 두시 삼십분경에 한강철교 쪽에서 커다란 폭발 소리가 났다. 우리가 압구정나루터에 도착할 즈음 한 번 더 폭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강 이남에 우리를 내려주고 뱃사공은 다시 서둘러 성수동나루터로 노를 저어 돌아갔다.
이십팔일 새벽 다섯시를 기해 인민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북한군 탱크들이 광화문대로를 점령했다. 한강을 건넌 사람들은 군인과 경찰 그리고 고위직 공무원들뿐이었다. 대통령은 하루 전에 대구까지 피신했다가 국회의원들의 질책을 받고 대전으로 돌아와 담화문을 녹음해 마치 서울에 있는 것처럼 세 번이나 방송했다.
 
서울을 점령한 북한군은 삼 일 동안 남진하지 않고 남로당원들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기만 기다렸다. 그동안 우리 가족은 수원까지 걸어가 겨우 기차를 탈 수 있었다. 인민군은 칠월 일일부터 한강도하를 시도했다. 하지만 북한군이 삼 일 동안 남진을 멈춘 사이 한강 이남에서 국군이 재정비해 방어선을 구축했다. 인민군은 국군의 저항에 부딪쳐 한강을 건너는데 삼 일이 걸리고, 칠월 삼일 한반도에 상륙한 미군 특수부대가 오산 죽미령에서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미군 대대병력으로 북한군 주력부대 사단병력을 막을 수는 없었다. 국군과 미군은 후퇴해 금강에 방어선을 구축하고 유엔군이 들어오고 있으므로 칠월 이십일까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전에서 북한군을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인민군은 팔월 십오일 광복절까지는 부산을 점령한다는 목표로 파상공격을 펼쳐 칠월 이십일 인민군은 T-34탱크를 앞세우고 대전시내로 밀고 들어왔다. 탱크가 “크르릉! 크르릉!” 땅을 흔들 때 아버지는 다시 서둘러 피난을 떠나야 한다고 다급하게 소리쳤다. 우리는 보따리를 하나씩 들고 아버지를 따라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그때 북한군이 쏜 폭탄이 귀가 먹먹하도록 굉음을 내며 우리 가족 한가운데 떨어져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 삼형제를 껴안고 몸으로 폭탄을 막다가 즉사하셨다. 부모님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인민군의 집중공격을 피해 나는 동생들 손을 붙잡고 무조건 산속으로 도망쳤다.
우리는 피난민 행렬을 따라가다 우연히 국군부대를 만나 악착같이 국군을 따라 이동했다. 국군은 금산으로 가면서 인민군유격대를 만나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전주로 이동해 기차를 타고 다시 남원으로 갔다. 군인아저씨들은 끼니때가 되면 우리 삼형제에게도 급식을 나누어주었다.
-밥 많이 먹고 하루라도 쑥쑥 자라서 니들도 국군이 돼 용감히 싸워야 한다.
국군은 남원에서 여수로 후퇴해 배를 타고 다시 부산으로 이동했다. 대통령은 언제 왔는지 부산에 임시정부가 설치되고 국군은 다시 낙동강방어선의 최북단 대구로 이동했다. 나는 대통령이 머무는 부산이 가장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다. 부산은 피난민들로 난리 통이었지만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았다. 동생들을 데리고 부둣가 영도다리 아래서 배를 곯으며 피난민들 틈에서 지냈다.
북한군은 칠월 삼십일일까지 진주를 점령하고 광복절기념식은 부산에서 하겠다고 장담하는 김일성의 명령을 따라 포항, 대구, 왜관으로 이어지는 낙동강 최후방어선을 맹공격했다. 그러나 유엔군과 미군의 본격적인 참전으로 낙동강방어선에서 일진일퇴의 전투가 구월 중순까지 이어졌다.
구월 십일부터는 학도병유격대를 모집하는 군용트럭들이 부산역과 부산항을 돌아다녔다.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군용트럭을 따라다니며 건빵을 얻어먹었다. 국군은 학생들을 보면 트럭을 세우고 건빵을 나누어주면서 벌떼처럼 모여든 학생들 앞에서 가두연설을 하였다.
 
우리는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 바쳐 싸워야 합니다. 부모형제와 나라를 지키는 일에 앞장섭시다. 나라가 없는 민족은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피 끓는 청춘들아 조국을 구하는 영웅이 되자.
 
나는 아버지 어머니 원수를 갚고 나라를 구해 영웅이 되자는 소리에 감동받았다. 둘째 준수와 막내 준호도 부모님 원수 인민군을 죽이고 조국을 구하는 영웅이 되자고 소리쳤다. 나는 동생들 굶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학도병 지원을 결심했다. 막내가 어려서 받아줄지 걱정이었지만 준수와 준호를 데리고 무조건 군용트럭에 올라탔다. 시민과 군인들이 열렬하게 환호해주었다. 우리 말고도 많은 학생들이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했다. 학도병지원자 중에는 대학생, 고등학생, 중학생도 있었다. 막내도 키가 커 군인들에게 쫓겨나지 않아 다행이었다.
우리를 실은 군용트럭은 부산에서 북쪽으로 향했다. 그래도 세상물정을 아는 대학생들이 대구로 가는 것 같다고 했다.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인민군과 유엔군이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데 국군이 수적으로 부족해 최후의 방어선인 다부동전선이 뚫릴 위기라고 떠들었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리는 군용트럭에서 한 학도병지원자가 일어나 “나라의 주인은 어른이 아니고 학생이 미래의 주인이므로 대한민국은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소리쳤다. 모든 학도병 지원자들이 박수 치며 함성을 지르고 준수와 준호도 흥분하고 있었다.
군용트럭이 도착한 곳은 안동의 임시육군훈련소였다. 우리는 군번 없는 학도병이었으므로 군복 같은 군수용품은 지원되지 않았다. 전국에서 피난 와 학도병에 지원한 학생들이 텐트로 만든 임시 막사에 수용되었다.
다음날인 구월 십이일은 하루 종일 소총훈련을 받았다. 군인들은 학도병들을 모아놓고 소총손질법과 장전하고 발사하는 법만 알려주었다. 학도병에게 세 발의 총알을 주고 군인들이 사격장을 돌아다니며 떠들었다.
-총알 하나가 인민군 목숨 하나다. 총알을 아껴 조준 사격해야 한다. 내가 적을 죽이지 못하면 적이 나를 죽일 것이다. 명심해라! 내가 먼저 적군을 죽여야 내가 산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우렁찬 학도병들의 목소리가 안동훈련소에 울려 퍼졌다. 모든 인민군을 박살낼 듯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함성이었다. 학도병들이 세 발씩 총알을 쏴보는 것으로 소총사격훈련은 끝이 났다. 나머지 시간은 북한군 탱크를 공격하는 방법을 교육하며 T-34소련제 탱크는 바퀴의 무한궤도가 가장 취약한 곳이라 했다. 그러나 탱크를 잡는 무기라고 설명한 무반동포는 실제로 지급하거나 훈련을 시키지는 않았다.
십삼일 오전에 군용트럭들이 훈련소로 모여들자 군인들을 태우고 낙동강전선으로 갈 것이라고 학도병들이 떠들었다. 그러나 군인들 대신 학도병에게 군용트럭에 탑승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안동훈련소를 출발한 삼십여 대의 군용트럭들이 북쪽의 낙동강전선이 아닌 남쪽의 부산으로 향했다. 그러나 왜 학도병들이 부산으로 가는지 말해주는 군인은 한 명도 없었다. 우리는 오후가 되어서 부산항 제4두부에 도착했다. 준수와 준호는 부산항으로 돌아오자 고향에라도 온 것처럼 좋아했다. 전쟁 통이었지만 갈매기들이 평화롭게 바다 위를 날아다니는 부산항이 나도 반가웠다.
부산항 제4두부에 집결해 오후 세시부터 학도병으로 부대를 편성했다. 소대장은 현역군인들이 맡고 분대장은 대학생학도병이 맡아 중고생들을 분대원으로 편성했다. 군인들은 우리를 독립제1유격대대라고 불렀다. 총인원 칠백칠십이 명의 학도병으로 부대를 편성하고 여학생들의 박수를 받으며 아귀처럼 커다란 입을 벌리고 있는 LST군함에 소대별로 승선했다. 전원이 승선하는데 삼십분도 걸리지 않아 세시 삼십분에 승선완료 하였다. 소대장과 분대장들이 돌아다니며 소대별로 일인당 건빵 한 봉지와 미숫가루 세 봉지를 지급했다. 지급된 식량의 양으로 봐서는 하루 정도의 작전에 투입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도 어디로 가는지는 몰랐다.
구월 십삼일 오후 네시 군함 문산호는 부산항 제4부두에서 출항했다. 하지만 태풍이 제주도까지 올라와 부산항에 정박한 배들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며 뺨 때리는 소리를 냈다. 모두 출항은 불가능한 강한 바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시간에 부산항에서 출항하는 배는 문산호가 유일했다. 군함은 항구를 빠져나와 오륙도에서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동해의 파도는 산처럼 일렁였다. 배를 처음 탄 학도병들은 심한 뱃멀미에 사방에서 토하기 바빴다. 문산호가 동해로 들어서자 태산처럼 높은 파도가 군함을 집어삼킬 듯 덮치고 학도병들은 배 바닥을 뒹굴었다. 동해에 어둠이 짙게 깔리고 별도 달도 없는 칠흑 같은 바다에서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군함이 하늘로 솟구쳤다 바다 깊이 처박히는 밤바다에서 막내 준호가 겁에 질려 비바람 속에서 소리쳤다.
-형! 우리 어디로 가?
준수가 목청껏 대답했다.
-그러게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은 확실한데... 포항이 낙동강전선 최후방어선이니까. 우리를 거기에 투입하려고 가는 거 아닐까!
나는 딱히 아는 것도 할 말도 없었지만 막내를 안심시키려고 한마디했다.
-준호야, 걱정 마 우리 같은 학생은 최전방으로 보내지는 않을 거야!
-형, 인민군하고 직접 전투를 할까?
-내 생각에는 울산쯤에 내려서 후방부대 탄약 같은 거 나르는 일이나 시키겠지...
막내가 어느 정도 안심하는 눈빛이었다. 밤새 문산호는 어둠과 태풍을 뚫고 북진하고 태풍이 문산호를 앞질러 올라가면서 거대한 풍랑에 섬만한 군함이 검은 산처럼 요동쳤다.
군함은 십사일 새벽 다섯시에 영덕 장사리해안에 도착했으나 태풍 케지아가 문산호를 뒤집을 듯 거세게 몰아쳤다. 상륙을 시도하던 군함은 중심을 잃고 꽁무니가 파도에 떠밀려 육지와 삼십여 미터를 남기고 장사리해수욕장과 나란하게 모래밭에 좌초되었다. 문산호는 2,700톤급의 거대한 군함으로 배의 높이가 십 미터가 넘어 학도병들은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철옹성에 갇힌 거나 다름없어 학도병들은 상륙하기 위해 군함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그때 북한군의 집중적인 박격포 공격이 시작되었다. 빗발치는 총알과 폭탄 속에서 학도병들은 모두 엎드려 벌벌 떨고 북한군의 공격은 두 시간 이상 계속되었다. 문산호 앞부분이 여러 발의 박격포 포탄에 크게 파손돼 물이 차오르면서 배의 중심이 무너지며 심하게 기울어 전복될 듯 위태로웠다. 유엔군과 국군이 포항지구로 상륙할 것으로 판단한 북한군은 세 개 사단의 병력을 배치하고 공격해, 칠백칠십이 명의 학도병은 군함과 함께 수장될 위기에 처했다.
우리 삼형제는 3소대에 편성되어 나는 준수와 준호의 손을 꽉 잡고 군함 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었다. 독립유격대대 대장은 소령으로 소대장들만 현역군인이고 학도병은 군번도 없고 정식적인 기록도 없었다.
작전명령 174호는 미군특수부대가 받은 명령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영덕상륙작전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작전지역을 비밀리에 변경했다. 미군으로부터 상륙작전을 넘겨받은 한국군도 낙동강전선의 위급함을 이유로 거부했다. 유엔군과 미군, 한국군이 모두 거부한 영덕상륙작전은 포항지구를 점령한 북한군의 세 개 사단 보급선을 차단하고, 유엔군의 상륙작전을 위해 북한군을 유인하기 위한 위장상륙작전이었다.
 
학도병을 동원해 부산항에서 출항할 당시에는 국방부장관까지 나와 대대적인 출정식을 성대하게 치르며 국방부장관은 사단이란 표현을 여러 번 사용했다. 실제는 대대병력도 안 되는 병력이었는데 환영사에서는 독립제1유격대대장 소령을 사단장으로 호칭했다. 동원된 여학생들이 나와 가슴에 수놓은 학병이란 마크를 달아주었고 모자에는 태극기 머리띠를 둘러주었다. 학도병 칠백칠십이 명과 문산호 선원 그리고 기관병 오십육 명이 출정식에 참석했다.
학도병 대표가 출정식의 각오를 다짐했다.
-나라를 구할 일념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펜 대신 총을 들고 싸워,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하겠습니다.
학도병의 출정식이 얼마나 성대하고 과장되게 치러졌는지 다음날 평양방송에서도 보도가 될 정도였다. 학도병들은 당장이라도 인민군을 때려잡을 기세였다.
 





인민군의 대대적 공격 속에서 겨우 목숨을 구한 학도병의 상륙작전은 오후 두 시부터 시작돼 문산호의 앞 램프가 열리고 상륙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그러나 램프가 열리자 총알이 빗발치듯 날아들어 학도병들은 모두 뒷걸음질쳤다.
그때 1소대장 박 소위가 외쳤다.
-1소대 돌격앞으로!
하지만 그의 명령을 따라 바다로 뛰어드는 학도병은 아무도 없었다. 흥분한 박 소위가 완전군장을 하고 총을 든 채 바다로 뛰어들자 1소대원들도 그를 따라 바다로 뛰어내렸다. 파도가 상어 떼처럼 몰려들어 1소대원들 중 누구도 다시는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하고 모두 높은 파도에 휩쓸려 떠내려갔다.
유격대 대장이 특공대를 먼저 상륙시켜 문산호와 해수욕장의 바위에 로프를 연결하고 천신만고 끝에 해수욕장과 문산호를 네 개의 로프로 연결하는 데 성공했다. 학도병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함상에서 연결된 로프를 잡고 바다로 뛰어내려 상륙을 시작했다. 소대별로 상륙을 시도하고 우리 형제는 3소대의 로프에 줄을 섰다. 맨 앞은 내가 서고 막내 준호가 가운데 그리고 마지막에 둘째 준수가 따라오도록 했다. 모래해변까지는 약 삼십 미터 거리였다. 인민군 총알이 날아오고 로프 중간에서 팔 힘이 빠져 높은 파도에 휩쓸리는 학도병이 속출했다.
준수가 로프를 움켜지고 헤엄치며 악을 쓰듯 소리쳤다.
-형, 형! 준호가 위험해!
나는 뒤돌아보았다. 준호의 총이 달랑달랑 거리고 한 손으로 로프를 잡고 발버둥쳤다. 나는 헤엄쳐 가 준호 총을 받아 어깨에 메고, 다시 로프를 잡으려고 안간힘 썼지만 무거운 총무게와 지친 몸으로는 수영을 할 수 없었다. 두 개의 총을 멘 어깨 힘이 빠져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태풍으로 일렁이는 엄청난 파도는 나를 모래알처럼 삼켰다. 한 십 미터만 헤엄쳐 가면 백사장이었지만, 발버둥칠수록 거센 풍랑은 바다로 끌고 들어갔다. 나는 파도에 휩쓸리며 바닷물을 한없이 마시고 힘이 빠져 이제는 죽는구나 싶었다. 그때 허우적거리는 손에 잡히는 것이 있었다.
밧줄이었다. 내가 파도에 뒹구는 것을 본 막내 준호가 던진 구명줄이었다. 밧줄을 잡고 허우적거리자 준수가 달려와 준호와 함께 밧줄을 잡아당겼다.
동생들이 나를 건져내고 다급하게 물었다.
-형! 괜찮아?
-형아! 괜찮아?
나는 바닷물을 토하며 손을 흔들었다. 인민군이 쏘아대는 총알이 무수히 날아와 우리는 맨손으로 모래구덩이를 파고 몸을 숨겼다. 구덩이에 들어가기 무섭게 돌격명령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특별히 부대의 구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어느 소대 소속인지 소대장이 누구인지 또한 소대원 얼굴조차 몰랐다. 소대장들은 고래고래 돌격을 외치고 학도병들은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돌진했다. 살아서 상륙한 학도병들이 해수욕장 모래를 맨손으로 파헤쳐 반공호를 구축했다. 학도병들의 지원사격으로 상륙한 학도병이 늘어나면서 전투가 치열했다. 전투경험이 전무한 학도병들은 겁 없이 돌진하며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일진일퇴의 전투가 벌어졌다. 인민군도 쉽게 물러서지 않고 포를 쏘며 맹렬하게 저항했다.
나는 준호 뒤에서 총을 쏘며 무조건 고지를 향해 달렸다. 인민군의 기관총알이 머리 위로 “피웅! 피웅! 피웅...”날아가고 폭탄이 사방에서 터지며 모래폭풍이 일고 학도병들이 폭탄에 맞아 하늘을 날아 떨어지며 붉은 피를 뿌렸다. 모래사장에는 학도병들의 토막 난 팔다리가 널리고 살점이 흩어져 떨어졌다. 해안에서 가까운 고지를 학도병들이 총공격해 맹렬히 저항하던 인민군을 섬멸하고 이름 없는 고지를 탈환하는데 성공하였다. 학도병들이 함성을 지르며 인민군을 물리친 승리에 감격했다. 준호도 총을 하늘로 들고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준수가 보이지 않았다.
준호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준수형 인민군 총에 맞아 죽은 거 아니야?
나는 막내 준호에게 소리쳤다.
-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죽었으면 우리 학도병은 군번도 없는데 어떻게 준수형을 찾아...
준호가 울먹이며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지금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야!
불길한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준수를 찾아볼 시간도 없이 학도병이 맹렬히 공격해 북한군을 271고지까지 후퇴시켰다. 해안에 교두보를 확보한 학도병은 작전명령대로 삼면에서 포위하고 공격해 마침내 오후 세시경에 200고지를 완전히 점령하고 사령부를 설치한 유격대는 해안의 적 토치카와 포진지 및 적의 패잔병들을 소탕하고 271고지를 집중 공격해 영덕에서 포항으로 연결되는 국도를 점령하고 적의 주요 보급로를 차단하는데 성공했다.
북한군의 적진 후방지역인 영덕 장사리해변에 상륙한 독립제1유격대대 학도병들은 대규모 북한군이 포항에서 장사리로 온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해안고지에 집결해 진지를 구축하고 인민군의 공격에 대비했다.
학도병은 몰려오는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러 220고지를 끝까지 방어하였지만 북한군 정예부대가 탱크를 앞세우고 다시 공격해오자 제1독립유격대 대장은 학도병을 장사리해변 200고지로 후퇴시켰다. 모든 학도병이 집결하였으나 준수는 보이지 않았다. 준호가 준수의 이름을 부르며 200고지를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준수 형! 준수 형...
나는 준호를 진정시키려고 애쓰다 계속 우는 준호의 뺨을 갈기며 소리쳤다.
-울지 마! 준수는 살아있다고...
준호와 사방을 찾아다녔지만 준수는 보이지 않았다. 학도병 시체를 하나하나 뒤집으며 준수인가 확인했지만 결국 찾을 수가 없었다.
십팔일 오전 아홉시를 기해 북한군은 탱크 넉 대를 앞세우고 200고지를 총공격해왔다. 학도병도 화력을 다해 방어하였으나 실탄이 바닥나면서 200고지를 포기하고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도병들은 고지를 빼앗기자 해안선을 따라 육로로 포항에 주둔하고 있는 국군 제3군단으로 철수를 결정했다. 그러나 매복한 북한군과 갑자기 맞닥트려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북한군 소대병력을 전원 사살했다. 학도병들이 사격을 멈추자 포로 한 명이 살아 참호에서 손을 들고 일어섰다. 그의 얼굴을 보고 준호도 뛰어가며 외쳤다.
-준수 형!
준수가 분명했다. 그러나 준수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했다. 그의 발목은 인민군들이 채워둔 쇠사슬로 묶여 있었다. 북한군은 포로로 잡은 학도병들을 맨 앞에 내세워 총알받이로 이용했다. 누구든지 인민군 군복을 입혀놓으면 살기 위해 아군을 향해 총을 쏠 수밖에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준수는 목숨을 건졌다.
 
헬기 한 대가 학도병 진지 앞으로 날아와 착륙하고 학도병유격대 총대장 이 소령이 내렸다. 그는 학도병을 구출하기 위해 부산에서 군함이 출발했으므로 모든 학도병은 최초의 상륙지점 장사리해변에 집결해 군함을 기다리라고 명령했다.
나는 다리를 절뚝이는 준수를 업고 어린 준호는 내 총과 준수 총 그리고 자기 총까지 총 세 자루를 메고 걸었다. 장사리를 향해 가는 학도병에게 200고지를 점령하고 있던 북한군이 공격을 퍼부었다. 학도병유격대는 유엔군의 비행기 폭격과 함정의 엄호사격을 받아 저녁 일곱시경에 장사리의 좌초된 문산호 앞에 집결해 해변에 모래구덩이를 파고 구조하러 올 함정을 기다렸다.
학도병은 남으로도 북으로도 갈 수 없는 장사리해변에 좌초된 문산호와 같은 운명으로 최악의 경우 문산호와 함께 장렬히 산화할 생각으로 구조함을 기다리며 버텼다. 하지만 눈앞 200고지에서는 인민군이 대치하고 있어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수시로 북한군 저격수들이 쏘는 총알이 날아와 학도병의 머리를 관통했다.
그날 라디오에서는 인천에 상륙한 국군과 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기 위해 진격 중이란 방송을 했다. 학도병들은 조국을 구했다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십사일 밤에 영덕 장사리상륙작전이 성공하였다는 보고를 받은 연합군사령관 맥아더는 완벽하게 김일성을 속인 것을 기뻐하며 십오일 새벽 다섯시를 기해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했다. 북한군의 소규모 병력만 남아있던 인천에 상륙한 연합군은 쉽게 승리를 거두고 서울을 탈환하기 위해 빠르게 전진했다.
 
다음날 십구일 새벽 다섯시에 철수작전을 수행할 LST함 조치원호가 나타났다. 파도가 높아 조치원호도 해안으로 접근하지 못해 고무보트를 타고 승선하기로 결정되었다. 조치원호는 해안에서 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정박해 있고 여섯시 삼십분부터 함포의 지원사격을 받으며 철수작전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인민군의 포격과 집중사격으로 고무보트가 뒤집히고 학도병들이 파도에 휩쓸리며 사망자가 속출했다. 장사리해변에서는 고무보트 차례를 기다리며 학도병들이 마지막 힘을 다해 인민군과 싸웠다.
우리 삼형제는 맨 마지막 조에 편성돼 철수를 기다리며 철수하는 학도병들을 엄호했다. 아군의 함포사격에 대응해 북한군의 폭격도 격렬하였다. 오후 세시까지는 철수작전을 마무리하라고 지휘관들이 악을 썼지만 고무보트 수가 적어 철수는 더디기만 했다.
북한군의 박격포탄이 조치원호의 주위에 떨어지기 시작하자 철수작전을 지휘하는 미군 지휘관이 승선을 서두르라고 소리쳤다. 조치원호의 철수시간 오후 세시가 돼도 해변에는 육십여 명의 학도병들이 남아있고 마지막으로 우리 소대의 승선 차례가 되었다.
나는 맨 앞줄이고 준호가 맨 끝줄에 서 있었다. 준수는 중간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고무보트가 오자 준호를 불러 먼저 철수시키고 나는 맨 마지막 줄로 갔다. 인민군의 폭탄이 터지는 속에서도 준호가 무사히 조치원호에 승선하는 것이 보였다.
미군 지휘관은 빨리빨리 승선하라고 조치원호에서 “호르륵! 호르륵!” 호루라기를 불며 소리 지르며 손짓을 요란하게 하였다. 준수의 차례가 돼 그가 고무보트에 오르자 북한군이 쏜 박격포탄이 조치원에 명중했다. 위기를 느낀 미군 소령은 철수작전의 종료를 선언했다.
고무보트를 타고 오는 학도병과 해변에 남아 인민군과 전투를 치르는 학도병들을 보면서도 함정의 앞 램프를 닫으며 조치원호가 후진하기 시작했다. 준수가 탄 고무보트가 조치원호를 쫓아가고 백사장에는 철수를 기다리던 학도병 삼십여 명이 남아 마지막 총알을 쏘며 인민군과 싸웠다. 그러나 조치원호는 군번도 이름도 없는 학도병을 버리고 빠르게 남진하기 시작했다.
배의 갑판에서는 준호가 펄쩍펄쩍 뛰며 소리쳤다.
-준석이 형 꼭 살아서 돌아와야 해! 부산항 제 4부두에서 형이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게. 언제까지나...
준호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했다. 조치원가 떠나자 북한군이 해변으로 몰려오며 총공격했다. 모래톱에 남겨진 학도병들은 총탄에 쓰러져가고 나는 쫓아오는 북한군을 피해 바다로 뛰어들어 남쪽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헤엄쳤다.
파도소리에 점점 총소리가 묻혀갔다.
-끝-
 

▲송주성 소설가의 모습. © 포스트24
 
【송주성 소설가 약력】
□2014년 제1회 금샘문학상 단편 <금샘>으로 대상 수상하고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제6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제1회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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