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가

임재희 장편소설 <세 개의 빛>

소설가 송주성 2023. 10. 11. 11:26

개인적·사회적 비극 이후에도 이어지는 삶,

비극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추는 작지만 따스한 불빛

제11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제주4.3평화문학상은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작품들을 수상작으로 선정해왔다. 2023년 장편소설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저녁 빛으로》는 2007년에 벌어진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배경으로 디아스포라와 죄책감의 문제를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심사위원으로부터 “집요하게 파고들어 드러낸 폭력과 공포의 무늬가 분명하고, 디아스포라의 질곡을 깊이 경험한 자만이 표현할 수 있는 생생한 언어로 작가의 의도를 전달하고 있”는 소설이라는 평을 받은 이 소설은, 2007년 4월 버지니아 공대에서 울려 퍼진 총성이 영원히 바꿔놓은 두 사람의 이야기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입양된 노아 해리슨과 미국으로 이민을 온 미셸 은영 송은 이방인으로서의 경험을 공유한 친밀하고 다정한 연인 관계이다. 그러나 은영의 연인, 노아는 TV를 통해 버지니아공대 총기난사사건을 접한 이후 우울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만다. 은영은 연인을 잃은 슬픔 뿐만 아니라 가해자와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두려움과 알 수 없는 반발심,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의 이민자로서의 삶에 공감하는 마음과 거기서 오는 죄책감까지 다양한 감정에 휩싸이며 혼란스러워한다. 혼란을 추스르기 위해 상담사의 권고에 따라 노아와의 일을 기록하던 은영은 노아에게 자신이 모르던 또 다른 이름들이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을 시작한다.

소설은 사회적, 개인적 비극 이후 남겨진 주인공이 겪는 감정의 혼란과 애도의 과정을 천천히 따라간다. ‘이제야 뭔가 다 본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내 등 뒤에 남아 있는 것도 같’다는 문장이 암시하듯, 소설은 모든 일이 깔끔하게 해결되고 슬픔에서 온전히 벗어난 상황을 그리기 위해 허겁지겁 내달리지 않는다. 인간이 비극 속에서 느끼게 되는 양가적이고 모난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슬픔의 시기를 건너가고 있는 존재를 천천히 그리고 치열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시간을 들여 들여다본 어둠 속에서 작지만 분명한 온기를 가진 빛을 발견해낸다. 소설은 수많은 비극에 둘러싸인 우리에게도 그 빛을 건넨다. 마침내 ‘문학에서 추구하고 성취된 평화’를 독자의 손으로 넘겨주는 것이다.

 

저자 임재희

 

소설을 쓰며 번역 일을 한다. 둘 사이가 멀지 않은 일이다. 하와이주립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에서 소설을 배웠다. 2013년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당신의 파라다이스》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비늘》, 소설집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폴의 하루》가 있으며, 《라이프 리스트》 《블라인드 라이터》 《예루살렘 해변》 《모호한 상실》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2023년 제11회 4·3평화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