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수렴하는 불안의 강렬한 상징!
『이상한 행진』으로 독자들에게 우리 삶의 불가사의하고 독특한 세계를 보여 준 이성준 작가의 신작으로 어머니의 상을 당하고,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고, 결혼한 친구와의 동업을 고민하고, 형의 압박을 견뎌야 하는 신산한 삶을 견디기 위해 오른 산에서 사고를 당해 죽어가는 광호의 내면을 치열하게 그리고 있다. 소설은 광호의 심리묘사를 위해 우주 탐사선, 실연, 특성 없는 관계 등의 소재에 반응하는 그의 의식의 흐름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갈등을 고독 속에서 이해하고, 그렇게 내면에 머물러야만 평화를 얻는다고 믿는 광호의 비극적인 운명을 묘사하고 있다.
광호는 다감하고 너그러워서 따뜻하게 보이지만 질병 같은 감수성이 늘 그를 괴롭히고, 허무와 공포에 침잠하려는 잠재의식이 결국 삶이라고 생각하는 불행한 인간이다. 그렇다고 불행에 함몰할 만큼 나약한 인간은 아니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끊임없이 불안에 시달린다. 그 불안은 결국 죽음으로 치 닿는다. 죽음으로 수렴하는 불안이야말로 그것이 최종적으로 맞이하는 상징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그런 상징을 위한 원형, 신비, 강박적 상황의 광호 심리묘사에 집중한 결과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의식, 암시적 형상이 유기체처럼 살아 움직이고 있다.
이 소설은 일상어의 투박한 질감, 실감 나는 장면, 아름다운 미문,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박진감 넘치는 서술 등 일반적으로 독자들이 소설에서 기대하는 사실주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소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즉, 다르게 읽힐 수 있고, 다르게 느껴질 수 있고, 또 다르게 기억될 수 있는, 그래서 다르게 존재할 수 있는 소설의 존재 가능성에 관한 이야기기도 하다. 배포 있는 소설가라면 이 순수한 상징의 형식으로서 가능성에 매혹되어 온 존재를 주어버리는데 이성준 작가의 이 소설이 그렇다.
『2월의 외로움』 소설 속에는 표면에 가려진 또다른 소설이 있다. 그 표면에 가려져 있는 것이 소설을 쓰게 하는 모종의 불가해한 힘으로 작용한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전형적으로 읽다 보면 세상에 던져진 광호의 모습에만 초점을 맞출 수도 있다. 하지만 광호는 상징이다. 『2월의 외로움』 심층을 지배하는 것은 이성준 작가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하는 힘, 광호가 환청과 환각을 보게 하는 힘, 바로 그의 어머니이다. 이 여인이 소설에 숨어있는 또다른 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소설의 심층에서 줄곧 낮고 긴소리로 존재하는 광호의 어머니는 화장장, 녹색 철 대문, 붉은 경대, 나룻배 등의 가슴 저미는 삽화로 나타나는데, 이 소설의 기원으로서, 혹은 원형으로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성준 작가의 소설 『2월의 외로움』은 사실주의의 언어로 사물을 직접적으로 지칭하는 이야기 소설을 벗어나 다성적인 울림으로, 혹은 대위법 같은 형식으로 존재하는 소설이다. 깊은 심층을 가진 이 소설의 언어들은 악보가 되고, 그 악보의 어울림을 통해 상징의 해석을 기다리는 기호로 존재한다. 독자들은 이 기호를 풀어가는 과정을 통해 소설의 읽기의 진정한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961년 서울 출생.
1993년 월간 「문학사상」에 단편 「공범」으로 등단.
2000년 창작집 「이상한 행진」발표.
현재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계간 「문학저널」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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