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이서진 소설가의 장편소설로 월북무용가 유나타샤의 삶을 추적하는 과정을 통해 오랜 세월 동안 세 집안에서 대를 이어 벌어진 충격적인 일들을 허상만의 손자 기준과 그의 아내 선영의 교차 시점을 통해 그리고 있다. 텔레비전에서 방영된 탈춤 공연을 보면서 ‘검고 우묵하게 뚫린 눈에 근육결이라곤 전혀 없는 표정’의 탈 형상에 눈길이 머물러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작가는 실감 나는 인물 묘사와 생생한 역사적 현장감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장편소설 『밤의 그늘』은 1932년 늦가을 함경도 원산 내안이라는 마을에 찾아든 혼성 사당패의 여인이 낳은 딸로 인해 얽힌 강근언, 허상만, 진중섭 세 집안의 사연이 시종일관 긴장감 있게 전개된다. 작가는 담백하면서도 의표를 찌르는 인물 심리를 통해 이야기 행간행간 역사의 엄중한 시간이 묻어나오게 하는가 싶다가도, 피비린내 진동하는 인간 욕망의 속내를 거침없이 드러내기도 하고, 가족 그리고 핏줄의 비의를 감정적으로 교차시키고 있다. 월북무용가 유나타샤, 그녀는 본명이 허진애로 1933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출생한 후 재학 중에 무용에 재능을 보였으나 6·25전쟁으로 연인인 진이상을 따라 월북한 뒤 소련 모스크바 대학 유학을 다녀온 후 북한의 대표적인 무용가가 되어 풍자적 요소가 강하고 역동적인 시선 표현이 독창적인 무용수로 활약한 여인이다. 남쪽의 세 집안은 그녀로 인한 긴긴 애증의 세월을 살아야 하는데, 작가는 그 시간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인물들의 비극과 탈주를 차가움으로 번득이게 한다. 그 결과 스스로 목을 멘 허재표와 평생 핏줄의 고리에 시달리는 그의 동생 진표의 형상은 삶의 의미에 대한 부정이면서도 동시에 의미의 부재라는 비극성으로 오랫동안 각인되어 머릿속에 맴돈다. 비극적인 역사의 시간을 뚫고 들어와 인물들의 정지되거나 고여있는 시간을 연속적으로 이어가는 플롯을 통해 삶과 운명 전체를 조망하는 작가의 시선은 우리 마음에 가라앉아 있던 어떤 감정덩어리를 격렬하게 휘저어 놓는다.
교수이면서도 두 여자와 버젓하게 불륜을 저지르는 허재표의 아들 기준의 실상을 보며 그의 아내 선영이 내뱉는 ‘사진 속 무희의 몸짓은 사진이라는 틀 속에 갇혀 한순간 멈춰버렸다. 그때를 살았던 사람들이 펼쳐냈던 상황들도 봉인되며 같이 묶여버렸다. 하지만 멈춰버린 시간들은 어느 날 우연히 스며든 미미한 빛 속을 간신히 뚫고 나와 미역한 기척을 냈다. 기준의 지금 시간들도 오랜 세월 격세유전을 거쳐 반복된, 어둠 속 뒤에 어린 또 다른 그늘의 흔적일지 모른다’는 전언은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이다.
이서진 작가의 장편소설 『밤의 그늘』은 독자들에게 단순한 역사나 인간 비극의 차원을 넘어 더 근본적인 삶의 차원과 대응하게 만든다. 가족이나 핏줄이 인간 운명 차원에서 작동하는 근원적인 힘, 즉 역사라는 인식의 차원이 아니라 인물들의 운명이라는 존재론적인 차원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한다. 그 때문에 ㅊ소설의 이야기가 지닌 원초적인 비극성을 극대화시켜 분노와 폭로보다는 성찰과 관조의 지혜를 보여주는데, 이것은 이서진 작가의 운명에 대한 차가운 통찰의 힘이 지닌 산물이다.
(책 소개 중)
저자소개
강원도 고성 거진에서 태어났다. 2006년 문학마당신인상에 「해당화 피고 지는」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진주가을문예에 중편소설 「동행」이 당선되었으며, 중편소설 「빨간눈이새」로 김만중문학상과 중편소설 「그림자정원」으로 원주문학상을 수상했다. 지은 책으로 달의 뒤편에 드리운 시간들, 낯선 틈, 당신의 허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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