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날 특집 '계모꽃'
송주성 소설가의 단편소설
이영자 기자 | 입력 : 2022/05/02 [18:38]
© 포스트24
계모꽃
주방 창틀에 올려놓은 팬지꽃이 오월의 햇살에 보랏빛으로 활짝 피어있었다.
경란은 경쾌하게 손을 놀려 김밥을 쌌다. 일명 꼬마깁밥으로 아들 우람이는 먹어도 먹어도 맛있다고 마약김밥이라고 불렀다. 어린이날 아침부터 서두르는 것은 우람이가 열 살이 되도록 아직 한 번도 롯데월드를 못 가 보았기 때문이다.
우람이는 다른 애들보다 훨씬 뚱뚱하다. 날마다 치킨, 피자, 햄버거를 먹는 데도 하루라도 못 먹는 날에는 난리가 난다. 아빠에게 전화를 하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상계동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에게까지 전화를 한다. 그런 날은 엄마라고 부르지도 않아 걱정이 되지만 경란은 우람이가 먹고 싶다는 것은 거의 모두 군말 없이 사준다. 우람아빠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라 주중에는 지방 병원을 돌아다니며 약품을 납품하고 주말에 올라오는 경우가 허다해 경란은 우람이와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았다.
정년퇴직을 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일주일에 서너 번 우람이를 보러오는 것이 유일한 행복으로 경란이 결혼하기 전에는 우람이를 키우면서 양육비로 오십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양육비가 끊어지면서 할머니는 생활이 더욱 힘들어졌다고 불평하고. 할아버지는 퇴직연금을 일시불로 받아 우람아빠 결혼할 때 암사동에 작은 빌라 한 채 사는데 보태고 오십여 만 원의 아파트주택연금으로 생활한다. 우람이 친엄마는 우울증이 심해져 이유 없이 아이를 때려 우람이는 스트레스로 탐욕이 심해졌고 우람아빠는 견디다 못해 이혼했다.
경란은 전 남편이 다른 남자와 얘기만 해도 집요하게 의심하며 “누구냐? 무슨 얘기를 했냐? 어떤 관계냐? 왜 웃었느냐? 그놈을 좋아 하느냐...” 등등 슈퍼만 가도 꼬치꼬치 개가 뼈다귀를 빨듯 물고 늘어지는 의처증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이 곤란해 이혼했다. 경란은 전 남편과 사이에 고등학생 딸이 하나 있어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난다.
경란은 꼬마김밥 삼십 개와 토스트 다섯 개를 만들고 야채샐러드까지 5단도시락찬합에 가득 담았다. 멀리 여행을 떠나는 사람처럼 커다란 배낭을 메고, 아빠 없다고 생떼를 쓰는 우람이를 달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우람아빠는 지방에서 올라오는 중이며 오후 1시에는 롯데월드에 도착할 거라고 하였다.
경란은 버스를 타기 전에 동네 치킨집에서 통닭 한 마리 튀기고 우람이 성화에 못 이겨 콜라도 큰 패트병으로 하나 샀다. 배낭을 멘 채 통닭과 콜라를 양손에 들고 신나게 팔을 흔들며 걷는 우람이 뒤를 따라 걸었다. 버스정류장까지 정돈된 길가의 커다란 화분마다 팬지가 노란꽃, 흰꽃, 보라색꽃으로 꽃잎을 펼치고 반겼다.
경란은 유럽에서 팬지꽃을 계모꽃이라 부른다는 소리를 듣고, 새엄마가 되고부터 남다른 애착이 생겼다. 팬지는 보살피지 않아도 물만 주면 이른 봄부터 초겨울까지 빨강, 노란, 파랑, 하얀 꽃을 볼 수 있는 질긴 생명력과 꽃잎 하나에 두 개의 꽃받침대가 있는 것을 보면 계모꽃이란 말이 틀리지 않았다. 경란은 항상 계모라고 부르는 우람이 할머니가 생각나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버스는 어린이 손을 잡은 가족 나들이 객들로 만원이었지만 다음 정거장에서 자리를 잡고 우람이와 나란히 앉을 수 있었다. 핸드폰 게임에 빠진 우람이는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통닭 봉지에서 새어나오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버스 안에 가득 퍼졌다. 버스는 애벌레가 기어가듯 꽉 막힌 도로를 한 마디씩 움직였다. 넉넉잡아도 반시간이면 갈 거리를 한 시간 넘게 가도 롯데월드까지는 한참이나 남아 있었다.
우람이가 게임을 하며 물었다.
-아빠는 롯데월드에 와 있는 거야?
-아니! 오후에 오신다고 했어!
-진짜지?
-그럼, 꼭 오실거야...
경란의 대답은 흐리멍덩했다. 사실 우람아빠가 약속시간에 나타난 적은 없었다. 늘 몇 시간씩 늦거나 아니면 그 다음날 나타나곤 했다. 그래도 오늘 만큼은 꼭 일찍 와야 한다고 믿었다. 경란도 딸내미가 초등학교 졸업하고는 한 번도 놀이공원을 간 적이 없었다.
경란은 버스 안의 가득한 승객들을 둘러보며 집을 나서기 전에 우람이에게 꼬마김밥 10개와 토스트 하나를 먹인 게 잘한 일이라고 거듭 생각했다. 배가 고프면 절대 참는 법이 없는 우람이가 언제 먹을 것을 달라고 떼를 쓸지 몰라, 도착이 늦어질수록 경란은 불안했다.
롯데월드에 가까워 올수록 길이 막혀 버스는 꼼짝도 하지 않는데 우람이가 자꾸 경란을 쳐다보고, 지루한 듯 혀를 날름거리며 통닭 봉지로 자주 눈길이 갔다. 버스는 올림픽공원 앞에 있었다.
경란은 불안한 마음에 의식적으로 우람이 손을 꽉 잡았다. 손을 빼내려고 자꾸 손목을 비틀고 몸을 비비꼬던 우람이 입에서 욕이 새어나왔다.
-씨!
-씨 이!
우람이는 열 살밖에 안 되었지만 몸무게가 90킬로그램이 넘는 아이였다. 경란이 잠깐 우람이 손을 놓는 순간 사자가 토끼를 덮치듯 통닭 봉지를 낚아채 갔다. 빼앗으려 했지만 우람이는 막무가내로 봉지를 열고 통닭을 손에 들고 허겁지겁 뜯어먹어 버스 안 손님들 눈이 일시에 경란에게 쏠렸다.
사람들은 엄마가 왜 못 말리는지 그게 더 궁금한 눈초리여서 경란은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버스정류장에서 문이 열리자 우람이 손을 잡고 버스에서 내려 땀을 비질비질 흘리며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그나마 한적한 쪽 벤치에 우람이를 앉히고 통닭 한 마리를 다 먹을 때까지 말없이 기다렸다.
경란은 헛웃음만 나왔다. 전 남편 때문에 친딸하고는 어디 외출도 함부로 못하고 어린이날이라고 딱 한번 롯데월드를 와 본 이후로 가족나들이를 해 본 적도 없었다. 항상 집에서 세 식구가 모여앉아 삼겹살을 구워 먹는 게 가장 큰 파티였다.
전 남편은 밖에 나가면 경란을 남자들이 쳐다본다고 싸우고, 경란이 남자보고 웃는다고 시비를 걸어 차라리 집 밖으로 안 나가는 게 마음 편했다. 경란은 딸을 생각하면 친모에게 갖은 고통을 받고 자란 우람이에게 생모 이상으로 더 잘 해주려고 노력했다.
통닭 한 마리를 게임하듯 먹어치우고 콜라를 두 손으로 들고 마시다 넘쳐, 목과 옷을 버리면서 순식간에 패트병을 비운, 우람이가 경란의 손을 잡아끌어 맥없이 벤치에서 일어났다. 올림픽공원에서 롯데월드까지 걷기 시작했다. 송파구청 앞 화단 팬지꽃들이 화려한 색을 서로 뽐내 경란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곰새끼처럼 어슬렁어슬렁 경란의 꽁무니를 쫒아오던 우람이가 길 건너편에서 핫도그 파는 포장마차가 보이자 경란의 옷을 잡아당겨 찢어질듯 늘어나 속옷이 다 드러났다.
경란을 끌고 지하도를 건넌 우람이는 핫도그를 쉬지 않고 다섯 개를 퀙퀙 거리며 먹어 어묵국물을 코앞에 갖다 바쳐도 국물마실 시간도 아까운지 핫도그만 연거푸 입속으로 밀어넣었다.
롯데월드까지는 딱 한 정거장 남았는데 우람이가 걷지 않고 주저앉아 지하철을 타야 했다. 발 디딜 틈도 없는 열차에 겨우 우람이를 태우고 경란도 발을 들여놓았다. 우람이의 옆구리 살들이 경란의 몸을 압박해 숨쉬기조차 힘들고 아이들이 아우성쳐 옷은 땀으로 흥건했다. 소나기처럼 땀을 흘리는 우람이 얼굴을 손수건으로 닦아주며 잠실역에서 내렸다.
정오가 조금 지난 롯데월드 입구는 긴 줄의 행렬로 입장하는 데만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할 것 같았다. 우람이를 사람들이 덜 붐비는 식당가 피자집 대기의자에 앉혀놓고 경란은 표를 사려고 구불구불 백 미터도 넘게 서 있는 줄 맨 뒤에 섰다.
긴 기다림 끝에 표를 사 왔는데 우람이가 사라지고 없어 가슴이 덜컹했다. 당황해 두리번거리는 경란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새엄마, 새엄마! 여기야 이리 와!
피자가게에서 부르는 소리에 경란은 낮술이라도 마신 사람마냥 빨갛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사람들이 입을 삐죽였다.
-새엄마! 새엄마인가 봐!
우람이는 불고기피자 한 판을 큰 걸로 시켜놓고 혼자 다 먹고 한 조각을 남기고 있었다. 콜라도 없이 먹는 우람이가 안쓰러워 콜라 두 잔을 주문했다. 경란도 배가 고파 피자를 집으려고 손을 뻗는데 우람이가 마지막 남은 피자 한 조각도 먹겠다고 눈치를 봤다.
-그래, 엄마는 피자를 안 좋아한다. 우람이가 먹어라!
경란의 입이 다 다물어지기도 전에 피자 조각을 잡아채 갔다. 다시 구경에 나섰지만 롯데월드는 사람들이 양떼처럼 몰려다녀 놀이기구나 퍼레이드를 보러온 것이 아니라 사람을 구경하러 왔다는 말이 딱 맞았다.
놀이기구마다 줄이 빙빙 구렁이처럼 똬리를 틀고 늘어서 있어 하나 타면 하루가 끝날 거 같았다. 그나마 바이킹은 타고 내리는 속도가 빨라 다른 곳에 비해 줄이 길지 않았다.
우람이가 줄서 있는 동안 물었다.
-새엄마도 같이 탈거지?
-아니, 엄마는 무서워 우람이만 타라.
-안 돼! 나 혼자는 무서워, 새엄마도 같이 타.
경란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 혼자만 태울 생각이었으나 사람들이 내리고 탈 차례가 되자 우람이가 경란을 끌고 제일 뒷자리로 올라탔다. 자리를 잡고 탄 사람들은 어린이나 청소년이고 군데군데 아이들 손을 잡고 탄 젊은 아빠가 한둘 보였다.
바이킹 가득 사람들이 타고 마지막으로 안전요원이 다가와 안전벨트를 점검하며 물었다.
-어머님은 타실 수 있겠습니까?
경란은 고개를 저었지만 우람이가 손으로 잡는 바람에 내리지 못하고 실랑이했다. 안전요원이 안전벨트를 채우고 문을 닫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눈을 감으면 덜 무서울 겁니다.
바이킹이 커다란 풍랑을 만난 듯 요동치다 절정의 순간에는 태풍을 만난 배처럼 하늘 높이 올랐다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리 꽂혔다. 우람이는 계속 소리를 지르고 경란은 눈을 감고 얼마나 팔에 힘을 주었는지 로봇팔처럼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함성이 잦아지면서 바이킹이 멈추고 안전요원의 부축을 받아 내린 경란은 어지럽고 빙빙 돌아 화장실 앞 벤치에 급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배가 고파 더 어지러운 것 같아 도시락 뚜껑을 열기 무섭게 우람이는 양손으로 토스트를 잡고 정신없이 먹었다. 경란이 하나 먹어볼 생각을 하기도 전에 우람이가 꼬마김밥을 입으로 구겨넣어 다람쥐가 도토리를 입에 저장하듯 양볼이 풍선처럼 부풀어올랐다. 그래도 떼 안 쓰고 맛있게 먹어주는 모습이 귀여워 보온병의 물을 따라주면서 계속 얘기했다.
-우람아, 천천히 먹어. 그렇게 먹으면 체해!
얼마나 급하게 먹는지 토스트 다섯 개, 꼬마김밥 서른 개를 단 십분 만에 해치웠다. 경란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우람아빠를 찾았지만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도 없었다. 먹을 것이 떨어지자 우람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성이며 이리저리 왔다갔다 정신이 없었다. 경란은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 우람이 손에 잡혀 이리저리 끌려다니는데 솜사탕장사가 나타났다. 왕솜사탕을 나무젓가락 두 개를 테이프로 연결해 구름처럼 만들어 삼천 원에 팔았다.
우람이가 소리 질렀다.
-와! 왕솜사탕이다. 새엄마! 나도 왕솜사탕 사줘!
왕솜사탕을 들고 행복하게 웃는 얼굴이 예뻐 경란은 핸드폰을 꺼내 즐거워하는 우람이 사진을 여러 장 찍어 우람아빠에게 보냈다, 곧 도착할 것이란 카톡이 곧바로 왔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찌그려졌던 경란의 얼굴이 피어나며 미소를 짓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람이가 말했다.
-새엄마, 햄버거도 사줘!
경란은 기가 막혔지만 다시 긴 줄을 서 햄버거를 사다주자 우람이가 왕솜사탕막대를 경란에게 주며 말했다.
-새엄마, 왕솜사탕막대 몽둥이 엄청 크지?
-그래 어마어마하게 크다.
햄버거를 입에 물고 우람이가 계속 떼를 쓰며 왕솜사탕 하나 더 사달라고 경란을 졸랐다. 경란은 화도 나고 어이가 없어 왕솜사탕막대로 우람이 머리를 툭 치자 나무젓가락 두 개를 붙여놓은 테이프가 떨어지며 두 동강이 났다. 우람이가 머리를 문지르고 씩씩거리며 경란을 쳐다봤다.
경란은 우람이에게 꼼짝 말고 그 자리에 있으라고 타이르고 다시 긴 줄을 서서 기다려 왕솜사탕을 사왔다. 하지만 끈을 놓친 풍선처럼 우람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핸드폰으로 전화해도 분명 신호는 가는데 받지를 않았다. 경란은 마음이 초조해지면서 불량청소년들이 핸드폰을 빼앗아 달아났거나, 아니면 몰매를 맞고 한적한 곳에 버려지지나 않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급한 마음에 남자화장실 안에 대고 소리쳤다.
-우람아! 우람아! 우람아...
그러나 대답은 없고 남자들이 시끄럽다고 소리를 질러, 사방을 뛰어다녀도 우람이를 찾지 못했다. 멀리 있어도 금방 눈에 띄는 아이가 그 어디에서도 안 보여 경란은 방송실로 달려갔다.
어린이를 찾습니다. 암사동에서 온 강우람 어린이는 정문에서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방송을 듣는 즉시 정문으로 나와주세요!
방송은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러나 우람이가 나타나지 않아 경란은 다시 한 번 방송을 부탁했다.
어린이를 찾습니다. 10살 된 몸무게가 90킬로그램이 넘는, 노란 옷을 입은 강우람 어린이를 보호하고 계시거나 보신 분은 방송실로 연락바랍니다.
방송 중에도 경란은 우람이에게 계속 전화를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아예 전화기가 꺼져 있어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쳤다. 꼭 무슨 일을 당한 것만 같아, 우람아빠에게 전화해도 안 받고, 어디쯤 왔냐고, 카톡을 남겨도 답이 없었다.
경란은 우람이 아빠에게 문자를 남겼다.
<롯데월드에서 우람이를 잃어버렸어요. 어떡하면 좋아요? 우람아빠 빨리 연락주세요.>
경란은 송파경찰서를 찾아가 미아신고를 하고, 우람이 인적사항과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을 경찰에게 주고, 연락처를 남기고 나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석촌호수를 한 바퀴 돌며 찾았으나 우람이는 실종 다섯 시간째 행방불명이었다.
경란은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우람아빠의 답장은 없었지만 카톡을 본 것은 확실했다. 그런데 왜 연락이 없을까? 경란은 화가 났다. 아이가 없어졌는데 전화도 없고, 문자를 보았다면 어떤 상황인지 알건데 감감무소식이었다.
롯데월드가 폐장할 때까지 출구 쪽만 바라보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전혀 우람아빠는 연락이 없고 수십 번 전화해도 받지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전화를 하고 카톡을 하던 우람아빠가 연락이 없을 리가 없었다.
세 살 연하인 우람아빠는 경란이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을 때 근무하던 대형마트의 단골손님이었다. 선물할 곳이 많다고 어떤 날은 하루에도 두 번씩 홍삼을 사러왔다. 경란이 혼자 산다는 것을 알고부터는 적극적으로 데이트 신청을 하고 일 년 이상 쫓아다니는 우람아빠와 만나면서 마음이 편해지자 경란은 결혼을 허락했다.
경란은 다시 한 번 송파경찰서에 들려 우람이 소식을 묻고 24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왔다. 혹시 몰라 거실 불을 환하게 켜고 밖을 바라보았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예측조차 할 수 없었지만 혹시나 우람이가 집을 찾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커피포드에 물을 붓고 전기코드를 꼽았다. 커피가 한 방울 한 방울 까만 눈물처럼 떨어졌다.
우람아빠에게 무슨 사고가 났다면 분명 병원이나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을 것인데, 우람이도 마찬가지고 두 사람 모두 어디서도 연락이 없어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경란은 커피를 마시면서도 우람이가 문을 두드릴 것만 같아 어두운 창밖을 멍하니 지켜보는데 또 다시 눈물이 커피 내리듯 쏟아졌다.
우람이 할아버지, 할머니는 볼 면목이 없어 한밤중에 연락을 할 수도 없고, 내일 아침까지 못 찾으면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계모는 분명 처지가 달랐다. 창밖의 어둠이 걷히며 날이 밝아왔다. 뜬눈으로 기다렸지만 아침 일곱시가 되어도 우람이는 돌아오지 않고, 우람아빠도 밤새 죽은 사람처럼 연락이 없었다.
아침 여덟시 조금 넘어 핸드폰이 울렸다.
-여보세요!
-여기는 송파경찰서입니다. 이경란 씨 맞지요?
-예, 제가 이경란입니다. 우리 우람이 찾았습니까?
-네, 찾기는 찾았습니다. 노원경찰서에서 보호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노원경찰서로 출두하시기 바랍니다.
경란은 택시를 타고 노원경찰서로 달렸다. 경찰아저씨가 노원경찰서로 가라는 소리를 노원경찰서로 출두하라고 말했나 싶어 직업병은 누구나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왜 우람이가 노원경찰서까지 갔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노원경찰서에 도착하자 바로 경찰관 두 명이 경란의 앞을 막아섰다.
-이경란 씨 맞습니까?
-예, 제가 강우람이 엄마입니다. 우리 우람이는 어디 있나요?
경찰관은 재차 물었다.
-이경란 씨가 확실하지요?
-예, 맞다고요.
경찰관이 수갑을 꺼내 경란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이경란 씨를 아동폭행혐의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순식간에 버려진 일이라 경란은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잃어버린 아들 찾으러 왔다가 아동폭행혐의로 체포될 줄은 상상 못할 일이었다.
-강우람이 할머니가 이경란 씨를 강우람이 폭행혐의로 고소했습니다.
경란은 어이가 없고 말문이 막혀 입이 열리지 않았다. 경찰서 안으로 들어가자 우람이, 우람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줄줄이 앉아서 경란을 쳐다봤다.
우람이 할머니가 소리를 질렀다.
-야, 이년아! 얘가 뭘 잘못했다고 애를 몽둥이로 두들겨 패!
-저 계모년이 남의 집 귀한 손자를 몽둥이로 때린 년이요.
경란은 계모라고 탓할까 무서워 우람이에게 꾸지람도 안 하고 살았는데, 무슨 영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람아빠는 아무런 말없이 경멸의 눈빛으로 경란을 바라만보고 있었다.
우람이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저년을 평생 감옥에서 썩게 해주세요.
경란은 왜 고소를 당했는지부터 알고 싶었지만 경찰관의 조사가 끝나야만 자초지정을 알 것 같아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경찰관의 조서 작성이 시작되었다.
-이름, 주민번호, 주소 맞지요.
-예!
-어제 어린이날 강우람이 데리고 롯데월드 가셨지요?
-예!
-거기서 각목으로 강우람 어린이 머리를 때린 사실 있지요?
-아니!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바른대로 말하세요!
-우람이 때린 일 없다고요. 없어! 내가 왜 내 아들을 때립니까?
경란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커다란 몽둥이로 머리를 때려서 각목이 두 동강이 났다고 강우람 학생이 진술했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요.
경란이 강하게 부인하자 경찰관은 대질심문을 위해 우람이를 부르고 우람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모두 따라왔다.
경찰관이 우람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우람이 학생, 어제 새엄마한테 몽둥이로 머리를 맞았지요? 그리고 몽둥이가 두 동강이로 부러졌지요?
-네! 어제 새엄마가 왕솜사탕나무몽둥이로 내 머리를 내려쳤어요. 그래서 나무젓가락이 두 개로 부러졌어요.
경란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예, 내가 어제 우람이를 때린 거 맞네요.
경란은 핸드폰을 꺼내 갤러리에서 왕솜사탕사진을 찾아 경찰관에게 보여줬다.
-하도 먹을 거를 사달라고 떼를 써서 여기 왕솜사탕 먹고 남은 나무젓가락으로 살짝 때렸어요. 그런데 테이프로 붙여놓은 나무젓가락 두 개가 두 동강이 났네요.
경찰관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우람이에게 다시 물었다.
-이 솜사탕막대기로 맞은 거 맞아?
-네...
우람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람이는 경란이 솜사탕을 사러간 사이 밖으로 나와 무조건 택시를 타고 할머니에게 전화했다. 할머니는 택시기사에게 상계동 주소를 알려주고 도착하면 택시비를 주겠다며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한 우람이는 울면서 몽둥이로 새엄마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말하고, 할머니는 우람아빠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계모에게 몽둥이가 두 동강이 나도록 맞았다는 소리에 우람아빠는 이성을 잃었고 분노하며, 할머니 집으로 도망오지 않았으면, 계모가 우람이를 집으로 데려가 몽둥이로 패 죽였을 것이라며 목에 핏대가 터지도록 떠들었다. 날이 새도록 삼대가 모여앉아 경란을 수백 번 입으로 갈기갈기 찢어죽이다 날이 밝자 바로 경찰서로 달려온 것이다.
경찰서 앞마당에 팬지가 화사하게, 아니 새엄마꽃이 서럽게, 아니 계모꽃이 세상모르고 아름답게도 피어있었다.
【약력】
□ 2014년 제1회 금샘문학상 단편 <금샘>대상 수상 작품활동 시작
□ 2018년 제6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 2019년 제1회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 저서 :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 저서 : 2021 장편소설 <국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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