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겨울
권두칼럼
허문태┃트롯의 새 지평을 기대한다 18
특집
박 일┃트롯을 들으며 24
정미소┃그 이름은 남자의 인생 28
이외현┃트롯의 시각으로 바라 본 시 33
김영진┃트롯을 바라보는 시 38
이성필┃시보다 멋진 트롯 43
오늘의 시인
안성덕┃신작/쏠린다는 말 외 2편 52
근작/달달한 쓴맛 외 1편
이병초┃순 우리말을 알짜로 녹여낸 소리맵시의 시학
─안성덕 시인의 시 58
근작조명
박달하┃사립문을 열다 외 4편 70
정치산┃오래된 그리움을 기다림으로 치유하는
─박달하 시를 읽고 75
신작특선
오정자┃종사宗嗣 외 4편 86
윤인자┃부활의 꿈 외 4편 93
신작시
백우선┃의자 둘 외 1편 100
권정남┃침묵은 변이變異를 꿈꾼다 외 1편 102
김왕노┃미지의 꽃 외 1편 105
이애진┃딸 외 1편 108
김인숙┃길든다는 것 외 1편 110
정서영┃연기 외 1편 112
우남정┃풍장風葬- 철새들이 돌아오면 외 1편 114
강외숙┃평사리 외 1편 116
천선자┃몰카 외 1편 118
권 순┃이탈리아 가정식 외 1편 120
정무현┃존재 외 1편 124
김설희┃허공을 짓다 외 1편 126
최진자┃흰두루미 외 1편 130
구수영┃살찐 고양이 외 1편 132
배아라┃할머니와 부채 외 1편 134
단편소설
송주성┃독도 경비대 134
아라산문
박하리┃각자도생各自圖生 153
계간평
안성덕┃말이 되지 못하는 소리 157
아라세계
신연수┃인천 최장수 문학동인회
‘내항內港’ 탄생 이야기 165
―경기시문학동인회에서 율리, 표류를 거쳐 내항까지
아라탐방
우중화┃정읍, 무성서원을 찾다 ─ 유네스코 세계유산 182
포토포엠 | 고창수 작 012
독도 경비대
송주성
도마루는 편지를 받고 기쁨이 넘쳐 몸이 붕붕 떠오르는 거 같았다. 동도의 천장굴에서 바람을 타며 비행하는 갈매기가 부럽지 않고 동도에서 서도까지 날아갈 기분이었다.
의경으로 자원입대해 독도경비대에 배치되면서 정리아는 말없이 그를 떠났다. 그런 그녀가 독도로 면회를 오겠다는 믿기지 않은 소식이었다.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졸병들 보초근무까지 대신 서주며 독도의 아름다운 밤을 즐겼다. 우주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별들이 바다에 떨어졌다. 마루는 그 별들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그녀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이틀간의 행복한 기다림이 꿈처럼 지나갔다. 그녀가 오는 날 아침은 구름 한 점 없이 바다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완벽한 오메가 일출의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졌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운항하는 여객선이 결항할 일은 없을 거 같아 안도했다. 그녀를 만나면 굳이 왜 떠났고 왜 다시 돌아왔는지 묻지 않고 다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만 하고 싶었다.
동해의 푸른 물결에 햇빛이 반사돼 눈을 똑바로 뜨기 어려웠다. 울릉도에서 7시20분 배를 타면 9시에는 독도에 도착한다. 경비대의 아침식사가 끝나기 무섭게 그는 독도선착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선착장에서 바라본 동해는 하얀 파도꽃이 보이기 시작하고 잔잔하던 바다에 바람이 불면서 나비가 날 듯 물결이 일었다. 걱정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바람이 거세졌다.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독도의 물결이었다. 순간순간 변하는 도깨비 같은 바다를 경비대원들은 군대 보낸 여자친구의 마음과 같다고 하였다.
예측 불허의 파도를 헤치고 멀리서 독도를 향해 바다를 날아오는 쾌속선이 보였다. 일렁이는 너울만큼 마루의 심장도 뛰기 시작했다. 여객선은 빠르게 독도항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바람이 거세지고 너울이 높아지면서 여객선의 접안불가 판정이 내려졌다.
배를 독도항에 접안하지 못하자 관광객들이 선실에서 갑판으로 나와 독도를 바라보고 사진을 찍었다. 관광객들 틈에서 그녀가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마루는 한 발 앞으로 나서며 그녀를 향해 두 팔을 흔들었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의 손짓에 응답하였다. 그러나 정작 그녀는 경비대원 옷이 똑같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마루는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으려고 모자를 벗어들고 흔들었다. 그때야 그녀가 두 손을 번쩍 들고 흔들었다.
다시 울릉도로 돌아간다는 선내 방송이 나왔다.
-본 여객선은 파도가 높아 독도항에 접안하지 못하고 다시 울릉도항으로 돌아갑니다. 승객 여러분은 선실로 들어가주시기 바랍니다.
그녀는 마지막에 선실로 들어가면서 손가락 두 개를 펴보였다. 그는 무슨 뜻인가 알쏭달쏭 하였다. 그들의 만남은 그렇게 생이별이었다. 마루는 바다로 뛰어들어 그녀에게 헤엄쳐가고 싶었다.
여객선은 빠르게 시야에서 사라지고 그는 독도가 가라앉는 것 같은 절망감에 빠졌다. 다시는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동도와 서도 사이 삼형제바위에 부딪쳐 흘러내리는 파도처럼 쉼 없이 눈물이 흘렀다.
동해에 침몰한 난파선 같던 마루는 오후 여객선이 온다는 소리에 선착장으로 내려갈 근무준비를 하였다. 울릉도에서 12시40분에 출발한 여객선이 2시 조금 넘으면 독도에 도착한다. 그는 생기 없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마지막에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오전하고 파도는 별 차이가 없어 오후에도 선착장에 서서 바다에 떠있는 여객선의 관광객들에게 손이나 흔들어주면 될 일이었다. 멀리서 여객선이 다가와 역시나 부두에 접안을 못하고 선착장 앞바다를 한 바퀴 선회하였다. 잠시 머물며 관광객들이 독도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씩 찍으면 떠나갈 배였다.
그러나 선착장 앞바다를 한 바퀴 돈 여객선은 독도항으로 다시 돌아와 접안을 시도했다. 어느새 바람이 잦아들어 여객선이 독도항에 접안하고 밧줄을 선착장 말뚝에 단단히 묶었다.
관광객들이 하나둘 독도를 밟으며 양팔을 높이 들고 환호했다.
-와. 독도에 왔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감격에 겨운 소리를 질렀다. 육지에서 멀긴 먼 섬이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 87킬로미터이고 포항에서 울릉도까지는 217킬로미터이다.
삼백여 명의 관광객들이 내린 독도선착장은 시끌벅적하였다. 여객선에서 마지막 승객이 내리고 마루가 돌아서 두어 걸음 걸었을 때 누군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도마루!
귀에 익은 꿈에도 못 잊을 목소리가 뇌를 때리며 가슴에 울려퍼졌다.
그는 뒤돌아서며 밍크고래처럼 입이 열렸다.
-정리아!
일출의 해처럼 환하게 웃으며 그녀가 바라보고 있었다.
마루가 달려가 힘껏 껴안고 몸을 흔들었다.
-아 숨 막혀 !
그는 갈비뼈가 으스러지도록 그녀를 안고 한참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관광객들이 독도항에 머무는 30분이 물속으로 사라지는 돌고래의 모습처럼 짧았다. 마루는 그녀를 만나기는 만나 얼굴을 보긴 봤는지 아련하기만 했다. 관광객들은 한 사람씩 여객선에 오르고 독도항은 썰렁해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분명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마지막 순간까지도 입을 열지 않았다.
모든 승객이 배에 오르고 마지막으로 남은 그녀에게 승무원이 어서 타라고 손짓했다. 마루는 차마 그녀의 손을 놓지 못하고 끌어당겼다.
배에 오르려던 그녀가 속삭였다.
-나 배 타지 말고 내일 갈까?
그는 앞뒤 가리지 않고 대답부터 했다.
-응, 그래 진짜 내일 가라!
그녀는 농담이 아니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망설임 없이 독도항으로 다시 내려섰다. 의아한 표정을 짓던 승무원들은 그녀를 두고 출항하고 경비대원들은 환호하며 소리를 질렀다.
-와우, 멋지다!
경비대장은 그에게 특별히 외출을 허가해주었다. 저녁 6시까지 복귀 조건이었다. 그는 독도항에 해산물을 팔러 나와 있던 서도의 독도리 이장에게 방부터 부탁하였다.
-그래, 도 일경 애인인가?
-네, 그렇습니다.
독도에서 특별외출을 받았지만 갈 곳은 없었다. 그는 경비대원들의 뜨거운 함성을 들으며 그녀에게 경비대 숙소 구경부터 시켜주었다. 경비대 옥상 헬기장에 올라 나란히 동해를 바라보았다. 아득히 일본 땅이 보이는 것 같았다. 총을 들고 경비대원들이 일본을 향해 경계를 서고 경비대의 대공포도 동쪽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경비대 구경을 마친 마루는 다시 선착장으로 내려왔다. 경비대원들은 인어라도 본 것처럼 실실 훔쳐보고 있었다. 그녀가 분명히 할 말이 있는 것 같아 마루는 궁금했다. 휑한 선착장보다는 몽돌해변이 더 운치가 있을 거 같아 그녀를 데리고 몽돌밭으로 갔다. 건너편에는 서도의 이장댁이 보이고 동도와 서도 사이 바다가 잔잔하게 출렁였다.
그녀는 백일기념선물로 사준 하트금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100일만해도 이별이란 단어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불경스런 말이었다. 그는 경비대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한적한 곳에 그녀를 앉히고 옆에 앉아 살며시 손을 잡았다. 촉촉한 눈망울이 반짝였다.
리아는 말이 없고 파도가 대신 조잘거렸다.
-쏘아! 쏘아아!
그녀가 입을 열며 마루를 바라봤다.
-나 할 말이 있는데...
-응, 말해봐!
-듣고 놀라지 마라!
-그래 무슨 일인데?
-...
그녀는 끝내 입을 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마루는 그녀를 껴안고 입술에 살짝 키스를 했다. 다이아몬드보다 귀한 시간은 소리 없이 사라지고 서도에서 독도이장이 건너오려고 준비하는 것이 보이더니 순식간에 나룻배가 건너와 독도선착장에 배를 댔다.
그녀를 태우고 손을 놓지 못하는 마루가 안쓰러운지 이장님이 함께 타라고 하였다.
-도 일경도 타 내가 다시 건네다줄게!
마음은 수만 번 올라타고 싶었지만 경비대로 복귀할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를 실은 나룻배가 서도나루터로 돌아가는 동안 단 한번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서도에 내린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견우와 직녀라도 된 듯 눈물이 삥 돌았다. 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입에 손나발을 대고 외쳤다.
-정리아! 사랑해! 리아야! 사랑한다!
서도에서 메아리가 돌아왔다
-사랑해... 사랑한다. 리아야!
메아리가 가슴을 도려냈다.
그녀의 대답이 바람을 타고 왔다.
-미안해... 마루야!
파도도 숨을 죽인 바다 위로 그녀의 눈물겨운 목소리가 속삭이듯 들렸다. 마루는 그녀가 서도 민가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경비대 계단을 뛰어올라가 복귀하였다. 경비대원들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경비대장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마루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어 밤 8시부터 보초근무를 자청하여 나갔다. 독도등대가 도깨비불처럼 반짝이고 오징어잡이 배들 집어등이 어둠속 수평선에서 빛났다.
서도의 민가로 들어간 그녀는 잠을 잘 이루고 있을까? 그의 생각은 온통 독도리 이장댁에 있었다. 정리아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그녀는 왜 서도에서 미안하다고 외쳤을까? 독도의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처럼 헤아릴 수 없는 생각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밤 10시에 경계근무를 마치고 경비대 숙소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지만 눈망울이 북극성처럼 빛났다. 억지로 눈을 감아도 서도의 민가가 환하게 가슴에서 빛을 발하였다. 그는 몽유병 환자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독도선착장으로 내려갔다.
마루는 서도선착장에서 서성이는 그림자를 별빛 속에서 발견했다. 멀리서 보아도 정리아라는 것이 확연하였다. 마루가 손을 들고 흔들었지만 그녀는 알아보지 못했다. 가슴이 터질 듯 같아 소리쳐 “정리아!”를 부르고 싶었지만 숙소를 이탈한 것이 소리 지름과 동시에 발각될 일이었다.
그녀가 알아차리길 바라며 팔이 아프도록 흔들었다. 동도와 서도 사이의 파도 소리만 끊임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며 그의 가슴을 애달프게 하였다. 그는 20분 이상 양팔을 흔들었지만 서도에서는 동도의 선착장이 보이지 않는지 그녀는 끝내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포기하고 돌아서 경비대로 향하였다. 서너 걸음을 걸어가다 아쉬움에 고개가 돌아가고 눈길이 갔다. 그는 뭔가를 발견하고 다시 선착장 끝으로 뛰어갔다. 건너편에서 그녀가 두 팔을 흔들고 펄쩍펄쩍 뛰며 소리쳤다.
-도마루! 마루야! 여기!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파도를 넘어 바로 옆에서 소리치는 것처럼 들렸다. 고요한 독도 밤바다의 이장댁 불빛이 가로등처럼 바닷물에 반사되며 물결에 흔들렸다. 어둠속에서 서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그녀의 목소리에 홀린 마루는 군화를 벗고 군복을 벗었다. 속옷차림으로 어두운 바다에 뛰어들어 헤엄치기 시작하였다. 수영에는 자신 있어 동도와 서도 사이의 바다는 쉽게 건널 것 같았다. 그는 한 오십 미터까지는 힘차고 빠르게 헤엄쳐 나아갔다. 힘이 부칠 쯤 다왔겠지 생각하고 고개 들어 서도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서도는 더 멀어지고 있었다. 다시 동도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서도나루터에서 꼼짝 않고 기다리는 리아가 눈에 아른거렸다. 그는 온힘을 다해 더욱 빠르게 헤엄쳤다. 그러나 얼마 못 가 힘이 빠져 물살에 떠내려갔다. 이제 죽는구나 생각하고 마지막 기력을 다해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완전히 힘이 빠진 두 팔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반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물속으로 가라앉는 몸을 물 위에 눕히고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물살에 떠내려가면서도 밤하늘 별빛이 반짝일 때마다 동도와 서도 바다를 메울 만큼 그녀 사랑하는 마음을 바다에 뿌렸다. 마루는 손과 발을 살살 움직이며 가까스로 바다에 떠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물살에 동도와 서도 사이의 좁은 바다를 벗어나 넓은 난바다로 떠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갑자기 피도가 높아지고 물이 차가워졌다. 그는 짠물을 한없이 삼키며 표류하였다.
리아는 오랫동안 기다려도 마루가 선착장에 도착하지 않는 것이 수상해 급히 이장님을 깨워 보트 타고 마루를 찾아 나섰다. 이장은 물살이 흐르는 방향을 감지하고 직감적으로 삼형제바위 쪽으로 보트를 천천히 몰아갔다. 리아가 보트 앞에 서서 손전등으로 바다를 비추며 눈 부릅뜨고 마루를 찾았다.
어두운 바다에서 손전등에 반짝이는 물체가 하나 보였다.
-이장님! 저기요.
보트의 속도를 줄이고 리아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쪽으로 보트를 몰았다. 물 위에서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마루가 보였다. 그는 바다에 드러누워 천천히 발과 손만 움직이며 물속으로 가라앉지 않도록 배영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리아가 손을 내밀자 덥석 손을 잡았다. 독도이장과 그녀가 마루를 힘겹게 보트 위로 끌어올렸다.
그는 바닷물을 토했다.
-우웩! 우웩!
리아가 그의 등을 두드렸다.
-탁! 탁! 탁! 탁! 탁! 탁! 마루야 정신 차려!
세게 등짝을 때리는 소리가 동도와 서도 사이에서 메아리쳤다. 독도이장은 빠르게 보트를 몰고 서도 민가로 향했다. 이장댁에 도착해 왈칵왈칵 두어 번 바닷물을 토한 마루의 정신이 돌아왔다.
그는 리아의 손을 꽉 잡고 놓지 않았다.
-아이고 죽는 줄 알았다.
이장님이 마루의 몸을 모포로 감싸주며 말했다.
-도 일경! 아가씨 아니었으면 자네는 벌써 물고기밥 되었을 거여. 무슨 맘먹고 동도에서 서도를 헤엄쳐 건널 생각을 했을까? 아직까지 한 번도 헤엄쳐 건너온 사람은 없었어, 가까워 보여도 얼추 150미터는 될 거여...
마루는 자존심이 상한 듯 대꾸했다.
-튜브만 있었어도 쉽게 건너왔을 겁니다.
리아가 마루에게 꿀밤을 한 대 먹였다.
-잘한 짓이다.
두 사람이 도란도란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는 것을 보고 이장님은 눈치껏 자리를 피하며 얘기했다.
-도 일경! 경비대로 돌아가야 하니까. 해뜨기 전에 내가 보트로 실어다줄게 그동안 두 사람은 못다한 얘기 나눠...
독도이장이 방을 나가자 그녀가 마루의 품에 안기며 키스를 하였다. 장미향 가득한 그녀의 입술이 짠물이 밴 입술을 달달하게 녹였다.
마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왜 온 거야, 두 번씩이나?
-응. 너에게 미안하다고 꼭 말하고 싶었어...
뜸을 들이던 그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마루야! 미안해 내가 갑자기 연락을 끊어서 많이 화났지?
-그래 많이 힘들었다.
또 다시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다 애처롭게 기다리는 마루의 눈을 보고 입을 열었다.
-마루야! 나 혈액암이래 의사가 앞으로 3개월 살면 많이 산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3개월 안에 하라고 당부했어...
-신도 무심하지 왜 젊은 너에게 그런 큰병을 주었을까?
-글쎄. 내가 천벌을 받은 거겠지!
그는 어떤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내가 꼭 낫게 해줄게 힘내서 방법을 찾아보자.
-마루야! 고마워 하지만 오늘이 딱 삼 개월째야. 너에게 미안하단 말을 못하고 죽으면 죽어서도 영원히 후회할 것 같아서 여기까지 너를 찾아온 거야.
그녀가 손바닥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진심으로 사랑했나봐!
그는 빠르게 기억을 더듬어 계산하였다. 삼 개월 전이면 그녀가 연락을 끊은 시기였다.
-걱정 마! 내 피를 다 뽑아서라도 너를 살릴게!
그녀가 희망이 없는 아픈 사랑을 마루 가슴에 남기고 싶지 않아 혈액암 진단을 받고 소식을 끊었다는 얘기를 나누는 사이 동쪽하늘에 붉은 기가 돌고 이장님이 방문을 두드렸다.
-도 일경! 이제 건너가야 한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리아가 선착장까지 따라와 하트금목걸이를 풀어주며 속삭였다.
-내가 살아서 다시 우리가 만나면 그때 나의 목에 다시 채워줄래!
마루는 손바닥을 펴고 하트금목걸이를 받으며 대답했다.
-내가 목에 걸고 있다 꼭 너에게 돌려줄게... 나에게 사랑을 보여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알았지?
-그래 니가 제대할 때까지는 꼭 살아서 기다릴게!
마루는 경비대로 돌아와 근무준비를 하였다. 동해가 꽃잎을 뿌린 듯 붉게 물들며 해가 바다에서 쏙 올라서는 순간 경비대에 비상이 걸렸다. 서도의 독도리 이장댁에 긴급환자가 발생해 헬기지원을 요청하라는 명령이었다.
경비대원들은 독도선착장에서 대기하다 환자가 도착하면 경비대 옥상의 헬기장까지 업고 이송해야 했다. 마루는 불길한 예감에 가장 먼저 독도선착장으로 내려갔다.
이장님 보트가 다가오고 보트에 리아가 누워있었다. 그녀는 피를 토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척 고통스러워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악을 지르며 소리쳤다.
-제발 누가 나 좀 죽여주세요!
고통에 몸부림치는 리아를 업고 마루는 경비대 계단을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걸어서 오르기도 힘든 계단이었다.
-정리아! 정신 차려. 아파도 참아야 해, 곧 헬기가 올 거야!
-마루야 미안해! 끝까지 너를 힘들게 해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
온몸으로 파고드는 고통을 참느라 꼭 다문 그녀의 입에서 처절한 고통이 새어나왔다
-음! 으음! 으흠!
그녀의 신음이 마루의 심장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대신 아플 수만 있다면 죽는 한이 있더라도 그러고 싶었다.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서도 쉬지 않고 헬기장까지 그녀를 업고 뛰어올랐다. 무엇이 그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했는지 알 수 없었다.
포항에서 구조헬기가 독도까지 오는 데는 약 2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의 손을 양손으로 꼭 잡고 서쪽하늘만 눈이 빠지도록 쳐다봤다. 아침 해가 떠올라 독도를 환하게 비췄다.
그녀는 그의 손을 붙들고 간절한 눈빛으로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마루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려 그녀의 얼굴에 떨어졌다. 고통을 참으면서도 그녀는 손으로 마루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멀리서 헬기 프로펠러가 동해의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독도 상공에 진입한 구조헬기가 한 바퀴 선회하고 경비대 옥상 헬기장에 착륙하였다. 구조대원들이 그녀를 헬기에 싣는 동안 그는 경비대장을 붙들고 통사정하였다.
-대장님! 저도 병원까지 따라가게 해주십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빨리 작별인사나 해!
-대장님! 제발 부탁입니다.
-도 일경! 다시는 애인 안 보고 싶나? 헬기 타고 독도를 벗어나면 탈영이야!
마루가 경비대장을 붙잡고 사정하는 사이 헬기는 이미 이륙해 떠오르고 있었다. 생이별의 아픔은 헬기가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슴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그는 하트금목걸이를 손에 쥐고, 태어나 처음으로 세상의 모든 신께 기도했다. 마루는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얻어맞으면서까지 다시 휴가를 보내달라고 떼를 썼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경비대장은 규정에 없는 일이라 절대 불가라고 소리쳤다.
도마루는 멍하니 서쪽하늘만 바라보다 해가 넘어가자 경계근무를 교대하러 나갔다. 총을 들고 경계를 서면서도 그녀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침에 헬기로 이송된 그녀가 저녁이 되도록 연락이 없는 것은 아마도 병원 도착 전에 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깊은 절망과 좌절감에 빠졌다.
교대근무자가 초소에서 마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경비대장에게 즉각 보고하였다. 경비대장은 불길한 예감에 머리가 오싹했다. 경계근무지 근처에서 도 일경 수색작전을 펼쳐 절벽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은 도마루를 발견했다.
경비대장이 즉시 헬기지원 요청을 하고 두 시간 만에 헬기가 독도 상공에 나타났다. 구조헬기는 어둠속애서 등댓불을 보고 접근해 경비대원들이 비추는 손전등 유도신호를 따라 가까스로 경비대옥상 헬기장에 착륙하였다. 경찰청 헬기는 의식이 없는 도마루 일경을 이송하기 위해 무리한 야간비행을 감행했다. 다행히 헬기가 독도헬기장을 이륙해 어둠을 뚫고 울릉도로 기수를 돌려 날아갔다. 독도 앞 바다는 어둠과 안개가 짙게 깔려 사방을 분간하기가 어려운 기상상태였다. 그러나 헬기는 어둠속으로 새처럼 사라졌다.
포항종합병원으로 후송된 리아는 응급치료를 받고 통증이 사라지면서 안정을 되찾았다. 그녀는 독도에서 하룻밤을 더 머물며 말기암 환자들이 맞는 모르핀주사약이 떨어져 극심한 고통을 참지 못하고 이장댁 방바닥을 뒹굴었다.
독도에서 마루와 이별인사도 못하고 긴급 후송된 것이 무척 아쉽고 안타까워 어떻게든 도마루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그녀는 심란한 마음에 마지막 뉴스 속보에 귀를 기울였다.
긴급뉴스 속보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저녁 독도경비대원이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경계근무 중 절벽으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중상을 입은 경비대원을 포항으로 후송하던 구조헬기가 독도에서 이륙한 후 5분 만에 통신이 두절되었습니다. 지금 이 시각 해군은 함정을 동원해 야간수색작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헬기 탑승자는 기장과 부기장. 응급구조사 그리고 경계근무 중 추락한 도마루 일경으로 밝혀졌습니다. 헬기와 함께 실종된 네 사람의 생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텔레비전으로 긴급속보를 듣던 리아는 환자가 도마루라는 말에 까무러쳤다. 모두 자기 탓인 것만 같았다. 독도 헬기장에서 경비대장에게 헬기를 함께 타고 가겠다고 사정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라 괴로웠다.
해군 함정 수십 척이 투입돼 독도와 울릉도 인근을 수색 중이란 뉴스를 반복하였다. 새벽 3시경에 헬기들이 어두운 하늘에 라이트를 비추고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를 내며 포항종합병원 상공에 나타나 병원헬기장에 착륙하고 응급실 쪽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녀는 무작정 응급실로 뛰어갔다.
그녀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경찰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독도 헬기사고 환자들입니까?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리아가 흥분해 소리쳤다.
-나는 독도경비대 사고자 도마루 애인입니다.
경찰은 애인이란 말에 긴가민가하면서도 얘기를 해주었다.
-생존자 한 명을 독도 앞바다에서 구조했는데 아직 신원파악이 안 돼 누군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 내가 들어가 직접 확인 할게요?
-안 됩니다. 내가 확인하고 와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경찰관은 들어가서 한참이 지나도 나오지 않았다. 리아는 응급실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애를 태웠다. 한참 후에 경찰관이 고개를 숙이고 나왔다.
-독도 경비대 도마루가 맞냐고요?
-아닙니다. 다른 분으로 신원 확인되었습니다.
리아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한 시간 후에 다시 긴급헬기가 구조자를 싣고 날아왔다. 그러나 사망자였다. 도마루는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하늘만 바라보며 애를 태웠다. 30분 후에 헬기가 다시 나타났다. 위급한 환자가 도착해 응급실 의사와 간호사들이 헬기에서 환자를 내려 응급실로 신속하게 밀며 들어갔다.
그녀는 환자이송카트를 따라 뛰며 환자 얼굴을 확인했지만 그 구조자도 마루가 아니었다. 그 환자는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사망하였다. 마루만 마지막까지 구조되지 않고 있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어서 헬기가 다시 나타났다. 그녀는 앞뒤 가리지 않았다. 마루를 싣고 오는 헬기가 분명하다는 생각해 헬기 앞까지 뛰어가 얼굴을 확인하였다. 분명한 도마루였다. 그는 의식이 없는 심정지 상태였다. 그녀는 마루의 환자이송카트를 잡고 의사, 간호사와 함께 뛰었다.
추락한 헬기에서 필사적으로 탈출한 네 사람은 바다를 표류하다 8시간 만에 해군 함정에 차례로 구조되었다. 그러나 기장과 부장기장은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하고 응급구조사는 바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 마지막으로 해군 함정에 발견돼 헬기로 이송해온 마루는 병원에 도착해서도 의식이 없었다.
의사는 땀을 뻘뻘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해 30분 만에 마루를 살려냈다. 그가 눈을 뜨고 병실을 두리번거리다 눈앞에 서있는 리아를 보고 소리쳤다.
-리아! 니가 어떻게 여기 있어?
-나도 여기로 후송돼 치료받고 회복된 거야!
죽은 줄만 알았는데 그녀가 눈앞에 살아있었다. 리아는 마루의 손을 꼭 잡고 눈도 깜박이지 않고 곁을 지켰다. 리아의 정성어린 간호를 받은 마루는 빠르게 회복되었다.
마루는 며칠 만에 독도경비대로 복귀하고 리아는 병원에서 퇴원해 서울 집으로 올라가 바로 짐을 쌌다. 그리고 다시 포항으로 내려와 울릉도행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그녀는 울릉도에서 생수를 가득 사 싣고 독도로 들어갔다. 마루와 독도 경비대원들이 모두 마중 나와 애인을 만난 듯 반가워하였다. 독도경비대원들은 피자나 치킨보다 생수를 더 좋아했다.
그녀는 독도이장님을 붙들고 의사가 말한 시한부 인생 유효기간은 이미 끝났으므로 사는 날까지 독도에서 살게 해달라고 부탁해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여객선이 오는 시간에 독도선착장으로 이장님을 따라가 기념품도 팔고 독도 해산물도 판매하며 매일 두 번씩 마루를 만날 수 있었다.
독도에서는 서도의 물골샘이 유일한 생명수였다. 리아는 날마다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이 하루의 생명이길 소망하며 하루하루 생명을 연장해갔다.
도마루는 해류를 타고 떠내려 온 울릉도 천년향나무를 주워 여러 날 독도를 조각해 동도와 서도가 완성되자 리아에게 선물했다.
-정리아! 동도와 서도가 하나의 섬이 될 때까지 나와 함께해줘!
-도마루! 파도가 독도를 깎아 다 없어질 때까지 사랑할게.
마루가 망설이다가 리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니가 포항으로 후송 중에 사망한 것으로 생각하고 경계근무 중에 너를 따라가려고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왜 그런 못된 생각을 했어?
-나는 우리 사랑에 목숨을 걸었는데, 이제 너도 죽으면 안 돼!
리아가 마루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마루는 목에 걸고 있던 하트금목걸이를 리아 목에 걸어주었다.
“철썩!” 독도 파도가 방파제를 넘어 두 사람을 흠뻑 적셨다.
-끝-
송주성 소설가
2014년 제1회 금샘문학상 대상. 작품 활동 시작
2018년 제6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제1회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장편소설 <직지 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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