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릉의 여인
세종이 보낸 감찰상궁이 군시기판관 윤번의 집으로 궁녀들과 함께 은밀히 찾아왔다. 부인이 대문 밖까지 달려나와 머리를 조아리고 대궐에서 나온 상궁을 안채의 정실로 맞이했다. 상궁은 왕자의 비를 선보러 온 자리로 윤번은 아들 여덟에 딸 둘이 있었다. 안주인이 별당으로 하녀를 보내 큰아씨를 불러오도록 하였다. 열두어 살의 큰딸이 부인 옆에 앉으며 큰절을 올렸다. 상궁은 눈여겨보고 몇 가지 질문을 하며 자세히 얼굴의 생김새를 작은 점 하나까지 살폈다. 성격은 온순하고 착해 보이나 부끄럼이 많고 말수가 적었다. 그때 방문이 바람에 열리듯 슬슬 열리며 어린 딸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와 어머니 옆에 앉으며 상궁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안주인이 어서 나가라고 호통을 쳐도 나가지 않고 꿋꿋하게 무릎 위에 두 손을 다소곳이 얹고 앉아 꼼짝하지 않았다. 세종과 왕비는 둘째아들 수양대군의 비가 될 며느릿감으로 온순하고 미모가 출중하다는 윤번의 딸을 생각하고 상궁을 보내 혼사를 의론토록 하였다. 세종은 조용하고 학문을 좋아하는 맏아들 세자보다 강직한 성격에 무예를 좋아하고 활달한 수양대군의 거친 성격을 누그러트릴 신붓감을 원했다.
상궁이 미소 지으며 안주인에게 물었다.
-이 아이는 누구입니까?
-우리 집 막내딸입니다. 아직 철이 없어 어떤 자리인지도 모르고 들어와 송구합니다.
어머니가 어서 가라고 막내딸 치마를 잡아당겨도 모른 척하였다.
-부인 아닙니다. 그냥 앉아있도록 하세요.
상궁이 막내딸에게 물었다.
-올해 몇 살인고?
-상궁마마, 소녀 올해 열 살입니다.
-그래,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는 알고 들어왔느냐?
-네, 언니의 혼사를 논하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어이해 들어왔는고?
-상궁마마, 저도 궁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어째서 궁으로 가려고 하느냐?
-우리 집에는 이제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습니다. 궁에는 좋은 책이 많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독서를 하고 싶어 궁으로 들어가길 원한단 말이냐?
-예, 독서로 몸과 마음을 갈고닦아 여인의 교양을 쌓고자 합니다.
-그래, 어떤 책을 읽었는고?
-천자문을 공부하고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사서를 읽고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 오경을 보았습니다.
-궁으로 들어가면 무슨 공부를 하고 싶은가?
-주자대전, 성리대전 등 주자학 책을 읽고 보고 싶습니다.
상궁이 놀라는 표정으로 큰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너도 독서를 좋아하느냐?
막내딸이 언니가 대답하기 전에 대답했다.
-언니는 자수 놓는 것은 좋아하나 책 읽은 것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안주인 얼굴이 불꽃처럼 타오르며 막내딸을 나무랐다. 언니는 고개를 숙인 채 말없이 조용히 앉아있었다. 상궁은 막내딸을 다시 한번 요리조리 유심히 살피고 일어나며 안주인에게 말했다.
-궁에 들어갔다 다시 오겠습니다.
상궁은 조용히 앉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는 언니를 뒤돌아보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안주인은 막내딸의 등짝을 후려치고 종종걸음으로 상궁을 따라가며 어쩔 줄 모르고 몸을 조아렸다. 막내딸은 어느새 방에서 나와 어머니 옆에서 상궁과 궁녀들이 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상궁 뒤를 따르는 궁녀들이 여러 번 뒤돌아보며 막내딸을 살폈다. 대궐로 돌아온 상궁이 주저 없이 세종과 왕비에게 아뢰었다.
-윤번의 딸은 조용하고 온순해 수양대군에게 순종할 여인입니다.
-그럼 수양대군에게 어울리는 신붓감이 아닌가?
-전하, 윤번에게는 막내딸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나이가 몇이나 된 아이인가?
-열 살이므로 수양대군보다는 한 살이 어린 아이입니다.
-그래, 상궁은 어느 처녀가 더 참해 보이고 수양대군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가?
-전하, 언니는 참하고 순진해 수양대군의 마음을 잡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막내딸은 활달하고 당돌한 성격이라 수양대군의 뜻을 거스를지라도 휘어잡을 것입니다.
왕비가 세종의 얼굴을 살피며 입을 열었다.
-전하, 수양대군도 사냥보다는 독서를 하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세자를 잘 보필하지 않겠습니까?
상궁은 윤번의 집으로 다시 찾아가 막내딸과 어명으로 혼담을 마무리하였다. 1428년 세종의 뜻에 따라 수양대군과 혼례를 치른 윤번의 막내딸은 열 살에 낙랑대부인이 되었다. 수양대군은 사냥을 즐겼다. 낙랑대부인이 아무리 독서를 권해도 글에는 뜻이 없었다. 무예와 사냥을 즐기는 수양대군은 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왕건과 치열한 전투를 치른 포천의 운악산 일대 왕실 사냥터에서 주로 사병훈련과 사냥으로 시간을 보냈다. 세종은 성군으로 나라를 평화롭게 다스리고 세자는 세종을 보필하여 조선은 안정되고 백성들은 살기 좋은 나라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었다. 수양대군은 낙랑대부인의 호탕한 성격과 눈부신 미모에 빠져 부인을 아끼고 사랑해 둘의 사이가 연리지와 같았다. 수양대군은 부인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따르고 부인은 독서로 깨달은 학문을 수양대군에게 공부시켰다. 둘의 사랑은 수호랑이를 유혹하는 암호랑이와 같았다. 포천에서 사냥하고 독서하며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스물이 넘어 아들 둘에 딸 하나를 낳았다. 수양대군이 포천 왕실 사냥터에서 사냥하는 동안 낙랑대부인은 고려 초에 창건된 운악사에서 불공을 드리며 불심에 심취했다.
서른이 되는 해에 수양대군이 사병들과 사냥 나가는 길에 낙랑대부인도 무사복으로 차려입고 말을 타고 동행했다. 자주 함께 사냥하였으나 그날은 부인의 차림이 범상치 않았다. 수양대군은 풍채가 위협적이며 인상이 험상궂기가 산속에서 불쑥 튀어나온 호랑이 못지않았다. 낙랑대부인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수양대군의 백마를 따랐다. 포천은 한양과 가까워 조선의 태조, 태종, 세종이 사냥을 즐긴 왕실 사냥터로 태종이 들어오는 물은 없고 밖으로 흘러가는 물줄기만 있어 안을 포(抱), 내 천(川)을 써 포천이라 이름하였다. 광덕산, 백운산, 국망봉 산줄기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한탄강과 임진강을 거쳐 황해로 흘러갔다. 왕실 사냥터에 도착한 백여 명의 사병들이 말을 달려 용암산과 수리봉에 올라 산 아래 운악산 방향으로 사냥감을 몰아왔다. 수양대군과 낙랑대부인은 수십 명의 사병과 산 아래서 기다리다가 숲에서 뛰어나오는 사슴 두 마리와 반달곰 한 마리를 활로 쏘아 잡았다. 몰이꾼들의 함성이 가까워지고 말발굽 소리에 놀란 표범 한 마리가 숲에서 나와 수양대군과 마주치자 급히 방향을 틀어 운악사 방향으로 도망쳤다. 수양대군이 활시위에 화살을 걸어 바람처럼 표범을 향해 쏘았다. 사병들이 말을 달려 피를 흘리며 쓰러진 표범을 수양대군 앞으로 가져와 내려놓았다. 다 자란 표범은 호랑이만 하였다. 수양대군이 표범을 발로 밟고 백여 명의 사병들 앞에서 칼과 칼집을 두 팔을 들고 포효했다.
-내가 조선의 표범을 잡았도다!
-수양대군 만세! 수양대군 만세! 수양대군 만세!
낙랑대부인은 표범 가죽은 벗겨 말리고 고기는 사병들의 잔치에 쓰도록 하였다. 사슴과 곰을 잡아 표범고기와 함께 삶아 늦은 밤까지 잔치가 계속되고 포천현감이 포천막걸리 열 말을 수레에 싣고 와 바치고 갔다. 수양대군은 표범의 고기를 뜯으며 사병들과 막걸리잔을 나누었다. 왕자라기보다 산적 두목과 다름없었다. 수양대군이 부인에게 포천 막걸리 한 잔을 표주박에 따르며 표범고기 한 덩어리를 조선검으로 큼지막하게 싹둑 잘라주었다. 사병들이 부인을 보고 함성을 지르자 낙랑대부인이 단숨에 표주박의 막걸리를 비우고 표범고기를 양손으로 들고 한입 가득 뜯어 물고 씹었다.
사병들이 양팔을 하늘 높이 흔들며 외쳤다.
-수양대군 만세!
-낙랑대부인 만세!
사병들은 죽음으로 수양대군에 충성할 것을 수없이 맹세하고 낙랑대부인에게도 충성을 외쳤다. 수양대군이 손을 들어 충성 다짐받으며 영원히 함께할 것을 약속하였다.
수양대군이 술에 취해 물었다.
-부인, 내일은 어디로 사냥을 나가고 싶소이까?
-내일은 물 맑고 산수가 수려한 백운산으로 사냥을 가보고 싶습니다.
다음 날 새벽부터 운악사에서 말을 달려 해가 뜨기 전에 백운산에 도착해 백운계곡 물줄기가 시작되는 공덕산과 백운산 정상으로 오른 사병들이 사냥감을 몰아 내려왔다. 수양대군과 부인은 백운계곡의 아름다움에 넋을 놓고 있었다. 산이 높아 구름에 가리고 골이 깊어 물 흐르는 소리가 광덕산과 백운산에 메아리쳤다. 계곡의 소마다 투명한 물이 흘러넘쳐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하늘이 보이지 않는 울창한 숲에서 푸른 옥이 계곡으로 쏟아지는 듯했다. 계곡 물소리에 묻혀 사병들이 지르는 사냥몰이 함성이 들리지 않았다. 한여름의 백운계곡을 사병들에게 쫓기는 사슴들이 뛰어오르고 여우들이 나타났다 다시 숲으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수양대군은 사냥감에는 관심 없고 부인에게 물을 뿌리며 장난치기 바빴다. 물에 젖은 낙랑대부인은 선녀보다 아름다운 미모를 뽐냈다. 수양대군이 부인의 미모에 푹 빠져 정신을 못 차릴 때 숲에서 백호 다섯 마리가 나와 유유히 계곡을 가로질러 갔다. 백호를 발견한 부인이 소리도 못 지르고 손가락질하자 수양대군이 백호를 발견하고 물속에서 뛰어나와 잽싸게 활을 들어 시위에 화살을 매기고 백호를 노려봤다. 무리를 이룬 백호 다섯 마리는 대호 암수가 한쌍이고 중간 정도 자란 백호 두 마리와 어린 백호 한 마리였다. 대호가 수양대군과 눈이 마주치자 걸음을 멈추고 수양대군과 부인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백호 무리가 선유담계곡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양대군이 백호 무리에 화살을 겨누자 부인이 팔을 잡고 쏘지 말라고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수양대군은 만류를 뿌리치고 화살 시위에서 손을 뗐다. 화살이 날아가 중간쯤 자란 백호의 등에 명중해 숲으로 도망치지 못하고 피를 쏟으며 쓰러졌다. 네 마리는 숲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쓰러진 백호를 수양대군이 어깨에 들쳐 메고 사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봐라! 백호를 잡았다.
사병들이 달려와 수양대군과 부인을 엄호하며 백호를 보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였다. 낙랑대부인은 백호를 죽인 것이 마음에 걸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백호가 사라진 선유담계곡으로 사병들과 말을 달려갔으나 백호의 흔적은 없었다. 수양대군이 선유담계곡에서 야영을 결정해 사병들이 천막을 치고 사냥한 사슴과 여우, 백호 고기를 구웠다. 수양대군은 옷을 벗고 계곡에서 사병들과 알몸으로 기마전을 펼쳤다. 혼자 수십 명의 사병을 상대하여도 힘을 당하는 자가 없었다. 기마전에서 사병들을 무너트린 수양대군은 선유담 물속에서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나와 구수하게 익은 고기 살점을 쓱쓱 썰었다. 낙랑대부인이 수양대군의 화살통에 막걸리를 가득 따랐다. 사병들도 화살통에 막걸리를 따랐다.
수양대군이 사병들을 향해 소리쳤다.
-무사들은 잘 들어라. 우리는 하나의 가족이며 영원히 함께할 것이다.
수양대군이 주먹으로 가슴을 치며 외쳤다.
-자, 단숨에 마시자!
-수양대군 만세!
사병들이 외치고 하나같이 화살통을 하늘이 높이 들고 막걸리를 마셨다. 화살통을 비운 수양대군이 부인에게 주고 막걸리 통을 번쩍 들어 넘치도록 막걸리를 따랐다.
-부인도 마셔야지요.
낙랑대부인은 거침없이 화살통의 막걸리를 마시고 트림을 “꺼억!” 하였다. 수양대군이 부인의 등을 두드리며 안주로 노릿하게 잘 익은 백호 갈비를 손으로 뜯어주었다.
낙랑대부인은 다음 날 운악사 주지 스님을 만나 백호 얘기를 털어놓았다.
-부인, 백호는 호랑이의 왕입니다. 백호가 수양대군 앞에 나타난 것은 왕이 나올 길조입니다.
-다섯 마리나 되었습니다.
-부인, 포천 운악산은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노는 명당입니다. 분명히 포천에서 다섯 왕이 나올 징조입니다.
-스님, 정말로 포천에서 다섯 왕이 나온다는 말이 확실합니까?
-백호는 조선 팔도에서 보기 어려운 영물입니다. 부처님이 부인에게 미륵불을 보여주신 겁니다.
-하면, 다섯 왕은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그것은 부처님만 아실 겁니다. 부인은 다섯 왕을 위해 준비하셔야 합니다.
낙랑대부인은 스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스님의 말을 그냥 듣고 넘기기도 어려운 일이라 고민하다가 수양대군에게 운악사 주지 스님의 얘기를 들은 대로 전했다.
-부인, 농담이 지나치십니다. 지금 조선은 건국의 어려운 시기를 넘기고 아버지가 잘 다스려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습니다. 또 세자도 총명하여 잘 보필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앞날을 어찌 알겠습니까? 아버님이 왕이 되신 지 삼십여 년이 되어가고 연세도 오십이 다 되었습니다. 세자도 서른을 훌쩍 넘었습니다. 아버님은 소갈증과 눈병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불미스러운 일에 대비해야 합니다.
낙랑대부인의 예언대로 수양대군이 서른다섯이 되는 해에 세종이 병으로 사망하였다. 그러자 세종의 뒤를 이어 세자 문종이 왕위를 물려받았다. 세자로 책봉된 지 삼십여 년이 되었고 오 년 전부터 병마에 시달리는 아버지 세종을 대신에 실제적 왕의 권한을 행사하여 문종의 집권 후에도 세종 시대와 변함이 없었다. 문종은 학문이 깊고 세자로 정치 수업을 오랫동안 받아 학자들을 아끼고 여러 정책을 펼쳤다. 하지만 세종이 건강을 위해 취했던 왕실의 불교를 유생들의 반발로 배척하면서 문종은 병약하여 왕실의 위엄을 세우는 데 실패하고 형제들의 견제를 받았다. 세종은 여섯 명의 부인에게서 스물두 명의 자녀를 낳았다. 그중 둘째가 수양대군, 셋째가 안평대군이었다. 형제들의 위협에 문종은 즉위하면서 바로 아들 홍위를 세자로 책봉했다.
세종은 병약한 맏아들과 어린 손자를 무예에 능한 수양대군이 위협할 것을 두려워하여 원래 그의 이름 진양대군을 주나라 무왕이 은나라 주왕을 멸하자 신하가 왕을 토벌한 것에 반대하며 수양산에서 절개를 지키며 고사리만 뜯어먹다 굶어죽은 형제성인 백이숙제의 충성심을 본받도록 수양대군으로 개명하였다. 안평대군은 서예와 시문 그리고 그림에도 뛰어나 명필로 이름을 날리며 독서를 즐기고 김종서, 황인보와 친밀하고 세종의 북방 정벌로 두만강 회령에서 여진족을 물리친 굳센 기상과 진취적 정신을 가진 왕자였다.
낙랑대부인은 어느 날 집에서 일어난 작은 소동을 크게 부풀렸다. 하녀들이 밥을 하는 중에 가마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는 명랑한 소리를 수양대군에게 집 가마솥에서 호랑이 울음소리가 났다고 말하였다.
-어허, 우리 집에서 큰 잔치가 열릴 일이 생긴 모양입니다.
-대감,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포천 운악사 주지 스님에게 넌지시 물어보고 왔습니다. 나라에 큰 슬픔이 닥칠 징조라 하였습니다.
-그게 정말이오.
-스님이 속뜻을 숨기기는 하였으나 분명 우리 집에서 큰 호랑이가 나올 것이라 하였습니다. 감, 포천 백운계곡에서 백호 다섯 마리가 나타났을 때도 다섯 왕이 나올 징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집에서 왕이 다섯이나 나온단 말이오?
-대감, 나는 스님의 표정을 보고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부인의 야심이 너무 큰 거 아니오?
-대감, 안평대군도 시서화를 핑계로 여러 대신과 친분을 쌓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대감만 당합니다.
-안평대군이 김종서 집을 들락거린다는 소리는 우리 무사들에게 보고받아 나도 알고 있소. 부인이 독서를 많이 하여 영특한 것은 알고 있소만, 부인의 욕망이 너무 지나친 것 같소이다.
-대감, 부부간에 무엇을 의논하지 못하겠습니까? 그것이 정난이라 할지라도 숨김이 없어야 합니다.
-부인 뜻은 알겠으니 입조심 하시오.
수양대군을 따르는 무사들을 중심으로 은밀히 소문이 퍼지면서 팔도에서 무술 꽤나 하는 무사들이 수양대군의 사병이 되겠다고 몰려들었다. 낙랑대부인은 집으로 찾아오는 무사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모두 수양대군의 사병으로 만들고 포천의 운악사를 자주 찾아 불공을 드리고 많은 시주를 하며 궁궐의 대소사를 불교에 의지하였다. 숭유억불을 국가의 이념으로 삼고 있는 조선에서 낙랑대부인의 불심이 남다른 것은 그녀의 아버지가 홍천현감 시절 홍천에서 태어나 공작산 아래 수타사에 태를 묻은 인연이 컸다.
시름시름 앓던 문종은 왕 즉위 이 년여 만에 명장 김종서와 영의정 황보인을 고신대신으로 지명하며 어린 세자가 왕이 되면 잘 보필해줄 것을 부탁하고 숨을 거뒀다. 열한 살의 나이로 단종이 왕이 되자 보필을 맡은 김종서와 안평대군에 맞서는 수양대군 사이에 왕위를 놓고 칼날이 번뜩이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이런 때에 별안간 수양대군은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겠다고 자청하고 나섰다. 권람이 한양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고 말렸지만, 수양대군은 명나라 사신과 시문을 겨루어 찬사를 받았던 신숙주를 사은사로 추천받았다. 낙랑대부인도 말리고 나섰으나 운악사에서 주지 스님을 만나고 온 다음에는 적극 찬성했다. 명나라 사신으로 가려는 깊은 뜻을 아는 사람은 수양대군 자신과 낙랑대부인 두 사람뿐이었다. 명나라에서 수양대군이 돌아오자 부인은 숨겼던 야심을 드러냈다. 서른 중반에 큰 뜻을 품은 부부는 밤이 깊은 줄 모르고 혁명을 모의했다.
-대감, 이 나라의 운명을 아이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단종은 나의 핏줄이고 조선의 왕입니다.
-어진 성인의 성품을 갖추지 못한 왕은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 대감, 요즘 김종서 대감이 어린 왕을 등에 업고 조정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있습니다. 재상들은 인사권을 쥐고 아들과 사위에게 벼슬을 주기 위해 합격자 수를 늘리고, 황인보는 아들을 일 년에 다섯 단계나 승진시켰으며, 김종서 대감은 자격미달의 아들을 천거하는 등 파렴치한 짓을 일삼아 나라가 매우 어지러운 상황입니다.
-부인, 나도 귀가 있소. 김종서와 황인보 등 대신들이 문종 형님의 유언을 받든다는 명목으로 이조의 인사권을 침범해 의정부에서 자기들이 낙점한 인사에게 황색종이를 붙여 올리면 어린 단종이 붓으로 점을 찍어 임명하는 황표정사를 내가 모를 리가 있겠소.
-대감, 그냥 두면 조선은 망하고 말 것입니다. 군주는 손으로 붓을 들지도 못하고 대신들이 어명을 받기도 전에 삼정승이 턱으로 가리키고 눈치로 시켜도 감히 누가 무어라 못해 조정은 있어도 군주는 있는 줄 모른다고 젊은 대신들이 한탄하고 있습니다.
-부인, 안평대군도 세를 불리고 여섯째 금성대군까지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걱정입니다.
-대감, 태종대왕도 왕자의 난으로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대감이 나서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 잡고 왕위에 오르셔야 합니다. 포천 백운산에서 우리 앞에 나타난 백호 다섯 마리는 미래에 나타날 왕 미륵이라 하였습니다. 대감이 왕위에 오를 것입니다.
수양대군은 은밀히 정난을 준비해 나갔다. 어느 날 집현전에서 제사 절차를 책으로 묶은 ‘진설’을 함께 편찬했던 권람이 한명회를 데려와 정난에 함께할 것을 간청하였다.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믿지 못하였으나 권람이 관포지교의 교우로 말에 “책 상자를 싣고 명승지를 다니며 대장부로 무공을 세우지 못하면 만 권의 책을 읽어 이름을 남기겠다.” 약속한 친구라고 소개해 수양대군은 한명회를 받아들이고 때를 기다렸다. 어린 조카가 왕위에 오른 다음 해 시월의 단풍에 서리가 핏빛으로 내린 날 사가에 모인 무사들 앞에서 나라를 어지럽히는 문무대신을 제거하고 나라를 평화롭게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런데 죽음으로 충성을 맹세했던 무사들이 정난을 일으켜 김종서를 제거하겠다는 말에 그를 두려워하며 수양대군의 편에서 무더기로 이탈했다. 믿었던 자신의 무사들에게 크게 실망한 수양대군은 버럭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대장부로 태어나 나라를 올바로 세우는 일에 목숨을 거는 일은 정당하거늘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는 목을 베겠다.
협박에도 무사들이 좀처럼 나서려고 하지 않아 수양대군이 갑옷을 벗고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낙랑대부인이 급히 안방으로 따라 들어가 포천 왕실 사냥터에서 잡은 표범 가죽으로 만든 갑옷을 수양대군에게 입혀주며 말했다.
-대감, 여기서 포기하면 우리는 다 죽습니다. 곧 김종서에게 대감의 거사가 들통 날 것이고 그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군사를 모아 올 것입니다.
-서둘러 정난을 일으켜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 잡아주세요. 대감, 나라를 바로 세우고 왕실을 보호하는 정난이므로 두려워하여서는 안 됩니다.
수양대군이 다시 마당으로 나서며 무사들에게 칼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우리는 이번 거사를 성공하지 못하면 삼족을 멸하는 화를 당할 것이다. 반드시 정난을 성공해야만 살아남을 것이다. 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우리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그들의 땅과 집, 종 그리고 그들의 부인과 딸들도 노비로 삼도록 나눠주고 모두에게 벼슬을 내릴 것이다. 표범 갑옷으로 갈아입은 수양대군의 당당한 모습과 자신 있는 외침에 무사들이 호응하며 사기를 되찾았다. 수양대군이 그날 밤 한무리의 사병들을 이끌고 김종서 집으로 찾아가 왕실 문제를 운운하며 서찰을 내밀자 김종서가 등불 아래서 서찰을 펼치고 읽어 내려갔다. 수양대군이 신호하자 무사 임어을운이 철퇴로 김종서의 머리를 가격하고 저항하는 아들 둘을 살해했다. 김종서는 겨우 목숨을 구해 피신하였으나 수양대군의 무사들에게 발각돼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수양대군은 영의정 황보인을 죽이고 삼정승을 장악해 영의정에 오르는 계유정난을 성공했다. 낙랑대부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수양대군에게 따지듯 물었다.
-안평대군은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안평은 나의 친동생입니다.
-대감, 혈육이 더 무서운 법입니다. 계유정난으로 대감에게는 수많은 정적이 생겼습니다.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은 모두 제거하여야 합니다.
-친동생을 죽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대감의 뜻이 정 그렇다면 유배를 보내십시오.
수양대군은 동생 안평대군을 강화로 귀양 보내고 정인지를 좌의정에 한확을 우의정으로 삼아 조정과 군권을 장악했다. 부인은 안평대군을 강화도에 두면 후한이 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한명회와 공신들을 움직여 강화도로 귀양 가 있는 안평대군에게 사약을 내리도록 하였다. 정난공신들이 권력을 잡자 수양대군은 단종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권력의 중심에서 조정의 대신을 모두 측근으로 교체했다. 하지만 함길도에서 김종서와 가까운 사이였던 도절제사 이징옥이 수양대군 일파가 자기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민 사실을 알고 함길도의 병사와 여진족에게 군사를 요청해 수양대군을 토벌할 군사작전을 세웠으나 한양으로 출발하기 전에 부하 장수들에게 암살되었다. 수양대군은 크게 노하여 역모의 주동자를 엄벌하고 왕자 중 유일하게 수양대군과 대립하던 금성대군을 경상도로 유배 보내 궁궐에서 위협적인 존재는 모두 제거했다. 한명회, 권람, 신숙주, 정인지 등 계유정난 공신들은 단종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외가마저 권력에서 멀리 있어 조정에는 단종을 보위할 대신들이 없었다. 한창 혈기 왕성한 수양대군은 호랑이보다 무서운 작은아버지였다. 단종은 수양대군과 마주하면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모든 일은 수양대군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였다. 낙랑대부인은 계유정난에 성공하고도 왕위를 물려받지 못하는 수양대군이 답답하였다. 그 당시 살해했으면 깨끗할 일을 단종을 살려둔 것이 불만이었다.
부인이 수양대군에게 마음먹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대감, 언제까지 기다릴 것입니까? 어지러운 나라를 평정한 지 일 년이 넘었습니다.
-부인, 단종은 형님의 아들이고 내 친조카입니다. 조카마저 죽이면 백성의 원망이 높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까?
-대감, 단종이 왕으로 앉아있는 한 이징옥의 역모나 금성대군처럼 왕자들의 위협은 계속될 것입니다. 한명회와 공신들을 이용하셔야 합니다. 공신들에게 모두 벼슬을 내려 보상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그들이 대감에게 충성할 차례입니다.
-공신들이 완전히 조정을 장악하고 있지 않습니까? 누가 나에게 반기를 들겠습니까?
-대감, 장담할 일이 아닙니다. 조정에는 아직 세종과 문종의 은혜를 입은 대신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루속히 왕위를 빼앗아야 합니다.
수양대군은 은밀히 한명회와 공신들을 집으로 불러들여 연회를 베풀고 뜻을 내보였다. 부인도 한명회에게 적극적으로 혼사를 의논하며 사돈 관계 맺길 원했다. 권력을 잡은 한명회는 왕실의 혼사 이야기에 발 벗고 나섰다. 한명회를 중심으로 공신들이 날마다 단종을 위협하며 왕위를 수양대군에게 양위할 것을 고하였다. 열두 살 단종은 할아버지 같은 늙은 대신들의 말이 간청이 아니라 협박과 같아 견디기 무서운 일이었다. 단종은 아버지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지 삼 년여 만에 작은아버지 수양대군에게 아이가 칼을 빼앗기듯 왕위를 양위했다.
경복궁에서 단종이 선포하였다.
-짐은 나이가 어려 나라 안팎의 중대사와 조정과 백성의 일을 잘 알지 못하므로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하겠노라.
대신들이 어명을 거두어줄 것을 간청하는 가운데 수양대군은 단종 앞에 엎드려 눈물 흘리며 사양했다. 단종이 대보를 들여오라 명하자 동부승지 성상문이 대보를 가져와 어물쩡대자 수양대군이 성상문을 험하게 노려보고 공신들이 어서 대보를 건네라고 소리치며 질타하였다. 단종이 대보를 수양대군에게 넘겨 더는 사양하지 않고 두 손으로 대보를 받들고 근정전에서 면복을 갖추어 입고 즉위했다. 단종은 스물네 살이나 많은 작은아버지의 상왕이 되어 수강궁으로 옮겨갔다. 그날 낙랑대부인은 경복궁으로 들어가기 전에 안채 마루에 포천 백운계곡에서 잡은 백호의 가죽을 깔아놓고 왕이 된 수양대군을 맞이했다. 공신들과 조정의 대신들이 모두 찾아와 새로운 왕 세조를 알현하며 진귀한 선물을 바쳤다.
중전이 된 부인은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세조에게 속마음을 말했다.
-전하, 운악사의 주지 스님 예언이 맞았지 않습니까?
-부인, 다섯 왕이 나온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전하가 첫 번째 왕이 되신 거고 우리의 자식들이 왕이 될 것입니다.
서른 중반의 세조와 중전은 인생의 황금기에 왕과 왕비가 되어 당당하게 대신과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경복궁으로 입궐했다. 그러나 조카의 왕위를 빼앗았다는 소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 해 문종의 고신대신으로 단종의 보필을 유언으로 받은 여섯 대신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역적으로 처형되는 사육신사건으로 궁궐은 피바람이 멈추지 않았다. 세조는 역모의 책임을 물어 단종을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시켜 강원도 영월의 섬과 다름없는 청령포로 유배시켰다. 단종의 소식을 들은 금성대군이 유배지 경상도 순흥에서 군사를 모아 복위를 모의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돼 처형되었다. 세조는 끝없이 일어나는 단종 복위 역모에 시달렸지만 모든 역모의 원인은 단종을 살려둔 탓이란 신하들의 상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중전이 세조의 마음을 읽고 말했다.
-단종을 죽이지 않으면 전하는 하루도 편한 날을 보내지 못할 겁입니다. 또 다섯 왕이 나기도 전에 전하가 처음이자 마지막 왕이 될 것입니다. 왕권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도 죽이고 형제도 죽인 피비린내 나는 역사가 수두룩합니다. 어린 조카 하나 죽이는 것조차 망설이면 큰 뜻을 어찌 이루겠습니까? 왕권을 지키려면 전쟁도 불사하는 것이 나라의 일입니다.
-부인, 어찌하자는 말입니까?
-어찌 전하의 손에 피를 묻히겠습니까? 계유정난 공신들을 이용해야지요. 신하들이 노산군에게 사약을 내리라고 상소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조선은 전하의 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나만의 나라는 아니지요. 중전의 나라이기도 합니다.
-전하, 이 나라는 백성들의 나라입니다. 절대 잊으시면 안 됩니다.
세조가 감탄하며 중전을 껴안고 번쩍 들어 방안을 한 바퀴 휘돌아 내려놓았다. 중전의 얼굴이 붉어지자 세조가 말했다.
-나는 평생 중전만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어찌 한 여인만 바라보고 살겠습니까? 좋은 여인이 있다면 후궁으로 맞이하셔야지요.
세조는 좋은지 싫은지 허탈하게 웃으며 근정전으로 갔다. 이미 대신들의 상소가 빗발치듯 올라와 있었다. 하나 같이 역모의 주동자는 단종이니 사약을 내리라는 상소들이었다. 세조는 이미 형제들을 둘이나 죽이고 심정이 괴로웠으나 중전의 뜻에 따라 단종에게 사약을 내리도록 어명을 내렸다.
단종은 사약이 청령포에 도착하기 전에 노산대에 올라 한양의 부인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팔십 미터 절벽 아래 동강으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강에 떠오른 시신을 불쌍히 여긴 부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물에서 건져 야산에 매장했다. 단종의 죽음으로 역모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세조는 조카를 죽인 죄책감에 신경쇠약으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중전은 포천 운악사를 찾아가 부처님께 성심을 다하였지만, 세조의 피부병은 낫지 않고 부스럼이 딸기처럼 심해지자 더욱 불교에 심취에 궁궐 안에 불당을 짓고 불서를 간행하며 세조가 죄책감에서 벗어나도록 애를 썼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지 삼 년 만에 의경세자의 병세가 악화되자 정희왕후는 수십 명의 승려를 경회루로 불러 병마를 덜고 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공작재를 올렸다. 신숙주와 한명회, 정인지 등 계유정난의 훈구대신들이 모두 참석해 불공을 드렸지만 의경세자는 병이 깊어 스물의 나이로 계유공난 일등공신 한확의 딸과 혼인해 낳은 월산대군과 자산군 두 아들을 두고 숨을 거뒀다. 중전의 슬픔은 백두산이 무너지는 듯하였다. 한확의 딸과 세자를 결혼시킨 의도는 그의 딸 둘이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므로 세자가 왕위를 물려받아도 그 누구도 왕위를 위협하지 못할 외척의 힘으로 세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는데 애석하게 의경세자는 절명했다.
정희왕후는 큰아들의 죽음이 단종을 죽인 저주라 생각돼 수시로 한강 건너 봉은사와 포천의 운악사를 찾아 불공을 드렸다. 하지만 지극한 불심으로도 죄책감은 씻기 어려워 늘 불안하고 세조 또한 죗값을 치르느라 피부병이 심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고 괴로웠다. 불길한 일은 계속돼 궁궐에 폭우가 내리고 천둥치며 번개가 내리쳐 자산군을 보호하던 환관이 벼락에 맞아 새까맣게 타 죽고 주변의 환관과 궁녀들이 모두 기절하였으나 어린 자산군만 기절하지 않고 당당히 서 있었다. 정희왕후는 자산군의 씩씩함과 굳센 기상에 감탄하였다. 자산군이 벼락을 피해 살아난 것은 부처님의 보살핌이라 믿었다. 중전은 조카 단종을 죽이고 남편을 왕위에 올려놨으나 한명회의 권세가 하늘 높이 치솟고 조선의 선비들이 그의 집으로 몰려드는 것이 두려웠다. 계유정난을 성공시킨 그의 지략이 역으로 세조에게 미칠까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희왕후는 비가 오는 날은 무섭고 두려워 수없이 하늘을 쳐다보다 경회루에서 세조가 차를 마시고 있는 것을 보았다. 중전이 다가가자 세조가 옷 속에 손을 넣고 배를 굵다 급히 손을 뺐다. 중전이 세조 옆에 앉으며 물었다.
-전하, 비 오는 날은 더욱 가렵습니까? 온양온천이라도 다녀오시지요?
-피부병에는 온양온천 물이 특효라고 어의가 권하니 다녀와야겠습니다.
-전하, 자산군의 혼처는 전하의 보위와 장차 세자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한명회의 딸과 혼인시키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한명회를 따르는 자들이 조선팔도에서 모여들고 그의 권세가 전하에 버금가고 있습니다.
-글쎄올시다. 좋은 혼처는 많은데 내가 왕이 되어도 내 마음대로 혼처를 정하지 못하다니 서글픕니다. 정난을 일으킨 뜻은 나라를 올바르게 다스리는 정치를 하고자 하는 뜻이었으나 정난공신들의 권세는 이상정치를 넘어 부정부패로 타락하고 있습니다.
-전하, 공신들의 공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전하를 왕으로 세웠듯 전하를 왕에서 끌어내릴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자들입니다. 최고의 권세가 한명회와 사돈을 맺는 것이 왕실을 보호할 가장 안전한 장치입니다.
-중전, 하지만 둘째 해양대군이 이미 한명회의 딸과 혼인을 하지 않았습니까?
-아들과 사돈을 맺었다고 손자와 또 사돈을 맺지 말라는 법이 있겠습니까? 어찌 전하만 생각하십니까? 아들과 손자도 보호막이 필요할 겁니다. 우리가 행한 대로 돌려받지 않으려면 한명회 딸과 자산군의 혼사는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한명회 대감의 뜻은 어떠합니까?
-전하, 이 나라 신하들은 왕실과 사돈이 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르지 않습니다.
정희왕후는 둘째아들 해양대군에 이어 손자 자산군을 한명회의 딸과 다시 한번 결혼시켜 어찌 보면 한명회에게 아들과 손자를 장가보낸 꼴이 되었다. 백성들은 한명회의 권세가 세조를 능가한다고 떠들고 선비들은 한명회의 집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또한 의숙공주는 정인지의 아들과 결혼시켜 왕가와 공신 그리고 공신과 공신 집안끼리 혼사가 이루어져 사돈 관계로 거미줄처럼 이어졌다.
세조의 온몸에 피부병이 번져 고름이 줄줄 흘러나왔다. 온양온천과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까지 가서 불공드리며 피부병의 완치를 꾀하였으나 병은 전혀 차도가 없었다. 정희왕후는 세조가 후궁을 들이지 않는 것은 피부병 때문이라 생각했다. 세조는 밤에도 중전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을 꺼려했다. 부스럼이 덕지덕지 붙어 딱지가 지고 또 헐어 진물이 흐르고 고름이 누렇게 곪아 누르면 터져 흘러나왔다. 정희왕후도 남편인 세조의 몸을 차마 눈 뜨고 보기 역겨웠다.
세조에게는 수양대군 시절에 박 씨 후궁이 있었다. 세조가 즉위하자 정3품 소용에 봉해져 아들 하나를 낳았지만 곧 죽고 세조의 관심이 뜸해지자 환관과 사랑하다 발각돼 세조의 옛정으로 죽음을 면하고 나인으로 강등되었다. 박 씨는 나인이 돼 또다시 세조의 조카 구성군에게 연애편지를 보냈다가 구성군이 세조에게 고하여 또 한 번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였다. 세조는 박 씨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또다시 살려주려 하였으나 정희왕후의 반대로 대신들이 죽여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해 세조는 다음 날 박 씨를 참수하고 슬퍼하다가 왕이 국난을 당할 때 입는 붉은 융복에 붉은 갓을 쓰고 예를 갖췄다. 그 후로 세조는 다시는 후궁을 들이지 않았다.
피부병은 세조에게 참기 어려운 처참한 고통이었다. 세조가 왕위에 오른 지 십삼 년이 되도록 어떤 어의도 세조의 피부병은 치료하지 못했다. 부스럼이 온몸에 금강산 일만이천봉 바위처럼 솟아올라 고통스러워할 때 함길도 호족이 난을 일으켰다. 함길도는 조선 왕실의 발상지로 많은 호족이 등용되었으나 세조는 반대로 함길도 인재 등용을 반대하고 중앙집권 체제를 강화하자 길주의 호족 이시애가 북방호족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켜 함길도를 차례로 점령하고 한양을 향해 진격했다. 세조는 구성군을 함길도, 강원도, 평안도, 황해도 4도병마도총사로 임명하고 삼만의 병사를 주어 남이장군을 대장으로 삼아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하지만 이시애는 한양의 한명회, 신숙주 세력과 합세하여 세조를 제거할 계획이라고 헛소문을 퍼트렸다. 이시애의 작전에 말려든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를 옥에 가두고 신문했다. 정희왕후의 적극적인 구명운동으로 목숨을 구한 한명회와 신숙주는 역적의 누명에서 겨우 풀려났다. 이때 경복궁 문지기 출신 갑사 유자광이 세조에게 상소를 올렸다. 그는 함길도가 산악지형이기는 하나 적이나 관군 모두에게 같은 조건이므로 과감하게 전투를 치를 것을 주장하고 작은 자리라도 준다면 이시애의 목을 베 바치겠다고 하였다. 세조는 유자광을 불러 그의 계략을 묻고 종9품의 벼슬을 내려 구성군을 도와 책사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우도록 하였다.
구성군은 북청전투에서 이시애를 물리치고 삼 개월에 걸친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함길도의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동갑내기 남이장군은 북청전투에서 몸에 대여섯 개의 화살을 맞고도 용감하게 적을 물리친 공을 인정받아 구성군과 함께 일등공신에 책봉되었다. 서자인 유자광이 관직에 오를 수 있도록 허통하고 병조정랑 종5품에 임명했다. 세조는 함길도를 남도와 북도로 행정구역을 나누어 반란 세력을 잠재웠다.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는 데 성공하자 다시 피부병이 극심해져 스물여덟 살의 유자광을 인솔자로 하여 중전, 세자와 함께 온양온천으로 행차했다. 정희왕후는 한명회와 신숙주로 대표되는 훈구파의 세력을 약화시킬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훈구파의 늙은 권세가를 견제하기 위해 스물일곱의 사림 구성군을 영의정에 동갑내기 남이장군을 병조판서에 발탁하도록 세조를 움직여 파격적인 인사를 단행했다.
세조보다 두 살 많은 한명회, 동갑인 신숙주 등 오십이 넘은 계유정난 공신 훈구파와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신 구성군, 남이장군, 유자광의 이십대 중반 사림파의 갈등이 깊은 가운데 세조의 새로운 지지를 받는 사림파의 젊은 대신들이 조정을 장악하였다. 젊은 사림파들은 혈기 왕성한 탓인지 남이장군은 구성군이 세조의 총애를 받는 것을 시기하였고, 유자광은 종5품에 머무른 것이 구성군과 남이장군이 공적부를 잘못 올린 탓이라 여겼다. 그러나 유자광을 일등공신에 추서하였으나 서자 출신이라 조정 대신들의 반대로 탈락했다. 정희왕후는 뜻하지 않은 역습을 당했다. 공신들의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중용한 왕실 종친 구성군이 영의정에 오르면서 종친들이 구성군에게 모여들어 세자에게 크나큰 위협이 되자 잘못된 인사라는 것을 깨달았다. 구성군은 세조의 동생 임영대군의 아들이었다. 작은아버지가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는데 사촌형이 어린 동생의 왕위를 빼앗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세조의 병이 갑자기 악화되며 궁중에는 새로운 정난의 바람이 불었다. 정회왕후는 다급했다. 세조가 그냥 죽는다면 크나큰 변이 일어날 긴장감이 감돌았다. 중전은 세조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살피다가 하루 전에 온몸에서 시신이 썩듯 진물이 흘러내리는 세조의 죽음을 예감하고 대신들의 접근을 차단한 채 죽기 전에 둘째아들 해양대군에게 왕위를 양위하도록 세조를 압박했다.
-전하, 당장 세자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부인, 내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습니까?
-전하가 죽기 전에 왕위를 세자에게 양위하여야 단종처럼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부인, 우리가 단종을 죽인 죄를 받는 듯합니다. 첫째아들 의경세자가 스물에 죽고 내가 이렇게 피부병에 시달리는 것은 우리가 천벌받은 탓입니다.
-전하는 이 나라와 백성을 구하기 위해 혁명을 한 겁니다. 전하가 새 왕을 세우지 않고 눈을 감는다면 또 다른 혁명이 일어날 것입니다. 해양대군은 몸도 약하고 이제 열여덟 살입니다. 영의정에 오른 구성군은 스물일곱의 젊은 왕족이고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일등공신입니다. 구성군은 왕위에 욕심이 없다고 하여도 종친과 대신들이 구성군을 왕으로 세우려고 역모를 꾀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부인이 알아서 신중히 세자에게 왕위를 양위하는 절차를 조용히 밟도록 하시오.
-전하, 모든 것은 나에게 맡기고 마음을 편히 가지세요.
정희왕후는 어의를 불러 세조를 보살피도록 하고 한명회를 조용히 불렀다. 만약에 세조가 위중하다는 소문이 새 나간다면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어려운 긴박한 상황이었다. 정희왕후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해양대군 세자의 장인 한명회뿐이었다. 노련한 한명회는 훈구대신들을 은밀히 모아 세조의 왕위 선위를 의론해 신속히 진행했다. 세조가 선위의 뜻을 밝힌 지 하루 만에 수강궁에서 해양대군이 훈구대신들 앞에서 면복을 갖추어 입고 감쪽같이 즉위식을 치르고 새로운 왕이 되었다. 남이장군이 병조판서에 오른 지 십삼 일 만에 세조는 단종을 죽인 죄책감에 시달리며 생기기 시작한 부스럼이 화산이 폭발하듯 악화돼 고름을 뒤집어쓰고 숨을 거뒀다. 한명회의 훈구파들은 열여덟 살의 새 왕 예종이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정희대비의 수렴청정하도록 결정했다. 대신들이 모두 물러난 깊은 밤에 새 대비는 날이 밝도록 눈물을 삼켰다. 그녀의 울음을 들은 궁녀는 없었다. 훈구파들은 무섭게 젊은 사림파를 몰아냈다. 그 첫 번째 대상자는 무장으로 이름을 날리던 남이장군이었다. 정희대비는 예종이 즉위하는 날 남이장군을 조선의 군사와 국방을 통솔하던 병조판서에서 궁궐의 경비와 순찰 그리고 왕의 행차 경호를 맡는 겸사복장으로 좌천시켰다. 남이장군은 조정에 불만이 가득한 상황에서 그가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고 지은 시가 그의 목을 조였다.
백두산은 칼을 갈아 없애고
두만강은 마르도록 말을 먹이리라
스물에 나라를 평안케 못하면
누가 훗날 나를 대장부라 하겠는가
남이장군에게 불만이 많았던 유자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스스로 남이장군이라 칭하는 남이가 궁궐 경비를 서며 별동별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새로운 별이 나타날 것이라!” 하였다며 역모를 일으킬 것이라 고하였다. 구성군과 남이장군을 두려워하던 정희대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곧바로 체포하여 고문하였지만 남이는 강력히 역모를 부정하였다. 하지만 기혹한 고문으로 남이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자들을 잡아다 저잣거리에서 남이장군과 함께 팔다리와 목에 밧줄을 묶고 소 다섯 마리에 밧줄을 묶어 소를 천천히 다섯 방향으로 끌어당겨 몸통을 여섯으로 찢어 죽이는 거열형에 처해 죽였다. 유자광은 남이가 한명회를 처단하고 새로운 왕을 추대할 것이라고 예종에게 고변해 남이옥사를 다스린 공으로 한명회, 신숙주와 함께 일등 익대공신에 올랐다. 정희대비는 나라가 어수선해 어린 예종을 모시고 포천 운악사로 행차했다.
대비가 주지 스님에게 물었다.
-세조대왕의 능은 어디에 쓰는 것이 좋겠습니까?
-대비마마, 포천 운악산은 동으로는 금강산, 북으로는 묘향산, 남으로 지리산, 서로는 구월산이 있어 운악산은 천하제일의 명당입니다. 봉선사에서 서쪽으로 오 리를 가면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가지고 노는 명당이 있습니다. 세조대왕의 붕어 소식을 듣고 소승이 능침 자리를 잡아놓았습니다.
-두 마리의 용이라 하면 또 누가 그곳에 눕는다는 말입니까?
-대비마마, 백호의 다섯 번째 왕이 누울 자리입니다. 아직 그 능의 주인은 알 수 없습니다.
-이미 세조대왕과 예종 두 명의 왕이 나왔는데 나머지 셋은 누구입니까?
-대비마마, 운악산 아래 세조대왕의 능을 쓰고 광릉이라 이름하면 소승이 말한 대로 광릉에서 다섯 왕이 나오고 조선은 고려에 버금가는 긴 세월 왕조를 이어갈 것입니다. 또한 미래에 미륵의 빛이 비출 한반도의 터는 포천입니다.
정희대비는 세조의 극락왕생과 선왕의 업적을 받든다는 의미로 운악사를 봉선사로 이름하고 의숙공주 부마 정현조와 한명회를 책임자로 지명해 봉선사를 중창하도록 하였다. 또한 신숙주와 한명회는 광릉 사방 구십 리의 민가를 철거하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뽑을 수 없는 왕의 숲으로 조성하고 군사들을 배치해 사람들의 출입을 통제했다. 세조는 피부병에 시달린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죽어서라도 빨리 부스럼의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시신이 빨리 썩을 수 있도록 무덤에 돌방을 만들지 말고 간소하게 흙으로 덮고 무덤 둘레에 병풍석을 세우지 말라고 유언하여 십이지지신상은 난간석에 새겼다. 예종은 동 이만오천 근을 들여 쌍룡꼭지와 연꽃무늬를 새긴 동종을 만들어 범종각을 세워 달았다. 정희왕후는 봉선사를 광릉의 원찰로 삼은 기념으로 느티나무를 심고 어실각을 세워 세조의 위패를 모시고 하마비를 세워 봉선사를 찾는 사람은 누구나 말에서 내려 걸어서 봉선사에 들도록 왕의 위엄을 세웠다. 봉은사와 봉선사 두 절이 조선의 모든 사찰을 관리 감독하도록 하고 왕실에서 보호했다. 정희대비는 세조의 묘호를 세조대왕으로 정하여 아버지 세종대왕보다 높여 불렀다. ‘조’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에게 붙이고 후대 왕들은 ‘종’을 붙였으나 정희대비는 계유정난으로 세조가 새로운 나라를 세운 것이라 우겨 ‘세조대왕’이란 묘호를 붙였다.
봉선사에서 돌아오자 왕실의 종친들 불만이 폭발했다. 조선 최초로 예종과 나란히 앉아 수렴청정하는 것도 불만이 많았는데 세조대왕으로 묘호를 칭하고 예종의 원상으로 신숙주, 한명회를 임명해 훈구대신들이 예종을 대신해 조정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종친들이 강직한 성품과 뛰어난 무예를 갖춘 구성군을 옹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정희대비가 구성군을 왕권을 위협하는 인물로 간주하였으나 아버지 임영대군의 죽음으로 구성군은 영의정을 사직해 화를 면했다. 정희대비는 의경세자의 둘째아들 자산군을 한명회와 훈구대신들의 상소로 잘산군에 봉했다.하지만 정희대비는 예종이 왕위에 오른 지 십삼 개월 만에 몸이 약해 갑자기 사망하는 큰 슬픔을 다시 한번 맞이했다.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이 있었으나 나이가 네 살이라 단종을 생각하면 왕으로 세우기 어려웠다. 의경세자 큰아들 월산군이 세조의 총애를 받고 나이가 열여덟로 장성하여 월산군이 왕위 계승 일순위였다. 하지만 정회대비의 생각은 달랐다. 월산군은 왕실 교육을 받아 총명하고 똑똑해 학문을 좋아하고 책을 가까이하는 순수한 성품에 술을 즐기고 산수경치를 즐겨 문장에 뛰어났지만 왕희대비는 월성군의 학자풍 성격이 정치와는 맞지 않는다고 봤다. 또한 그의 외척은 강력하지 못해 신권이 왕권을 위협할 소지가 많았다. 세조대왕이 왕권을 강화해 신권을 누르려던 정책을 이어갈 수 없었다. 예종이 즉위하자 훈구파들이 다시 원상으로 득세하며 조정의 정책을 쥐락펴락하면서 왕권이 무너지고 신권이 다시 부활하는 것을 몸소 체험한 정희대비는 세조의 왕권 강화정책을 뼈저리게 느꼈다.
잘산군의 벼락사건이 머리에서 맴돌며 강인하고 굳센 잘산군이야말로 조선의 군주다운 성격의 소유자로 외척 또한 대단했다. 어머니는 계유정난 일등공신 한확의 딸이고 이모가 명나라 선종의 후궁으로 명나라 황실과 관계를 맺고 있었다. 잘산군의 비는 정희대비가 손수 짝지어준 한명회의 딸이었다. 훈구파들은 계유정난 일등공신 외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잘산군을 적극 왕위에 올리려고 하였다. 한명회의 막강한 권세가 두려웠던 정희대비는 앞장서 아들과 손자를 한명회 딸들과 결혼시켜 겹사돈 관계를 맺었고 한명회만큼 왕실의 보호막이 되어줄 신하도 없다고 믿었다. 잘산군이 왕위에 오른다면 한명회는 사위가 연이어 왕이 되고 또다시 왕의 장인이 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왕보다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므로 잘산군을 지지하고 훈구파들도 한명회를 따라 적극 지지했다. 하지만 왕실의 종친들은 월산군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순서라며 지지하였다. 구성군도 월산군 편에 서면서 왕실 종친과 훈구파들이 왕위 계승을 놓고 대립했다. 정희대비의 결정에 따라 월산군과 잘산군 중 왕이 될 자가 결정되었다.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나이가 너무 어려 애초에 정희대비의 눈 밖에 있었다. 월산군이 열여덟 살로 이 년 후면 수렴청정에서 벗어나 친정할 수 있는 나이지만 이 년으로 조정의 정치를 터득하기는 짧은 시간이라 늙은 대신들에게 휘돌릴 가능성이 높았다. 잘산군은 열세 살이므로 칠 년간 수렴청정한다면 올바른 정치를 배워 왕권을 강화해 신권을 누르고 이상정치를 실현할 충분한 세월이었다. 정희대비는 예종의 수렴청정하면서 실현하지 못했던 왕권을 강화하고 조선을 나라답게 만드는 이상정치를 스스로 해보고 싶었다. 또한 한명회의 강력한 지원은 그녀가 수렴청정하는 동안 왕실과 잘산군을 지켜줄 든든한 배경이었다. 정희대비는 월산군이 심성이 연약하다는 이유를 들어 왕실 종친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훈구파들이 지지하는 잘산군을 조선의 9대 왕으로 만들었다. 조선 왕의 즉위식은 선왕의 장례기간 동안에 이루어져 화려한 즉위식은 생각할 수 없었다. 성종의 즉위식도 간소하고 빠르게 이루어졌다. 즉위식이 끝나기 무섭게 신숙주가 장계를 올렸다.
새 왕이 나이가 어려 백성들의 근심 걱정이 매우 큽니다. 신들이 생각건대 왕실의 가장 어른이신 자성왕대비전하께서 슬픔을 정리하시고 종사의 소중함을 헤아려 이 나라의 정사를 대신하시다가 임금이 스스로 나라를 다스릴 스무 살이 되면 정권을 다시 임금에게 돌려주면 될 것입니다.
정희대비는 수렴청정을 허락하고 조선의 최고 권력자 자성왕대비전하가 되었다. 신숙주는 한명회에 버금가는 권세를 누리고 있었다. 신숙주의 큰아들이 현명회의 딸과 결혼했으므로 예종과 성종은 신숙주의 아들과 동서지간이었으므로 정희대비의 신임이 두터웠다. 훈구파들은 아홉 명의 명단을 올려 원상제를 실시하도록 하였다. 정희대비의 수렴청정과 아홉 명의 재상들로 구성된 원상제를 동시에 실시해 조정의 중대한 결정은 원상들이 최종결정했다. 정희대비는 원상제가 불만이었지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계유정난 이후 거듭된 정변으로 공신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신권이 강력한 세력으로 성장해 있었다. 어린 성종이 즉위하고 왕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성종이 친정하기 전까지는 신권을 무시할 수 없었다. 훈구파들은 다시 본색을 드러내며 왕실의 종친인 구성군이 왕권을 위협한다고 정희대비에게 거듭 고했다. 성종 즉위년에 선비들은 “문무를 겸비한 구성군이 왕이 될 인물이다.”라고 떠들어 소문을 냈다. 종친들은 구성군을 지지하며 훈구파를 견제하고 나섰다.
정희대비가 신숙주에게 물었다.
-구성군이 왕실을 위협하는 것이 맞습니까?
-대비마마, 임금은 아직 어립니다. 언제든지 기회만 있다면 왕실의 종친들이 왕을 위협할 것입니다.
정희대비가 한명회에게 물었다.
-종친들이 구성군을 왕으로 세우려한다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대비마마, 종친들은 조정을 장악하려고 합니다. 구성군을 그냥 둔다면 역모는 끝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구성군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한양에서 멀리 귀양 보내 종친들이 더 이상 구성군을 중심으로 세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미리 방지하여야 합니다.
정희대비는 누구보다 왕을 위협하는 세력에는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린 성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종친을 배척하라는 훈구파들의 상소는 왕권을 약화하고 신권을 강화하려는 신하들의 속뜻을 알면서도 성종을 보호하기 위해 구성군을 경상도 영덕으로 유배 보냈다. 이번에는 월산군이 마음에 걸렸다. 종친들이 구성군 대신 월산군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억울하게 왕위를 동생에게 빼앗긴 월산군을 움직여 왕을 위협하고 나섰다. 정희대비는 월산군을 월산대군으로 봉하고 좌리공신 이등으로 책봉해 전답과 노비 그리고 관노비를 내려 보필하도록 하였다. 좌리공신은 성종을 잘 보필한 공로로 신숙주와 한명회 등 많은 신하에게 내렸다. 정희대비는 훈구대신들과 농간해 월산대군을 좌리공신에 책봉하고 다시는 왕위 계승을 꿈꾸지 못하게 만들었다. 월산대군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마포 근처에 멀리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원정이란 정자를 짓고 술을 즐기며 책에 파묻혀 살았다. 월산대군까지 정리해 성종을 위협하는 왕실의 종친은 모두 제거한 셈이었다. 마지막으로 훈구파를 견제하기 위해 대신을 감찰하고 임금에게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직언하는 대간을 강화했다. 대신과 대간이 대립하는 가운데 왕권의 강화를 노려 훈구파들의 신권을 약화시켰다.
왕실 종친의 정치참여를 경국대전에 종친사환금지를 규정하여 종친 정치의 종말을 고하고 대간을 강화해 신권을 견제하는 방법으로 성종의 불안한 왕권을 강화하여 정치적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노련한 정희대비의 정치는 훈구파들도 날뛰기 못하게 하였다. 마음이 안정되면 정희대비는 단종이 꿈에 나타나 괴로웠다. 죄책감은 사그라들지 않고 가중되어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마음에 걸려 신숙주를 대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계유정난을 성공하고 논공행상을 하는 잔치에서 신숙주는 세조에게 안평대군 수하의 아내와 딸을 보고 미모에 반하여 자기에게 노비로 달라고 청하였다. 세조는 반대파들을 처단하고 공신들에게 하사품으로 그들의 아내와 딸을 노비로 주었으므로 신숙주의 간청을 들어주었다. 하지만 두 여인은 수치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우물에 투신해 죽었다. 신숙주는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었던 여인을 그 자리에서 세조에게 다시 달라고 청하였다.
-전하, 어미와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므로 다른 여인을 주십시오.
-어떤 여인을 말하는가?
-단종의 비 정순왕후가 노비로 강등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요?
-우리 집으로 정순왕후를 데려가도록 해주십시오.
세조가 자리에서 술상을 박차고 일어나 칼을 뽑아들고 신숙주의 목에 들이대고 호랑이처럼 으르렁거리며 내려다보았다. 신숙주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아뢰었다
-전하, 황공하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짐과 왕실을 능멸하는가? 개국공신이라도 왕가를 능멸하는 자는 용서하지 않겠다.
세조가 칼을 높이 들고 호령하자 한명회와 권람 등 개국공신들이 모두 달려나가 세조 앞에 엎드리고 권람이 고하였다.
-전하, 신숙주 대감이 술에 취하여 한 소리이니 용서하시옵소서.
세조는 공신들의 속죄로 마음을 진정시키고 신숙주의 계유정난 공을 인정하여 용서하였다. 정희왕후는 그런 신숙주를 보면 항상 단종의 비가 걱정되었다. 조선의 절세가인으로 아름답기로 하면 신하들이 탐할 만한 절색이었다. 후궁들의 숙소 정업원에 거쳐하며 매일 낙산에 올라 동쪽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빈다고 하였다. 정희대비는 정순왕후를 신원하여 장업원에 쌀과 돈을 보내 끼니 걱정하지 않고 살도록 해 죄책감을 덜고자 하였다. 선왕의 왕비이고 상왕의 왕대비 정순왕후를 작은어머니로서 조카며느리의 신변을 보장하고 왕실 가족으로 보살폈다. 정희대비는 왕실의 문제부터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성종이 왕이 되자 그의 아버지 의경세자가 왕이 되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성종의 정통이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왕실의 종친들이 얼마든지 성종의 적자혈통 문제를 들출 소지가 있었다. 정희대비는 추후라도 성종을 몰아내려는 역모가 일어나지 않도록 의경세자를 왕으로 추존하여 덕종이란 묘호를 내렸다. 맏아들이 단종을 죽인 죗값으로 절명한 것 같아 죄의식을 씻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다.
정희대비가 성종을 데리고 포천 봉선사로 사냥 행차를 나갔다. 매사냥을 즐긴 성종은 왕실 사냥터로 할아버지 세조와 아버지 예종을 따라다니며 사냥을 배웠고 특히 동물을 좋아해 사로잡은 사슴은 궁궐에 가져가 키웠다. 정희대비는 성종에게 성군이 되려면 불심을 키우도록 강조했다.
-주상, 조선의 왕실은 부처님의 은덕으로 번성하고 있습니다.
-대비마마, 조선은 조상을 숭배하고 예의를 소중히 여기는 나라입니다. 유교의 전통을 따라야 합니다.
주지 스님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전하의 뜻대로 하소서. 다만 왕실의 불교를 억압하지는 말아주세요.
사냥에 나선 성종은 용맹하고 무예도 뛰어났다. 군사들이 꿩을 몰이하는데 숲에서 사슴이 뛰어나오고 사슴을 쫓아 호랑이가 숲에서 뛰어나왔다. 군사들이 놀라 어쩔 줄 몰라 허둥거려 성종이 활 시위를 힘껏 잡아당겨서 쏘아 화살이 호랑이 대가리에 명중해 그 자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꿩이 숲에서 날아오르면 매를 날려 꿩을 사냥하는 기술은 성종을 따를 자가 없었다. 정희대비는 사냥하는 모습을 보면 세조를 보는 것 같아 섬뜩했다. 사냥을 마친 성종은 광릉에 올라 세조의 능에 서서 할아버지에게 조용히 다짐하였다.
-조선을 평화롭게 다스리는 성군이 되겠습니다.
주지 스님이 목탁을 두드렸다.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성종은 대비보다 앞서 봉선사에 많은 시주하고 주지 스님에게 할아버지의 명복을 비는 불공을 특별히 부탁하면서 스님에게 봉선사가 광릉의 자복사로 소명을 다할 것을 거듭 강조하였다. 성종은 궁으로 돌아와 숭유억불을 강화해 도성 내 사찰을 폐지하고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했다. 다만 궁내의 불교는 그대로 유지해 정희대비의 불심을 유지토록 하였다. 또한 불교의 화장 풍습을 금하고 유교의 전통을 따라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성리학을 공부한 김종직을 비롯한 사림의 인재들을 등용해 유학을 널리 장려하면서 선비와 유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정희대비와 훈구파들이 성종을 도와 왕권이 안정되고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누렸다. 성종이 등용한 사림파는 훈구파를 견제하는 수단이 되었다.
성종은 술과 여자를 좋아해 후궁을 열둘이나 들였다. 후궁이 많아진 것은 정희대비가 신권을 견제하기 위해 권세가들과 마구잡이로 사돈 관계를 맺은 탓도 있지만, 성종은 왕성한 성욕으로 여자를 가리지 않았다. 첫째 부인 한명회 딸 공혜왕후가 후손 없이 열아홉 살에 죽자 성종은 후궁 정 씨와 엄 씨에 푹 빠져 낮에는 정치하는 성군으로 밤에는 후궁들의 치마 속에서 노는 폭군으로 살았다. 열두 명의 후궁을 모두 사랑해 열여덟 명의 아들과 열두 명의 딸을 낳아 후궁끼리 서로 성종을 처소로 불러들이려는 질투와 다툼이 밤마다 끊임없었다. 정희대왕대비는 덕종의 비 소혜대비와 예종의 비 안순대비를 불러 중전의 빈 자리를 논하였다. 성종이 정 후궁과 엄 후궁에 깊이 빠져 있어 하루속히 중전을 정해주어야 할 시기였다.
성종의 어머니에게 먼저 물었다.
-소혜대비는 누구를 중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까?
-정 후궁은 얼굴이 절색이라 주상이 자주 찾고 엄 후궁은 얼굴도 얼굴이지만 성격이 명랑하여 그녀의 애교에 주상이 놀아나는 것 같사옵니다. 하지만 두 여인은 가문이 천하여 중전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럼 누구를 중전으로 앉힐 생각이란 말이오?
-숙의 윤 씨를 생각하고 있으나 그녀 또한 집안이 변변치 않아 주상에게 어울릴지 염려가 됩니다.
안순대비가 불쑥 입을 열었다.
-숙의 윤 씨는 검소하고 품성이 순수해 주상의 총애를 받는 여인으로 우리를 대하는 태도가 정중하고 성의를 다하는 듯합니다.
-그래, 안순대비는 숙의 윤 씨를 중전으로 삼자는 말입니까?
안순대비는 소혜대비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하지 않았다. 제안대군의 왕위를 성종이 빼앗아 가는 바람에 정희왕대비나 소혜대비가 고깝지 않을 수 없었지만 제안대군의 안위를 위해서는 함부로 나설 수 없었다. 제안대군은 나이가 들면서 점점 어머니의 뜻에 따라 성품이 어리석은 척하였다. 왕위 계승자였으나 왕이 되지 못한 제안대군은 정희대왕대비의 수렴청정이 끝나면 성종을 위협할 종친이었다. 안순대비는 아들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안순대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대왕대비마마, 숙의 윤씨는 열두 명의 후궁 중 가장 착하고 믿음이 가는 여인입니다.
-나도 숙의 윤 씨가 중전으로는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주상의 어머니가 깊이 생각할 문제이므로 좀 더 두고 봅시다.
소혜대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숙의 윤 씨는 착하기는 하나 질투가 심하다고 들었습니다.
-질투 없는 여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세 대비가 후궁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결정하도록 합시다.
소혜대비는 안순대비가 숙의 윤 씨 편을 드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으나 대왕대비 앞에서 내색할 수 없었다. 성종이 직접 통치하기 전까지는 언제든지 왕위가 위협받을 소지가 있었다. 조정은 성종 즉위 칠 년이 되면서 날마다 뜨거운 감자와 같았다. 왕이 스무 살이 되었으므로 정희대왕대비가 수렴청정을 끝내고 물러나야 한다는 의견이 젊은 사림파 대신 중에서 자주 거론되었다. 그해 이월에 접어들자 조정은 장작을 가득 집어넣은 가마솥의 물처럼 끓어올랐다.
정희대왕대비가 성종에게 물었다.
-주상, 이제 스물이 되었으니 스스로 대신들을 이끌고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대왕대비마마, 이제 짐은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세상을 통치하고도 남을 정신과 학문을 갈고닦았습니다. 대왕대비마마에게 성군의 정치를 배웠으므로 원상제를 폐지하고 수렴청정도 끝내야 할 것입니다.
한명회가 소리치며 아뢰었다.
-대왕대비마마, 아직 전하는 정치를 다 알지 못합니다. 대왕대비마마가 수렴청정을 더하시고 원상제도 유지되어야 합니다.
성종이 눈을 부라리고 한명회 이름을 불렀다.
-한명회 대감, 아직도 내가 어린 사위로 보입니까? 대감! 이제 내 나이가 스물입니다. 천하를 호령하고 나라를 평안하고 아무 걱정 없이 안정되게 다스릴 것입니다.
-전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한명회 대감, 대감도 이제 환갑이 넘지 않았습니까? 신숙주 대감은 몇 해 전에 죽었지요? 사람은 환갑이 넘으면 다시 어린아이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대왕대비마마도 환갑이십니다. 계유정난의 공신들은 이제 모두 물러나야 할 나이입니다.
-주상, 이 할미가 늙었으니 수렴청정을 그만두란 말이오?
-대왕대비마마, 내 뒤에 앉아 이 나라의 왕 노릇을 칠 년이나 하지 않았습니까? 여느 선왕들 못지않게 오래 조선의 왕으로 살았습니다. 이제 물러나도 섭섭할 것이 없을 듯합니다.
한명회가 화를 참지 못하고 말했다.
-전하, 대왕대비마마의 덕으로 이 나라가 태평성대를 누리는 것입니다.
-한명회 대감은 아직도 정치하고 싶습니까? 환갑이 넘어 무슨 총명한 정치적 소신이 있다고.
-전하, 전하가 그 자리에 앉아있는 것은 대왕대비마마와 훈구대신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맞지요. 맞다마다요. 짐을 이 자리에 앉히고 칠 년이나 이 나라를 떡 주무르듯 하지 않았습니까?
사림파의 유자광이 아뢰었다.
-전하, 이 나라는 이제 전하의 나라입니다. 수렴청정을 끝내고 원상제를 폐지하여 직접 통치하여야 합니다. 수렴청정을 주장하는 한명회 대감을 엄벌해야 합니다. 원상제를 유지하며 전하를 농간하려는 수작입니다.
정희대왕대비가 내려진 발을 손으로 걷으며 분노에 찬 목소리 소리쳤다.
-주상, 이제 이 할미는 수렴청정을 그만둘 것입니다. 대신 한명회 대감은 나라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니 너무 노여워 마세요.
대왕대비는 촥르륵 소리가 들리도록 발을 내리고 조정에서 걸어나갔다. 성종은 일어나 대왕대비를 붙잡지 않았다. 몇 번이나 대왕대비가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봤으나 성종은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조정에서는 훈구파 대신들의 “재고하시옵소서!” 사림파의 “한명회를 벌하시옵소서!” 소리가 동네 개들 짖듯 요란하게 들렸다. 정희대왕대비가 조정에서 사라지자 훈구파 대신들 목소리는 작아지고 사림파 대신들 목소리가 커지며 손가락질이 오갔다.
정인지 대감이 주상 앞으로 나서며 고하였다.
-전하, 신은 여든이나 되었나이다. 이제 나이가 많아 벼슬에서 물러날까 합니다.
-정인지 대감은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조정을 떠나서는 안 되오. 대감처럼 외국어에 능숙한 사람이 대신 중에는 없소이다.
정희대왕대비는 한 달이나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그해 여름 궁궐의 최고 어른으로 숙의 윤 씨를 중전으로 삼도록 결정했다. 윤 씨는 임신중이라 중전 책봉을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성종은 십여 명의 후궁들을 밤마다 찾아다니며 유희를 즐겨 후궁들은 서로 중전이 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특히 성종의 사랑받는 정소용과 엄숙의는 다른 후궁들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정소용은 임금이 찾아오면 찬물에 밥을 말아 술을 마시게 하였다. 성종은 열병이 심해 차가운 음식을 좋아했으며 특히 찬물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을 즐기고 술에 취해 정소용과 밤새 사랑을 나누었다. 엄숙의는 임금이 처소로 들면 곡소산 한약부터 먹였다. 성종은 지독한 치통에 시달렸는데 이가 아프면 엄숙의를 찾아 치통 치료약을 먹고 우물에 담가놓은 차가운 수박을 즐기며 엄숙의 사랑을 받았다. 차가운 수박은 성종의 설사를 유발해 기운을 뺐다. 성종은 많은 후궁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팔도의 이름난 기생을 불러 은밀한 연회를 즐겼다. 한 번은 이름난 기생 소춘풍을 불러 술을 마시며 하룻밤 함께 지내길 원했는데 봄바람처럼 웃으며 소춘풍이 말했다.
-전하의 성은을 입으면 영광이기는 하나 소첩은 다른 남자와 사랑을 나눌 수 없어 무섭습니다.
-남자고 여자고 끓어오르는 성욕은 참기 어려운 일이니 너의 뜻을 받아들이마. 대신 밤새 술을 마시며 시를 지어 보거라.
임금이 오늘 밤 나를 청하네
평생 독수공방은 죽는 것보다 못해
목숨걸고 그 청을 거절했네
임금이 술과 시로 밤을 새자 하니
그 임금 성군이로다
성종이 감탄하고 박장대소하며 소춘풍에게 답을 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주요순 야걸주라 하나
후원 정자에서 술 마시는 것을 즐긴다네
몸에 가득 고이는 정기는 소중하나 목숨보다 귀중할까
오늘 밤 소춘풍과 술잔을 기울이니 정을 못 풀어도 아쉽지 않네
숙의 윤씨는 중전으로 봉해져 제헌왕후가 되었다. 그리고 석 달 후에 왕자 이융(연산군)을 낳았다. 성종은 원자를 출산한 중전은 찾지 않고 후궁들의 처소만 밤마다 찾아들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중전은 왕궁 후원에 설치된 뽕잎을 올려놓는 채상단에서 왕비가 백성의 모범이 되기 위해 누에를 키우는 친잠례와 왕비가 누에를 직접 받는 침수례 의식을 거행하며 연회를 베풀고자 하였다. 그러나 대비전에서 친잠례에서 왕비의 존재감을 내보일 수 있는 연회를 생략하도록 강요했다. 제헌왕후는 왕비가 주선하는 친잠례에서 연회를 열지 않으면 성종의 관심을 받을 길이 없다고 여겨 수십 번 대비전을 찾아가 진연을 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였다.
-대왕대비마마, 친잠례는 예로부터 진연을 빠짐없이 거행하였습니다.
-중전, 출산한 지 넉 달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중전의 몸을 보호해야 합니다.
-대왕대비마마, 내 몸은 내가 잘 압니다. 충분히 회복되었고 연회를 베풀 만큼 건강합니다. 전하의 용안을 봬온 지 오래되었습니다. 진연을 열어야 전하가 교태전으로 들 것입니다.
-중전은 왕자를 생산할 귀중한 몸입니다.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는 주상을 가까이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리 주상이 보고 싶으면 침잠례에서 진연을 열도록 하세요. 다만 주상과 합궁은 아니 됩니다.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습니까?
-예 대왕대비마마, 그리하겠습니다.
화려한 친잠례가 열리고 제헌왕후의 바람대로 성종이 직접 나와 왕비를 칭찬하고 외면부 궁녀들 앞에서 연설하였다.
왕비가 누에를 기른 것처럼 온 나라 백성들이 누에를 길러 따뜻한 옷을 만들고 또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하라. 나라를 잘 다스리는 성군은 백성의 생활이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친잠례를 민간에 널리 알려 모두 누에를 치도록 권장하라.
친잠례가 끝나고 성종은 교태전으로 들고 제헌왕후는 달려드는 성종을 거부하지 못하였다. 워낙 정력이 강한 성종은 중전이 말할 틈도 없이 정기를 쏟았다. 중전은 성종을 꼭 껴안고 밤을 지새웠다. 대왕대비의 상궁들이 교태전의 소식을 샅샅이 대비전에 보고했다. 노발대발한 대비전의 세 대비는 중전을 벌할 계략을 세웠다. 정희대왕대비는 믿을 만한 상궁을 시켜 중전이 정소용과 엄숙의를 질투해 두 후궁을 음해하는 불순한 언문 문건이 발견되었다고 소문을 냈다. 그 문건의 출처를 중전의 친정으로 지목하고 중전의 어머니와 두 오라비 그리고 그들 부인을 심문토록 하였다. 하지만 심문 결과 누구도 언문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정희대왕대비는 그들을 고문하여 친정어머니와 중전이 문건을 만들었다고 조작해 성종에게 고하였다. 성종은 믿을 수 없어 직접 조사해 대비전의 음모라는 것을 알아내고도 중전을 위해 여종 삼월과 사비가 꾸민 사건이라고 공포하고 그대로 덮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정인지가 나서 사건을 끝까지 추궁해 낱낱이 사건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고 상소를 올려 난처한 처지가 된 성종은 대비전의 눈치를 살피며 중전 친정어머니의 작위를 취소하고 삼월과 사비는 교수형과 유배형을 내려 극형으로 다스리고 중전은 사림들의 반대로 별궁에서 근신토록 하였다. 정희대왕대비는 숙의 윤 씨가 참하고 마음이 순수해 지성을 갖춘 중전으로 손색이 없다고 칭찬하며 중전으로 삼은 지 칠 개월 만에 대비전에 맞서 친잠례 행사에서 연회를 열어 임금을 유혹해 교태전으로 끌어들였다고 언문사건을 조작해 질투심에 불타는 여인으로 백성들의 입에 불순하게 오르내리도록 만들고 친정을 하루아침에 박살 내버렸다.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은 끝났지만, 성종도 꼼짝 못 하게 만들어 궁궐의 최고 어른으로 권력의 칼을 휘둘렀다. 성종의 어머니 소혜대비는 아들이 다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제안대군의 어머니 안순대비는 불똥이 아들에게 튈까 정희대왕대비의 눈치를 보느라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그 와중에 성종은 궐 밖의 형 월산대군을 찾아가 진탕 술을 마시고 여색을 밝히고 다녀 성종의 이중적 성격에 후궁들은 늘 불안하였다. 하지만 정소용과 엄숙의는 여전히 성종의 사랑받으며 대비전을 쥐가 드나들 듯하였다.
중전 편에 서는 사람은 없었다. 아들 이융이 성종의 적장자로 성장하고 있었지만 조정의 대신들과 궁궐 여인들은 모두 중전에게 등을 돌리고 성종마저 마음이 떠나고 있었다. 대비전에서는 삼대비와 정소용, 엄숙의가 무슨 일을 꾸미는지 알 수 없었다. 매일 분주히 궁녀들이 움직였다. 성종도 수시로 대비전에 불려가 꾸중을 듣고 나오곤 하였다. 수렴청정이 정말 끝난 것인지 세 대비가 한꺼번에 수렴청정하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조정은 훈구파를 몰아내기 위해 들인 사림들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사사건건 “전하, 재고하시옵소서!” 소리만 높아 갔다. 왕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중전은 성종의 폭행을 지켜보면서도 꾹 참고 생일날만 기다렸다. 이 년여 세월 동안 성종은 중전의 별궁을 찾지 않았으나 생일날은 성종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생일날 아침에 궁녀가 성종이 보낸 생일 선물로 옷 한 벌을 가져왔다. 중전은 저녁에는 몸소 별궁으로 찾아올 것으로 생각하고 밤늦도록 기다렸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고 성종이 후궁의 처소로 들었다는 소식을 궁녀가 전했다. 화가 폭발한 중전은 성종이 든 궁녀의 처소로 찾아가 문을 확 잡아당겼다. 성종은 후궁을 껴안고 있다 놀라 중전의 뺨을 후려쳤다. 중전도 피하지 않고 성종의 얼굴로 손이 가 중전의 손톱에 긁힌 얼굴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손바닥으로 상처를 만져보고 피를 확인한 성종은 크게 놀라 내시들에게 둘러싸여 돌아갔다. 화가 치민 성종이 한밤중에 승지를 불러 교지를 작성하게 하였다.
중전 제헌왕후는 성격이 포악하여 삼대비에게 공손하지 못하며 중전으로서 덕을 잃어 왕실의 종사를 받들 여인이 되지 못한다.
조정에서 교지를 발표하고 대신들 앞에서 폐서인 결정을 내렸다. 조정 대신들은 갑자기 일어난 중전의 폐비 결정을 재고해달라고 외치며 중전을 폐비하겠다는 이유를 밝혀 달라고 간청했다. 성종은 얼굴의 손톱자국을 보이며 중전은 원래 흉악해 질투가 심하고 행실이 폭력적이라 하였다. 훈구파들은 임금의 용안에 상처를 내는 것은 임금을 살해하려는 역적의 짓이라고 떠들며 중전의 폐비를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성종의 편을 들었다. 하지만 젊은 사림들은 부부간의 싸움에서는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중전은 원래 성품이 순수한 여인이라며 중전의 폐비를 반대했다. 조용하던 궁궐에서 하루아침에 중전의 폐비가 결정되자 성균관 유생들이 중전의 폐비를 반대하고 나섰다. 대비전에서 삼대비가 중전의 폐비 소식을 듣고 조정으로 달려와 성종의 얼굴을 보고 흥분해 어쩔 줄을 몰랐다. 인수대비(소혜왕후)가 중전을 향해 치마를 두 손으로 움켜쥐고 허리를 숙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중전이 정녕 용안에 손톱자국을 냈단 말이오.
-대비마마, 황송하옵니다.
안순대비마저 중전을 보고 성종에게 말했다.
-주상, 중전을 폐비하세요. 용안에 상처를 낸 여인은 절대 용서할 수 없습니다.
정희대왕대비는 분을 참지 못하고 당장 폐비하라고 난리를 치고, 인수대비는 길길이 날뛰며 조정의 대신들에게 당장 패악한 중전을 폐비하라고 소리질렀다. 하지만 사림파의 반대는 계속되었다. 성종은 삼대비에게 힘을 얻어 중전의 폐비를 반대하는 젊은 대신들을 몽땅 의금부에 감금하고 성균관 유생들은 잡아다 감옥에 처넣었다. 성종과 삼대비는 한통속이 돼 중전을 폐비한 다음 사가로 내몰았다. 세 살의 이융은 어머니가 궁에서 내쫓기는 것을 보며 울음을 터트리고 유모 등에 업혀 어머니를 부르며 손을 뻗어 작은 손가락을 꼬물거렸지만, 왕비는 눈물을 흘리며 의금부 병사들에게 궁 밖으로 끌려나갔다. 유모는 통곡도 못 하고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후궁들이 궁궐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폐서인이 되어 친정으로 쫓겨가는 중전을 보고 키득거리며 웃고 난리였다. 궁녀들은 중전이 궁을 나가는 것을 보며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후궁들이 분주히 대비전으로 달려가 폐비 윤 씨가 끌려가는 것을 생생히 전달했다. 인수대비는 치를 떨며 중전이 아들의 용안을 손톱으로 할퀴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후궁들은 온몸으로 인수대비의 말에 호응하며 중전을 가만두면 안 된다고 떠들었다. 정희대왕대비는 폐비 윤씨의 사후 처리를 위해 인수대비, 안순대비와 의논하였다.
-인수대비, 폐비 윤 씨를 어찌하면 좋겠소?
-대왕대비마마, 중전을 살려두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반드시 주상에게 큰 화가 될 것입니다.
-안순대비는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중전이 해서는 안 될 질투심에서 용안에 상처를 낸 큰 사건입니다. 남편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할 여자가 대들었다는 것은 대역죄입니다. 엄히 다스려야 합니다.
대왕대비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죄인입니다. 임신해 서둘러 중전에 앉힌 것이 잘못입니다. 어느 여인이나 질투는 있으나 폐비 윤 씨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이융이 왕위에 오른다면 이 나라를 망칠 여자이므로 사약을 내려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왕대비의 말에 안순대비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대비전에 모인 후궁들이 벌벌 떨며 각자의 처소로 돌아가며 혀를 찼다. 세 마녀가 중전을 죽이려고 음모하는 것 같았다. 누구든 언제든 삼대비의 먹잇감이 될 수 있었다. 아들의 난잡한 바람기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며느리의 투기는 용서할 수 없다는 삼대비의 속마음이 섬뜩했다.
인수대비는 폐비 윤 씨를 사가로 내쫓고 깊은 학식으로 여성들을 위한 교육서 편찬을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은 여성 지식인으로 학문의 조예가 깊었다. 어려서는 불교에 심취하여 불교 철학을 공부하고 성종이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장려하자 성리학을 공부했다. 유교 이념의 기본인 여자는 남편을 잘 섬기고 자식을 잘 교육시켜야 한다는 여성의 유교적 덕목에 충실하였다. 그런 가운데 폐비 윤 씨의 행동은 인수대비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왕실의 아녀자들과 궁녀들을 교육하기 위해서는 여성 교육의 지침서가 필요하다고 여겨 ‘내훈’을 정리했다. 소학, 열녀, 명감 등 여성을 위한 책들이 있으나 내용이 복잡하고 권수가 많아 중요한 내용을 뽑아 일곱 장으로 만들었다.
내훈에는 부부의 도리, 가족의 화목, 여성의 덕목, 여성의 유교적 도리를 기록했다. 그중에는 며느리가 잘못하면 가르칠 것이고, 가르쳐도 반성하지 않으면 때릴 것이고, 때려도 고치지 않으면 내쫓아야 한다고 적었다.
궁궐의 대비 셋이 모여 조선에서 못할 일은 없었다. 불시에 윤 씨의 방을 수색해 성종의 총애를 받는 후궁을 저주하는 주술행위를 하며 비상을 간직하고 남편 성종이 많은 후궁을 거느리자 질투심에 비상을 바른 곶감으로 임금과 후궁을 시해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발설하여 성종이 중전에게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성종이 왕비를 미워하고 증오하게 만들어 삼대비의 뜻대로 중전을 폐비해 사가로 내몰도록 거침없이 행동했다.
훈구파들은 중전을 폐비시키는 일에 성공하자 다시 기세가 올랐다. 한명회는 한강 건너 조선의 최고 명승지에 압구정 정자를 화려하게 짓고 매일 기생들을 불러 훈구파 대신들과 연회를 베풀며 호화로운 유희를 즐겼다. 벼슬에서 물러나 갈매기와 노닐겠다는 압구정는 중국 사신에게까지 소문이나 압구정에서 한번 놀아보길 성종에게 간청하였다. 성종은 장인어른인 한명회를 조정으로 불러 사신의 뜻을 전하였다.
-한명회 대감, 중국 사신이 압구정에서 연회를 베풀어주길 여러 번 청하니 거절할 수가 없습니다.
-전하, 압구정 정자가 비좁고 날이 뜨거우니 사신을 맞이할 연회를 열려면 왕의 차일을 빌려주세요.
-대감, 조금 좁으면 어떻습니까, 사신이 압구정 정자에서 술 한잔하며 한강 경치나 구경하겠다는데….
-전하, 정 그러시다면 압구정 정자 옆에 왕실의 천막을 치게 하세요.
-대감, 압구정에서 사신을 위한 연회를 베푸는 것이 불편하다면 왕실의 정자인 한강진나루터 제천정에서 사신을 맞이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하, 사신은 압구정에서 놀기를 원합니다. 왕의 천막만 설치해주면 될 것입니다.
-한명회 대감, 대감이 왕의 차일을 쓰고자 하는 의도 무엇입니까? 대감의 딸 공혜왕후는 이미 죽은 지 오래입니다. 아직도 장인과 사위의 관계로 생각을 하십니까? 짐을 가볍게 여기지 마세요.
-전하, 신은 제천정 연회에 참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정희대왕대비가 버럭 같이 화를 내며 말했다.
-한명회 대감, 대감은 왕 노릇이 그렇게 해보고 싶습니까, 설마 이 나라 왕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대감이 왕의 천막을 빌려 달라는 것이 역적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대왕대비마마,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성종은 늙은 한명회를 단숨에 휘어잡는 대왕대비의 호통에 속이 시원했다.
-여봐라!
-네, 전하!
-제천정은 중국까지 소문난 아름다운 정자이고 희우정은 세종대왕이 가뭄에 비를 만난 신령스러운 정자이니 두 정자만 남기고 한강의 모든 정자를 철거하라.
성종은 중국 사신을 위해 제천정에서 연회를 베풀었다. 하지만 한명회는 포기하지 않고 사신을 압구정으로 초대하여 다시 한번 연회를 베풀었다. 왕권에 도전한 불순한 한명회를 벌하라는 대신들의 상소가 빗발쳤다. 성종은 한명회를 국문토록 어명을 내렸다. 정희대왕대비가 탄핵을 찬성해 압구정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하였던 한명회는 압구정 때문에 사림파에 의해 탄핵되었다. 정희대왕대비는 훈구파의 거두 한명회가 물러나자 자신의 시대도 끝나가고 있음을 깨닫고 서글퍼하였다. 인수대비는 폐비 윤 씨의 문제를 들추어 궁인들을 사가로 은밀히 보내 감시토록 하였다. 대비전에서 폐비의 처리 문제가 다시 거론되었다.
인수대비가 말문을 열었다.
-대왕대비마마, 폐비 윤 씨를 살려두실 겁니까?
-원자의 친모로 세자 책봉이 거론되는 마당에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래서 드리는 말입니다. 원자를 세자로 책봉하면 대신들이 세자의 친모인 폐비 윤 씨를 다시 중전으로 복위시키라고 들고 일어날 것입니다.
안순대비가 거들었다.
-폐비 윤 씨가 중전으로 복위하면 우리 삼대비를 가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대비가 한숨을 길게 내 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도 이제 늙어서 주상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폐비 윤 씨가 중전으로 복위한다면 중전을 말릴 사람이 없습니다. 아들이 세자로 책봉된다면 그 복수심이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대왕대비마마, 그렇게 된다면 남편은 임금이오. 아들은 세자이니 세상천지에 무섭고 두려울 것이 뭐 있겠습니까?
안순대비가 걱정스런 말투로 말했다.
-중전이 세자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면 세자가 왕위에 오르면 반드시 우리에게 복수할 것입니다. 폐비사건은 세자가 알지 못하도록 사전에 막아야 합니다.
-안순대비, 그 방법이 무엇이오?
-폐비 윤 씨에게 주상이 사약을 내리도록 하여야 합니다.
대왕대비가 손으로 머리를 짚으며 한탄했다.
-내 손으로 손자며느리를 죽여야 한단 말이오. 그럼 누구를 중전으로 앉힐 생각입니까?
-대왕대비마마, 파평 윤씨 윤호의 딸을 중전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가문 좋은 중전이 들어오면 걱정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정소용과 엄숙의는 하찮은 친정의 처지를 생각하며 폐비의 윤 씨의 억울함도 몰락한 양반가의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탓이라 여겼다. 정희대왕대비가 아들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서 한명회와 두 번이나 사돈 관계를 맺었고 인수대비도 성종의 안위를 위해 든든한 파평 윤씨 딸을 중전으로 선택했다. 대왕대비는 정소용과 엄숙의를 폐비의 사가로 보내 윤 씨의 생활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였다. 정소용과 엄숙의는 폐비 윤 씨 사가를 다녀와 대비전에 고하였다.
정소용이 본 대로 말했다.
-폐비는 집밖 출입을 하지 않고 조용히 책을 읽으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인수대비가 화를 내며 되물었다.
-정말 사가에만 머물고 있더란 말이냐?
-예 대비마마,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여 정성껏 끼니도 챙겨주었습니다.
대왕대비가 말했다.
-보고 온 대로 주상에게 말하여서는 안 될 일이다. 주상도 폐비가 몹시 그리울 것이다.
인수대비가 정소용과 엄숙의를 노려보며 말했다.
-주상에게는 폐비가 깊은 원한을 품고 있으며 사가에서 주상과 대왕대비마마의 인형을 만들어놓고 저주를 퍼붓는 주술행위를 하고 있다고 아뢰어야 한다. 알아듣겠느냐?
정소용과 엄숙의를 앞세우고 삼대비가 성종에게 갔다.
대왕대비가 주상에게 말했다.
-주상, 폐비 윤 씨의 생활이 궁금하여 사가로 사람을 보냈는데 폐비가 반성은커녕 주상을 저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만두어서는 안 될 성싶습니다.
인수대비가 흥분해 말했다.
-주상, 폐비가 주상과 우리 삼대비 그리고 정소용과 엄숙의 인형을 만들어놓고 저주를 내리는 주술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의 종묘사직과 백성들을 위해서라도 폐비를 살려두어서는 안 됩니다.
-어마마마, 폐비가 되었다고 하나 중전을 죽이라 하십니까?
-폐비가 살아있으면 주상에게 큰 화를 미칠 것입니다.
-어마마마, 원자는 아직 어립니다. 곧 세자 책봉하고 세자도 어머니와 함께 살도록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상, 폐비를 생각하고 원자를 생각하는 마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 어미의 마음도 헤아려야 할 것입니다. 폐비의 원한이 얼마나 깊으면 사가에서 우리 인형을 만들어놓고 저주를 퍼붓고 있겠습니까?
안순대비가 말하였다.
-주상, 폐비가 다시 중전으로 돌아온다면 우리 삼대비는 물론 후궁들도 무사하지 못할 것입니다. 새로운 중전으로 파평 윤씨를 인수대비가 점찍어 두고 있습니다. 새로운 중전을 위해서라도 폐비에게 사약을 내려야 새 중전도 세자를 친아들처럼 보살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성종은 조정 대신을 모아 폐비 윤 씨의 처분을 논의하였다. 세자의 친모이므로 죽여서는 안 된다고 대신들이 반대하였으나 성종은 훗날 세자가 왕위에 오르고 그 사실을 알게 되면 큰 사달이 날 것을 염려하여 결국 폐비 윤 씨에게 사약을 내려 사사하였다. 폐비가 제거되자 정희대왕대비는 빠르게 움직였다. 파평 윤 씨를 중전으로 앉히고 세자의 책봉을 서둘러 진행했다. 성종은 폐비의 아들 이융을 세자로 책봉하고 가엾게 여겨 사랑을 많이 주었으나 세자가 궁궐의 사슴을 발로 걷어차는 것을 보고 포악한 성질의 세자 앞날을 걱정하였다.
대왕대비는 손자며느리를 죽인 죄책감에 포천 봉산사로 행차했다. 세조대왕의 광릉은 온갖 산새 지저귀는 소리와 나뭇잎에 바람 이는 소리가 고요하게 들려 세상 평화로웠다. 피비린내 나는 궁궐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땅속에 묻힌 세조대왕이 무슨 생각이 있을까마는 남편 옆에 어서 묻히고 싶었다. 봉선사 주지 스님이 대왕대비마마를 맞이하며 향기로운 차 한잔을 내왔다.
-스님, 풀리지 않는 의심이 있습니다.
-하문하시옵소서.
-포천에 세조대왕의 능을 쓰고 광릉이라 이름을 지으면 다섯 왕이 나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대왕대비마마 그리 말하였습니다. 이미 다섯 왕이 나셨습니다.
-어째서요? 세조대왕, 예종대왕, 성종대왕 세 명의 왕은 나왔습니다.
-맏아들 의경세자가 덕종대왕으로 추존되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넷뿐입니다.
-다섯 번째 왕은 바로 정희대왕대비마마입니다.
-나를 어찌 왕이라 하십니까?
-대왕대비마마로 수렴청정을 예종, 성종 두 왕을 대신에 팔 년이나 하시지 않았습니까? 어떤 왕보다 성군의 왕이셨습니다.
대왕대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사내로 태어났다면 한 번도 못할 왕을 여자로 태어나 다섯 왕을 만들었습니다.
-대왕대비마마가 광릉에 묻히면 조선은 오랜 세월 왕위가 이어질 것입니다.
-세조대왕 곁에 묻혀야지요.
-아닙니다. 대왕대비마마 광릉은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고 노는 형상이라 대비마마도 세조대왕과 동등한 조선의 왕이십니다. 대왕대미마마 능도 왕릉으로 따로 써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세조대왕 능 우측 언덕에 동원이강릉 구조로 쓰고 정자각은 가운데 하나만 세우면 됩니다.
정희대왕대비는 고개를 수없이 끄덕이고 봉선사 법당에서 나와 경내를 걸으며 연분홍으로 피어난 상사화를 보며 뒤따르는 스님에게 물었다.
-스님, 그런데 말입니다. 세자도 왕이 될 것 아닙니까?
-대왕대비마마, 왕이 되기는 하나 훗날 연산군으로 불리게 될 것입니다.
정희대왕대비는 붉게 피어난 능소화를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포천 백운계곡에서 나타난 백호 다섯 마리가 다섯 왕이었군요. 세조대왕이 활로 쏴 죽인 한 마리는 덕종이군요.
-네. 대왕대비마마….
정희대왕대비가 봉선시를 떠나려고 가마에 올라 물었다.
-스님, 나는 극락은 가지 못하겠지요?
-나무관세음보살.
정희대왕대비는 한양으로 돌아와 인수대비와 함께 온양온천으로 건강을 위해 온천욕을 떠났다. 그리고 온양에서 예순다섯의 생을 마감하고 광릉에 세조대왕과 동등하게 대왕대비로 묻혔다.
-끝-
*이 소설은 팩션(faction)로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더하여 작가가 재구성하였다.
송주성 소설가
2014년 금샘문학상 대상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2018 장편소설 <직지 대모>
2021 장편소설 <국궁>
2023 장편소설 <후쿠시마 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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