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포 몽돌해변 그리고 슈팅스타
우리 가족은 유월 이십팔일 폭파된 한강 다리를 겨우 건너 수원역까지 걸어가서 피난 기차를 탔다. 열차 화물칸에 기대앉아 숨을 돌리며 대전을 벗어나는 터널을 통과하자 한여름의 뜨거운 햇빛이 환하게 쏟아지는 순간 요란하게 총소리가 들렸다. 매복 중이던 인민군에게 집중사격을 당한 기차는 얼마 달리지 못하고 멈춰 섰다. 국군과 피난민들이 기차에서 뛰어내려 내달리자 하늘에서 인민군 야크기 넉 대가 나타나 피난민을 향해 기관총사격을 퍼부었다. 곧이어 남쪽에서 미군 무스탕기 넉 대가 나타나 야크기를 공격하며 공중전이 벌어졌다. 무스탕 편대가 급선회해 야크기 꽁무니를 따라붙더니 기관총 사격으로 야크기를 명중시켰다. 야크기 한 대가 추락해 굉음을 내며 폭발하고, 한 대는 꼬리에서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다른 야크기 호위를 받아 북쪽으로 도망쳤다. 미군의 무스탕기 편대도 남쪽으로 기수를 돌려 사라졌다.
기차는 완전히 폭파돼 철로에 어지럽게 잔해가 널려 있고 사방은 국군과 피난민 시체가 즐비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가족을 찾았지만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미친 듯이 뛰어다니며 가족을 찾아 헤매다 철도변 고랑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총을 맞아 깨진 수박처럼 머리가 날아가고 없었다. 어머니는 동생들을 껴안은 채 등에 여러 발의 총알을 맞아 사망하고 동생들도 총알이 관통해 죽어있었다.
눈물을 흘릴 시간도 없이 인민군 탱크 소리가 들리고 총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동생들 시신도 땅에 묻지 못하고 철길을 따라 남쪽으로 달렸다. 철로만 따라가면 남쪽이라는 생각밖에 없었다. 수백 번 뒤를 돌아보며 숨이 턱까지 차오르도록 정신없이 뛰었다.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순간, 허리를 숙인 채 숨을 헐떡이며 뒤돌아봤다. 불덩이를 삼킨 것처럼 목이 타들어갔다. 나는 철로를 벗어나 물을 찾아 헤맸다. 논바닥에 물이 고여 있고 총에 맞은 국군의 시체가 논물에 머리를 처박고 엎어져 있었다. 시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무릎 꿇고 앉아 손바가지로 물을 떠 마셨다. 타들어가던 목구멍이 뚫리며 긴 숨이 터져 나왔다.
철로를 따라 걸으며 기총사격에 죽은 피난민들 짐을 뒤지며 남쪽으로 향했다. 하늘에서는 인민군 야크기가 쌕쌕거리며 철도 위를 날며 피난민이 보이면 무차별 기관총사격을 퍼부었다. 철로를 따라 이틀을 더 걸어 대구에서 부산행 기차를 탔다. 열차는 발 디딜 틈도 없이 피난민들로 꽉 차 지붕까지 사람들이 올라가 앉았다. 나는 몹시 배가 고파 비좁은 객실을 돌아다니며 기웃거리다가 스무 량짜리 열차의 마지막 칸에서 우연히 자리에 앉아있는 친구를 만났다.
-이영숙!
그녀가 놀라 바라보며 소리쳤다.
-안강철!
그녀는 여섯 명이 마주 보고 앉는 자석의 통로 쪽에 앉아있었다.
-혼자 피난 가는 거야?
그녀는 턱을 들어 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은?
-한강 다리가 폭파되면서 뿔뿔이 헤어졌어...
그때 내 뱃속에서 창자가 꼬르륵거렸다. 바로 귀 옆에서 들리는 소리에 그녀가 고개를 옆으로 꺾고 내 얼굴을 쳐다봤다.
-강철아, 배고프니?
-응, 이틀을 굶었거든.
영숙이는 작은 보따리 속에서 삶은 계란 하나를 꺼내 껍질을 벗겨주었다. 나는 한입에 먹으려고 입을 벌리고 달걀을 집어넣으려다 손을 내려 계란을 반으로 쪼갰다. 그녀가 부끄러워하며 반쪽을 받아들자 자석의 다섯 명과 통로의 피난민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못 본 척 계란 반쪽을 입안으로 쏙 밀어넣었다. 그녀는 앞에 앉은 서너 살짜리 눈이 큰 아이에게 반쪽짜리 계란의 반을 다시 잘라주었다. 영숙이는 계란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고 나는 목이 메 켁켁거렸다. 아이 엄마가 물병을 열어 물 한 모금을 나에게 주었다.
영숙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강철아, 자리 좀 지키고 있어. 화장실 다녀올게.
통로를 걸어가는 그녀의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였다. 영숙이와 나는 대학 동기로 문학동아리 글벗이었다. 그녀가 통로의 사람들을 비집고 돌아와 자리에 앉으며 눈이 마주쳤다.
-영숙아, 다리는 왜 그래?
-응, 영등포역에서 피난 열차에 오르다 사람들에 밀려 떨어졌어, 어딘가 부러졌나봐... 병원에 갈 수도 없고...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강철아, 너희 가족은 어디 가고 혼자 피난 가는 거니?
-모두 죽었어. 피난길에 인민군 공격받아서...
그녀가 눈물을 글썽였다.
-부산에 도착하면 어떻게 하려고?
-응, 국군에 자원해야지.
-그래, 나도 국군간호원 지원하려고 했는데, 다리를 다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부산역에 도착하면 무슨 방법이 있겠지...
우리는 부산역에 칠월 삼십일일 오후에 도착했다. 부산역 광장은 헤어진 가족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우글우글해 영숙이와 함께 그녀의 가족을 찾았지만 만나지 못했다. 부산시 공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피난민들을 향해 외쳤다.
-부산항으로 가면 제주도 가는 배를 탈 수 있습니다. 제주도는 완전합니다. 제주도로 피난가실 분들은 부산항으로 가세요.
영숙이를 보며 말했다.
-나는 여기 부산에서 국군에 자원입대할게. 너는 어떻게 할래?
-강철아, 나는 제주도 가는 배를 타야 할 것 같아, 제주는 안전하다고 하니까...
-그럼 영숙아, 내가 부산항까지 바래다줄게.
영숙이를 부축하고 부산항까지 걸어갔다. 피난민들이 여객선에 오르자 제주도 가는 배는 욕지도에서 대기 중이며 여객선은 그곳까지만 운항한다고 했다. 영숙이를 여객선에 태워주고 나는 배에서 내렸다. 영숙이가 갑판에서 손을 흔들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여객선이 출발하려고 밧줄을 풀고 부두에서 배가 점점 멀어졌다. 나는 부두에서 두어 발짝 벌어진 여객선을 향해 노루처럼 폴짝 뛰어올랐다. 하마터면 바다에 빠질 뻔했다.
영숙이가 놀라 갑판에서 소리쳤다.
-어머머머머...
그녀가 뛰어와 내 손을 꼭 잡았다.
-왜, 배에 탔어?
-욕지도까지만 바래다줄게...
여객선은 열 시간을 항해해 팔월 일일 오전 욕지도에 도착했다. 그곳 원량국민학교에는 제주도로 가려는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그녀에게 욕지도 생나무를 잘라 목발을 만들어주고 나는 욕지도 바닷가에 나가 어부들의 일손을 돕고 고등어와 쌀 한 되를 받아왔다.
영숙이를 데리고 사람들 눈을 피해 뒷산으로 올라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냄비에 쌀밥을 하고, 모닥불에 고등어를 구웠다. 영숙이가 고등어 살을 발라 내 수저에 올려주었다. 그녀는 손가락을 입으로 빨아가며 밥을 먹으면서 나를 바라보고 행복하게 웃었다. 전쟁 터지고 밥 다운 밥은 처음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제주행 배가 떠난다고 사람들은 짐을 싸서 들고 바쁘게 욕지도항으로 몰려 내려갔다. 영숙이는 좀처럼 움직이지 않다가 마지막에 작은 보따리를 들고 선창으로 갔다. 부두에는 커다란 난민수송 목선이 정박해 있고 사람들은 배에 올라 자리를 잡았다. 수많은 파난민이 배에 올라 선실과 갑판을 가득 채우고 선장실 지붕까지 올라앉았다. 피난민들은 제주행 배를 타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눈치였다. 빨간 모자를 쓴 우락부락한 젊음 선원이 선창에 우두커니 서있는 우리를 보고 외쳤다.
-탈 거요, 안 탈 거요?
그녀가 겁에 질린 듯 얼떨결에 물었다.
-제주도 가는 배 맞지요?
-제주 갈 거면 타고, 제주도 가기 싫으면 타지 마쇼.
영숙이는 보따리를 가슴에 두 손으로 껴안고, 배에 올라 갑판에 서서 멍하니 나만 바라보다 큰소리로 물었다.
-강철아, 너는 부산으로 돌아가 국군에 입대할 거지?
-응, 그래야지. 영숙아, 제주도 도착하면 편지해!
-어디로?
-...
나는 말없이 영숙이를 보며 조용히 양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힘없이 한 손을 흔들며 눈물을 글썽였다. 선원이 부두의 말뚝에 묶인 배의 밧줄을 풀며 투덜거렸다.
-안 탈 거면 좀 비켜주시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고 선원이 발로 배를 밀며 올라탔다. 영숙이가 소리 내 엉엉 울기 시작했다. 배는 부두에서 이 미터 이상 벌어져 바다 쪽으로 밀려나가고 있었다. 나는 뒤로 열 걸음 정도 빠르게 물러나 발을 구르며 달려나가 부두의 땅끝을 차고 멀리뛰기 선수처럼 배로 뛰어올랐다. 영숙이가 짐을 던지고 내 손을 잡아 끌어안았다.
빨간모자 선원이 다가와 꾸짖었다.
-그러다 바다에 빠지면 죽어!
영숙이가 급하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빨리들 앉아요. 바다에 빠지면 물귀신 돼.
내 손을 꼭 잡고 앉으며 얼굴이 붉어진 영숙이가 물었다.
-강철아, 왜 또 배에 탔어?
-제주도까지 너를 바래다주고 국군에 입대하려고...
-국군이 되려면 부산으로 가야 한다면서...
-제주도에도 국군훈련소가 생겼대.
그녀는 나의 목덜미를 껴안고 숨이 막히도록 끌어안았다. 영숙이 얼굴에 다시 환한 웃음이 돌고 제주행 배는 천천히 남서진하며 남해의 푸른 바다가 넓게 펼쳐졌다. 배가 조금씩 흔들리기는 해도 바다는 실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밭처럼 잔잔했다. 빨간모자가 지나가며 영숙이를 자꾸 쳐다봤다.
그녀는 눈이 마주치자 무안한 듯 그에게 물었다.
-제주도까지는 얼마나 걸립니까?
-바다 날씨에 따라 이삼일은 가야 할 겁니다.
-곧장 제주도로 가는 겁니까?
-아니요. 이 많은 사람이 밥도 먹고 물도 마시고 하려면 섬에 내려 두어 번은 쉬었다가 가야지요.
-어떤 섬들이 기다리는지 궁금하네요?
전쟁 통에도 영숙이는 문학도다운 상상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따리에서 주먹밥을 꺼내 조금씩 뜯어 손바닥에 올리고 있으면 갈매기들이 날아와 밥을 먹고 갔다. 나는 끔찍한 상상을 했다. 식량이 떨어지면 손바닥으로 날아오는 갈매기를 잡아먹으면 굶어 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영숙이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남해의 윤슬이 반짝반짝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대는 듯하고 배 이름도 아름다운 ‘남해호’였다. 하지만 피난민선은 낭만적이지 않았다. 배 뒤에 있는 단 하나의 변소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남자들은 그냥 서서 바다에 오줌을 쌌다. 피난민들은 육지 사람들이라 뱃멀미가 심해 배의 난간은 잡고 토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바다는 피난민들의 빈속을 뒤집어놓았다. 처음 배를 타는 영숙이와 나도 별수 없었다. 전날 먹은 고등어와 쌀밥을 모두 토해냈다.
빨간모자가 물 한 바가지를 떠 와 영숙이에게 내밀었다.
-자! 입 헹구세요.
영숙이는 물 한 모금으로 입을 헹구고 물바가지를 나에게 주었다. 입을 헹구려고 물을 머금는데 빨간모자가 물바가지를 휙 채갔다. 하지만 대단한 호의였다. 바다 한가운데 배에서는 물 한 모금은 생명과 같아 아무리 피난민들이 물을 달라고 하여도 어림없었다. 그는 피부가 검게 타 마치 돌고래를 보는 것 같았다. 반면 영숙이는 피부가 갈매기의 흰 털처럼 희었다. 피난민선은 끝없는 남해를 긴 하얀 꼬리를 만들며 항해하고 갈매기들은 얻어먹을 것 없는 피난민선을 줄기차게 따라왔다.
영숙이가 물었다.
-강철아, 왜 갈매기는 우리를 따라올까?
-피난민들에게 희망을 주려는 것 아닐까?
-제주도에 내리면 좋은 일이 생기겠지...
그때 배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아기 울음이 들렸다. 임산부가 난민수송선에서 여자아이를 출산하자 빨간모자가 양동이에 물을 떠다주며 돈을 내밀었다.
-선장님이 복덩이라고 돈을 주고 아이 이름은 ‘남해’라고 지어주셨습니다.
피난민들은 아이에게 흰 천을 걸고 돈을 달아주며 말했다. “배에서 아이가 태어나면 배에 큰 행운이 생긴다고 하였는데 이제 남해호는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또 아이 ‘남해’도 훌륭한 사람으로 자랄 겁니다.” 피난민들은 모두 남해의 출생을 기뻐했다. 영숙이와 나는 서로 껴안고 배 난간에 기대 푸른 남해와 파란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닷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오고 석양이 볼락 물고기처럼 볼락볼락 붉게 물들어갔다.
나는 조약돌 굴러다니는 파도 소리에 눈을 떴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는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잠시 착각에 빠져 유토피아에 도착한 줄 알았다. 말발굽 모양의 조약돌해변에서 밀려가고 밀려오는 파도가 바이올린을 켜듯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냈다. 영숙이를 흔들어 깨웠다. 눈을 비비며 깨어나 해변을 바라본 그녀가 나를 잡고 물었다.
-여기 어디야. 설마 우리 죽은 거야?
-아니 죽지는 않은 것 같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었어? 꼭 천국의 해변 같은데. 이 아름다운 교향곡 소리는 천사들의 연주가 아닐까?
-아니, 파도에 조약돌 구르는 소리야.
-해안선이 오메가 모양이야. 와! 신기하다.
그녀는 감탄을 멈추지 않고 눈을 살며시 감고 이야포의 파도 소리를 황홀하게 들었다. 나도 지그시 눈을 감고 이야포 파도와 조약돌이 만드는 노래를 들으며 영숙이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연가를 부르며 살게 되길 잠시 꿈꾸었다. 눈을 뜨고 하늘을 바라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남해호 꼭대기에 매달린 태극기가 바닷바람에 펄럭였다.
빨간모자가 라디오 뉴스를 전해주었다.
-오늘 아침 뉴스입니다. 전쟁 발발 사십일 차 유엔군은 마산-왜관-영덕을 연결하는 낙동강방어선을 구축하였고 인민군은 낙동강을 건너 총공격을 시작했습니다.
영숙이가 입을 열었다.
-정말로 인민군이 8월 15일 광복절까지는 부산을 점령할 생각인가 보네!
-유엔군이 속속 도착하고 미군 해병대가 부산에 상륙해 마산전선에 투입되었다는 소식도 있어. 미군은 곧 전세가 뒤집힐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으니까 좋은 소식이 있겠지...
해가 떠오르자 피난민들은 작은 배를 타고 몽돌해변으로 가 배급받은 쌀로 밥을 지어 날랐다. 나도 냄비와 쌀을 들고 해변으로 나가 밥을 하고 섬주민을 만나 어딘지 물었다. ‘안도 이야포 몽돌해변’ 이라고 했다. 김치를 조금 얻어 남해호로 돌아왔다. 배가 고픈지 영숙이가 반기며 냄비 밥에 김치를 찢어놓았다.
나는 수저로 김치와 밥을 떠먹으며 영숙이를 바라보았다.
-왜?
-너무 예뻐서. 며칠 세수도 못했는데 예쁘기는 뭐가 예쁘냐? 지저분하지 꼭 거지 같지?
그녀가 머리를 쓸어올리며 다시 물었다.
-여기가 어디래?
-안도 이야포래?
-안도가 어디에 있는데?
-여수 남쪽 끝에 있는 섬.
-정말 아름다운 섬이다. 우리 여기에서 살래?
-우리 둘이 함께?
-그래 우리 둘이. 왜 싫어? 싫으면 말고.
영숙이는 갑자기 얼굴이 솟아오르는 해처럼 붉어지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실실 웃음이 났다. 이야포에서 눈을 뜨고 조약돌 구르는 소리에 가장 먼저 그녀와 살고 싶다고 생각해 본 터라 정말로 행복한 말이었다.
이야포에는 십여 척의 작은 멸치잡이 배들이 정박해 있었다. 남해호는 배 뒤편에 닻을 내리고 뱃머리는 이야포해변에 밧줄을 묶어 해안에서 이십여 미터 떨어진 바다에 떠 있었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다. 피난민들은 밥을 먹고 안도에서 길어온 물을 바가지로 마시고 활기를 찾으며 아침 아홉시가 되자 남해호가 시끌시끌해 해졌다. 제주도로 다시 떠날 준비를 하며 빨간모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김치를 얻으러 갔던 안도항 쪽에서 비행기 넉 대가 편대를 이루어 이야포해변으로 아주 낮게 날아왔다. 피난민들은 남해호를 스치듯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고 머리 깨질까 봐 모두 뒤로 발라당 드러누웠다. 사람들은 인민군 야크기인지 미군 무스탕인지 구별하지 못했다. 다행히 비행기는 공격하지 않고 날아갔다.
피난민들은 안도하듯 말했다.
-태극기를 보고 폭격하지 않은 것을 보니 미군기인가 봐!
비행기는 두 대씩 나누어 이야포 상공을 좌우로 돌며 다시 날아갔다. 나는 회전하는 비행기를 자세히 살폈다. 머리는 두루뭉술해 돌고래의 머리처럼 생기고 파란색으로 칠해 있었다. 그리고 동체 옆에는 FT-7**, FT-5**... 식으로 고유번호가 있고 후미에는 미군기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무스탕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바로 알아차렸다.
비행기 앞머리에 빨간색으로 그린 상어 그림이 없고 프로펠러가 없었다. 그리고 날개 양끝에는 커다란 연료통이 달려있었다. 나는 미사와연료통을 단 것을 보고 일본에서 출격한 F-80슈팅스타 제트전투기라는 것을 알았다.
미군 슈팅스타 편대는 남쪽으로 날아가 연도 상공에서 선회해 두 대는 서쪽 금오도 상공으로 두 대는 기수를 돌려 안도 동쪽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오 분 후에 안도항 방면에서 다시 이야포 몽돌해변을 스치듯 슈팅스타 한 대가 날아오고 사람들은 갑판에서 일어나 양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슈팅스타는 백여 미터 높이의 저공비행으로 남해호를 정면으로 향해 날아오며 기수의 기관총에서 불을 뿜었다. 총소리에 놀란 사람들은 남해호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고개를 들 새도 없이 슈팅스타 석 대가 연달아 날아오며 남해호를 정조준하고 기관총알을 퍼부으며 날아갔다. 슈팅스타 편대 석 대가 기총소사를 난사하고 지나간 다음 갑판에 있던 피난민들이 총에 맞아 아우성치고 피투성이로 즉사한 사람들도 많았다. 사람들은 부상자를 껴안고 옷을 벗어 피를 틀어막고 서로 이름을 부르며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하느라 정신없었다.
오 분여가 지나 안도항에서부터 다시 슈팅스타들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고 비행기 후미에 빨간선 세 개가 그어진 편대장기가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남해호 정면을 향해 다시 날아오며 기수 좌우의 기관총 여섯 개 총구에서 총알이 날아왔다.
나는 영숙이를 끌어안고 최대한 엎드렸다. “다다닥 다다닥 다다닥 다다닥 다다닥 다다닥...” 기관총알이 날아와 피난민 몸에 박히며 피를 뿜어냈다. 남해호 나무에 박힌 총알은 통나무를 종잇장처럼 구멍냈다. 바다로 날아간 총알은 바닷물을 뿌렸다. 남해호는 바닷물과 피가 뒤섞여 폭포처럼 바다로 흘러내렸다.
넉 대의 슈팅스타기가 지나간 다음에 피난민들은 정신없이 다시 가족들 이름을 불렀다. 바다에는 십여 척의 멸치잡이 배들도 있었지만, 남해호 피난민에게만 기총소사를 퍼붓고 수많은 피난민 사망자들이 흘린 피로 이야포는 피바다였다.
사람들이 아우성쳐 멸치잡이 배에 구조를 요청하자 멸칫배들이 남해호로 다가와 피난민들이 멸칫배로 뛰어내리고, 나는 영숙이에게 탈출하라고 소리쳤다. 그녀는 무서워 일어서지도 못했다. 다시 오 분 만에 슈팅스타들이 줄줄이 기수의 여섯 정 기관총을 난사하며 날아왔다. 멸칫배들은 남해호에서 떨어져 몽돌해변을 향해 노를 저어 나갔다. 놀란 피난민들이 작은 배 안에서 허둥대는 바람에 멸칫배들이 전복되고 사람들은 물속에서 허우적댔다. 나는 남해호 위에는 있는 물에 뜨는 것은 모두 바다로 집어 던졌다. 하지만 사람들이 허우적거리다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곧 다시 슈팅스타들이 돌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영숙아! 여기 있으면 죽어 어서 섬으로 올라가야 해.
그녀는 벌벌 떨며 같은 소리만 했다.
-안 돼! 나는 무서워. 나는 무서워. 무서워...
다시 슈팅스타들이 나타나자 갑판 위 사람들이 무작정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영하는 사람들은 헤엄치고 허우적대는 사람들은 멸치잡이 배들이 다가가 건져 올렸다. 그러나 수영을 못하는 사람들은 일 분을 견디지 못하고 수면 아래로 가라않았다.
선실에 들어가 있던 피난민들이 온몸에 피투성이가 돼 피를 흘리며 기어나왔다. 영숙이는 정신이 나간 채 나를 껴안고 꼼짝하지 않았다. 갑판에는 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선실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하늘을 바라보며 통곡했다. 갑판은 피범벅이라 미끄러워 걸을 수도 없고 산 사람들은 엉금엉금 기어가 바다로 뛰어내렸다. 멸칫배들이 부지런히 남해호와 몽돌해변을 오가며 바다로 뛰어내린 피난민들을 구조했다.
슈팅스타 편대가 네 번째로 공격해 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영숙이를 번쩍 들고 선장실 뒤로 뛰어갔다. 남해호에서는 유일하게 몸을 숨길 수 있는 곳으로 수많은 사람이 그곳에 엎드려 있었다.
슈팅스타 편대는 남해호 뱃머리부터 기총소사를 퍼부으며 선장실과 남해호 후미를 공격하고 날아갔다. 네 번째 공격은 남해호 후미를 집중공격해 몸을 숨기고 있던 사람들이 기관총알에 맡아 사망했다. 나는 영숙이를 깔고 누워 옆의 시신들을 끌어당겨 몸을 덮어 무사했다. 빨간모자가 나타나 시신을 치우고 영숙이에게 구명동의를 입히더니 그녀를 번쩍 안아 바다로 내던졌다. 그리고 나에게 소리쳤다.
-어서, 바다로 뛰어내려!
-아저씨는 어쩌려고요?
-선원은 마지막까지 배와 함께 운명을 같이해야 진정한 뱃사람이지.
-아저씨 감사합니다. 꼭 살아야 합니다.
나는 빨간모자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남해호에서 바다로 뛰어내렸다. 영숙이는 구명동의 덕에 물 위에 둥둥 떠 있었다. 그녀의 구명동의를 잡고 몽돌해변을 향해 죽을힘을 다해 헤엄쳤다. 다시 슈팅스타가 나타나 남해호를 향해 낮게 날아왔다. 배에서 움직이는 사람은 빨간모자뿐이었다. 슈팅스타가 그를 향해 날아가며 번개 치듯 총알을 퍼부었다. 그가 쓰러지며 바다로 떨어져 붉은 피가 바다를 빨갛게 물들였다. 남해호도 물이 차올라 가라앉고 있었다. 해변에서는 어서 헤엄치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나는 짠물을 배가 터지도록 마시며 겨우 몽돌해변으로 헤엄쳐 나가 핏빛 몽돌 위에 그대로 드러누웠다.
영숙이가 일어나 흔들었다.
-강철아! 괜찮아?
-으응,
-어서 일어나 비행기 돌아오기 전에 여기서 피해야지...
영숙이가 나를 부축해 일으켜 세우려다 그대로 다시 꼬꾸라졌다. 해변의 피난민들이 산으로 도망치는 것이 보였다. 영숙이는 안간힘을 쓰다 민가로 달려가 물 한 바가지를 떠 와 내 얼굴에 부었다.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슈팅스타 편대는 부대로 복귀하였는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야포 몽돌해변에는 백여 구의 시체가 널브려져 있고 살아남은 가족들이 시신 앞에서 통곡했다. 이야포 바다에 떠다니는 시체들이 가득하고 파도에 밀린 시체들이 몽돌과 함께 해변을 구르며 죽음의 장송곡을 불렀다. 남해호 피난민수송선을 타고 욕지도를 출발했던 수많은 사람 중 오십여 명만 살아남아, 흰옷에 생피를 뒤집어쓰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며 몽돌해변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오후가 되자 안도 주민들이 한 사람씩 몽돌해변으로 몰려들더니 곧 백여 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물도 떠 오고 술병도 들고 와 피난민들에게 물과 술을 한 잔씩 따라주었다. 피난민들은 고개를 숙이며 속삭였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조금 지나자 안도 부녀자들이 밥과 김치를 가져와 피난민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밥을 배급하고 반찬으로 마른 멸치 한 주먹씩을 주었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며 밥 먹으라고 떠밀었다. 헌 옷가지를 들고나와 피 묻은 옷을 벗고 갈아입으라고 주었다. 영숙이는 나를 바다로 끌고 들어가 피투성이 옷을 벗기고 몸을 씻겼다. 머리도 감기고 얼굴을 손으로 박박 문질러 피딱지를 벗겨 냈다. 그녀도 옷을 벗고 손바닥으로 몸 구석구석 씻어냈다. 영숙이는 헌 옷을 받아 입고 물에 말은 밥을 숟가락으로 떠주었다. 밥이 들어가자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안도 촌장이 피난민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였다.
-우리 안도는 섬이라 이 많은 시신을 묻을 땅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바다에 모두 수장을 시킬 수도 없습니다. 육지에 연락해 어떤 조처를 할 것이니 죽은 사람들 시신은 몽돌해안에 그대로 두십시오. 절대로 안도에 묻어서는 안 됩니다. 육백 년을 살아온 깨끗한 우리 섬이 죽음의 섬이 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누구든 안도 땅을 파고 시신을 묻으면 즉시 안도에서 추방하겠습니다.
안도 주민은 섬을 지키기 위해 피난민에게 엄중히 경고했다. 피난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섬주민들이 돌아가자 가족끼리 이야포를 감싸고 있는 성산으로 올라갔다. 사람들은 대충 자리 잡고 나뭇가지를 꺾어 움막을 지어 잠자리를 만들었다. 다행이라면 한여름이고 기러기 형상의 안도 바닷가는 천지가 따개비와 굴 등 먹을 만한 것들이 널려 있었다.
나는 돌담을 쌓아 작은 움막을 짓고 영숙이가 누워 쉬도록 했다. 이야포해변에서는 피난민들이 작은 배 앞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나는 이야포해변으로 달려 내려갔다. 작은 배 한 척을 구한 피난민 서너 명이 남해호로 짐을 가지러 가고 나도 그들을 따라갔다. 남해호는 목선이라 물이 차올라 반은 가라앉아 있었다. 피난민들은 보따리를 챙기고 먹을 식량이 있으면 모두 작은 배에 실었다. 시체들을 뒤집어 껴안고 있는 피범벅의 보따리도 찾아 작은 배에 싣고 냄비와 칼 등 살림살이도 눈에 보이면 모두 실었다.
몽돌해변에는 산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가족들 짐을 찾아들고 통곡하며 다시 성산으로 올라갔다. 나도 영숙이 보따리와 냄비를 찾아들고 움막으로 갔다. 이야포 몽돌해변의 해가 지고 있었다. 태양은 전쟁의 아픔도 모르는 듯 노을이 아름답기만 했다. 나뭇가지를 꺾어 냄비를 걸고 바닷물로 쌀을 씻고 민물을 부어 밥을 하자 짭짤하니 간이 저절로 딱 맞았다. 영숙이가 호주머니에서 멸치 몇 마리를 꺼내놓았다.
-강철아, 우리 여기서 며칠이나 살 수 있을까?
-영숙아, 걱정하지 마. 내가 살 길을 찾아볼게.
-강철아, 미안해 나 때문에 국군도 못되고 고생만 죽도록 하네.
-아니야. 난 이제 너만 있으면 행복해.
-진짜, 거짓말 아니지?
영숙이가 멸치를 까 똥을 빼고 내 입에 넣어주었다. 우리는 그날 밤 산에서 서로 꼭 껴안고 잤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나는 이야포로 내려갔다. 몇몇 피난민은 가족들 시신 앞에 밥 한 주먹을 놓고 절을 하기도 했다. 나는 시신을 보고 기절할 뻔했다. 시신의 총알구멍마다 작은 게들이 기어들어가 살점을 뜯어먹고 살이 들어난 얼굴에는 갯강구들이 새까맣게 기어 다니며 시신의 피를 빨았다.
오후에는 어디에서 왔는지 사람들이 나타나 몽돌해변에 널브러진 시체들을 작은 배에 실어 남해호로 옮기고 기름을 뿌려 불을 질렀다. 새까만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 살 타는 냄새가 안도 하늘을 덮었다. 남해호는 다음 날 오전까지 불탔다. 영숙이가 밤새 다리가 아파 끙끙 앓아 나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피난민들은 남해호가 불타는 것을 보고 경찰과 함께 배를 타고 안도를 떠났다. 나는 일자리를 구하려고 안도의 선주들을 찾아다녔다. 처음 찾아간 곳은 멸치잡이하는 선주였다.
그는 한마디로 말했다.
-이제 이야포의 멸치 황금어장은 끝났어. 사람이 수백 명이 죽어 수장되었는데 거기서 멸치를 잡아 어떻게 먹것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선주를 찾아갔다. 그는 조기잡이 배의 선주로 위아래로 훑어보며 물었다.
-총 맞은 데는 없지라우?
-예. 다친 데는 없습니다.
마흔이 조금 넘은 선주는 젊은 사람이라며 선원으로 고용해주었다. 나는 선주에게 다시 한번 부탁했다.
-선주님, 죄송합니다만 빈방 하나만 구해주십시오.
-방은 뭔 방이 필요하당가? 배에서 묵고자문 된디!
나는 망설이다가 말했다.
-아내가 성산 움막에 있습니다.
-젊디 젊은디 벌써 결혼했어라우? 애도 있소?
-아닙니다. 애는 없습니다.
-그람 우리 집에 빈방 하나 있응께 거기서 살라우?
-네 감사합니다. 선주님!
나는 허리를 깊이 숙여 절하고 성산으로 달려가 영숙이를 업고 안도포구의 앞산 언덕에 자리한 선주 집으로 달려왔다. 선주의 아내가 영숙이를 보고 호들갑을 떨었다.
-워매! 워매! 각시가 참말로 미인이오잉?
당황하는 영숙이 옆구리를 찌르자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우리는 안도에서 집도 구하고 일자리도 구했다. 하지만 영숙이 다리는 좀처럼 낫지 않았다. 부러진 빼가 그대로 굳어 그녀는 영원히 다리를 절뚝거리며 살 것 같았다.
나는 바로 다음 날 새벽부터 배를 타고 나가 조기잡이를 시작해 팔월 육일은 돌산도와 금오도 사이 횡간도 앞바다에서 조기를 낚았다. 조기 떼가 나타나 조기잡이배가 백여 척도 넘었다. 나는 조기잡이낚시가 너무 신났다. 파란 바다 깊은 곳에서 황금 조기들이 올라오면 황금덩어리를 낚는 것 같았다. 조기잡이 배들은 갑판이 황금색으로 반짝이도록 조기를 낚아 올렸다. 그날 어장을 마친 선주는 우리에게 수십 마리의 조기를 반찬으로 주고 품삯도 넉넉하게 주었다. 영숙이는 조기를 석쇠에 굽고 매운탕을 끓여 쌀밥에 김치까지 풍성한 밥상을 차렸다.
누릇누릇한 조기 살을 발라주며 영숙이가 말했다.
-우리 진짜 부부로 여기서 살자.
-조기잡이만 잘되면 금방 집도 짓고, 배도 사고, 우리도 선주가 될 수 있지...
-강철아, 나는 진심으로 너하고 여기 안도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
그날 밤은 안도 하늘의 별들도, 안도 바다의 물고기들도, 우리의 사랑을 축복하고 이야포의 몽돌도 파도에 구르며 사랑의 연가를 불렀다. 다음 날 새벽에 선주와 함께 조기잡이 배를 몰고 가 횡간도와 금오도 사이의 두룩여에 다른 배들보다 먼저 좋은 어장 자리를 차지했다. 조기 떼 소문이 퍼져 황간도 바다는 조기잡이 배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조기 떼가 사라진 듯 조기는 물지 않았다. 정오가 돼 어선들이 철수 준비했다.
그때 돌산도에서 미군 슈팅스타 편대가 나타나 조기잡이 어선들 바로 머리 위로 날아오며 무작정 기총소사를 가하고 돌산도와 금오도 하늘을 선회했다. 황간도를 돌아와 두륙여의 조기잡이 어선들에게 두 번의 기총소사를 하고 날아갔던 슈팅스타 편대가 다시 기수를 돌려 우리 배 정면으로 낮게 날아왔다.
나는 소리쳤다.
-선주님! 바다로 뛰어들어요.
-워메! 내 머리 박아버릴 것 같당께.
우리는 바다로 뛰어들어 배의 난간을 잡고 바닷물 속에 몸을 숨겼다. 넉 대의 슈팅스타가 기총소사를 난사하며 바다를 스치듯 날아갔다. 허벅지가 따끔하며 핏물이 바닷물과 함께 솟구쳐 나는 온 힘을 다해 배로 올라왔다. 선주는 총알에 맞아 왼손이 잘려나간 채 한 손으로 배를 잡고 있었다. 급히 선주를 끌어올리고 옷을 벗어 손목을 꽁꽁 감쌌다.
정신을 잃기 직전의 선주가 내 허벅지를 손가락질했다. 기관총알이 관통해 구멍이 뚫리고 살점이 너덜너덜해져 피가 흘러내렸다. 선주가 기절하는 바람에 나는 서툰 솜씨로 어선을 몰고 겨우 안도포구로 돌아왔다. 비행기 소리에 놀란 선주 부인과 영숙이가 포구에 내려와 있었다. 안도 사람들이 선주를 업고 집으로 달려가 지혈했다. 병원이 있는 여수는 인민군이 점령한 지 십여 일이나 돼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다. 미군 제트전투기 슈팅스타의 두륙여 기총소사 공격으로 십여 명의 어부가 죽었다. 영숙이는 치료 시기를 놓쳐 평생 다리를 절뚝이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아 살점이 움푹 파인 채로 허벅지의 상처가 아물었다. 선주가 왼손을 잃은 탓에 내가 선장 노릇을 하며 안도 바다로 고기를 잡으러 나가고 영숙이는 배가 바다의 섬만큼 불러 절뚝이며 매일 선창에 나와 배를 기다렸다.
<이야포 몽돌해변 미군폭격사건을 바탕으로 쓴 팩션(faction)소설이다.>
송주성 소설가
2014년 금샘문학상 대상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
2023 장편소설 <후쿠시마 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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