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가

<함성> 김선주 장편소설

소설가 송주성 2023. 8. 16. 11:50

 

이 소설은

 

한국전쟁 한복판에서 청춘과 정열을 다 바친 주인공 천인화의 기억을 변주해가면서 살아온 시간을 담아낸 일종의 전쟁소설이다. 전쟁의 구체적인 상황과 전후의 섬세한 기억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작가의 치밀한 문헌 섭렵과 사실 고증 그리고 독창적인 시선과 문장으로 그려낸 전쟁소설의 백미로 읽히면서, 새로운 상황과 기억을 다룬 분단문학의 한 좌표로 우뚝 선 작품이다.

 

정연하고 꼼꼼한 실증성을 바탕으로 한 전쟁소설

 

『함성』은 총 17장으로 구성된 장편소설로 첫 장 ‘침묵의 바다’에서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어디론가 몸을 숨겨야 할 것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하는 느낌이 연쇄적으로 펼쳐지는 긴박한 전쟁의 정황이 천인화의 꿈속에서 재현된다. 수십 년 동안 이런 악몽 속에서 지내는 천인화는 한국전쟁에서 유격대원으로 활약하던 지난 시간에 대한 자긍과 기억으로 한세월을 건너온 인물이다. 꿈에서 깨어난 천인화는 바다를 향해 걸음을 옮기면서도 머릿속에는 온통 바다를 떠도는 동료들의 혼령뿐이다. 안개비만 내리면 그런 트라우마는 증폭되어 천인화는 피울음을 쏟아내는 수많은 사람의 ‘함성’에 시달린다. 소설의 제목 ‘함성’은 그렇게 죽은 이들의 피울음과 함께 독자들 곁으로 다가온다. 그리운 동료들의 얼굴이 고개를 들고 다가오는 바다에서 천인화는 자신이 ‘왕년에 유격대장을 하던 구월산 호랑이 천 대위’임을 새삼 떠올린다. 2장 ‘갈등과 혼란의 세월’부터 소설은 전쟁 당시로 돌아가 천인화의 전쟁 체험이 소상하게 서술되고 있다. 정연하고 꼼꼼한 실증성을 바탕으로 전쟁 직후부터 휴전 때까지의 흐름을 날짜 단위로 따라가면서 인물들의 행동과 상호관계를 긴박하게 그린다.

원래 육군정보부 소속 첩보공작 대원이었던 천인화는 특수 임무를 띠고 장연과 해주 등 황해도를 무대로 활약했는데, 단신으로 평양에 침투하여 임무를 수행하다가 전쟁이 나자 부모님이 계신 사리원으로 가지 못하고 구월산으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다. 피난민 대열 속에서 여동생 설화를 만나 부모님과 막내동생이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천인화는 젊은이들을 모아 ‘구월산 유격부대’를 만들고 대위가 되어 반공의 보루역할을 수행한다. 유격대원 중에는 전통 무예를 하는 대원들이 있었는데 천인화는 그들로 하여금 대원들에게 무예를 숙달하게끔 한다. 특별히 ‘전통 무예’를 중요한 싸움의 형식으로 택한 것은 우리의 순연한 맥락으로부터 가장 강하고 아름다운 것을 추출하고 보편화하려는 작가의 의지 때문일 것이다. 이 무예를 배우면서 구월산 유격대들이 내지른 ‘함성’이 시간의 한 축을 지탱하면서 서사는 이어진다.

 

저자소개

이화여대 불문학과 졸업, 1985년 단편소설 「갈증」으로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 창작집으로 󰡔유리벽 저쪽󰡕, 장편소설 󰡔파라도󰡕, 󰡔불꽃나무전3권󰡕, 번역집 󰡔paradise Island and Coughing󰡕외에 다수. 윤동주문학상, 민족문학상, 최우수예술인 작가상, 이화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한국문학백년상, 펜문학상, 한국예총예술인상 등 수상. (사)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사)한국문인협회 소설분과 회장, 이화여대 동창문인회 회장, 국제펜 한국본부 주간 등 역임, 현재 (사)한국소설가협회 부이사장, 한국문화콘텐츠21 대표, 국제펜한국본부 국제교류위원장, 세계한글작가대회 조직위원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