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기침
송주성 (소설가)
어느 날 술을 마시고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가 저녁밥상을 차리며 심심하게 말했다.
-나 갑상선암이래!
-그럼 죽어야지!
아내가 밥을 푸다 밥주걱을 멈추고 쌀밥 위로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나는 농담인줄 알고 무심히 대답해 버린 것이다. 며칠 후 아내는 6시간의 대수술을 받았다. 갑상선 두 개를 모두 제거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있었다. 그날 밤부터 아내의 목에 “구구! 구구!"구구대는 도시의 비둘기 한 마리가 둥지를 틀고 산다.
나는 아내의 기침을 피해 거실에서 홀로 자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아내는 목에 가시라도 수십 개가 박힌 듯 고통스러운 기침을 해댔다. 잠을 이룰 수 없는 짜증스런 소리였다. 나는 손으로 귀를 틀어막고 잠이 들었다.
“덜컹!” 안방 문이 열리고 아내가 목을 부여잡고 뛰쳐나왔다. 숨을 쉬지 못했다. 기침도 하지 못했다. 찹쌀떡을 먹다 기도가 막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한 사람 같았다. 곧 숨이 넘어갈 듯 했다. 토끼처럼 후다닥 일어나 아내의 등을 세게 두드렸다.
-으.. 으.. 으.. 으..
아내의 숨이 멈추고 있었다. 등을 두드리며 선 채로 아내의 입에 인공호흡 하듯 공기를 불어넣었다. 목에 바늘구멍이라도 뚫린 듯 가느다란 숨을 쉬기 시작했다. 물병을 꺼내 머그컵에 물을 따랐다. 왼손이 덜덜거리며 물의 반은 방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내가 물 한 모금을 마시고 겨우 입을 열었다.
-이제 괜찮아요.
다행히 아내가 살아났다.
소파에 앉아 숨을 고르는데 아내가 끊어질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요..
아내가 안방 문을 닫고 들어갔다. 나는 일어나 다시 안방 문을 반쯤 열어놓고 누웠다. 아내는 잠이 들었는지 목에서 쇳조각 긋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우리는 밤마다 실랑이를 한다. 아내는 내가 잠 못 잘까봐 문을 닫고 나는 아내의 숨이 끊어질까 무서워 안방 문을 열어놓고 자려고 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토끼귀가 되었다. 밤새 유리조각 뱉는 듯한 아내의 기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잔다. 기침 소리가 안 들리면 잠에서 깨, 안방 문을 열고 아내의 얼굴을 살며시 바라본다. 목덜미가 가만가만 오르내리는 것을 확인해야 다시 잠이 온다.
아내는 기침이 시작되면 좀처럼 멈추지 않는다. 나의 갑성선을 ‘뚝’ ‘뚝’ 잘라 아내의 갑상선을 만들어주고 싶다. 기침을 심하게 하는 밤이면 목이 부어 기도가 막히고 숨이 끊어질 듯한 위험한 순간이 한 번씩 반복된다.
아내는 갑상선 나비가 없는 밤나비다. 불안한 숨을 쉬며 밤새 고통의 꿈길을 날아다닌다. 아이들 성공의 꽃, 가족들 건강의 꽃, 이꽃 저꽃 아내가 꿈꾸는 꽃을 밤새 찾아다녀도 나는 좋다. 토끼귀로 아내의 고통스런 꿈길 비행을 감시하며 잔다.
“뚝!” 별이 떨어지는 소리에 토끼처럼 후다닥 잠에서 깼다. 새벽 2시 순교자처럼 절정의 순간에 목을 끊어버린 핏빛 동백꽃이 거실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송주성 소설가
2014년 제1회 금샘문학상 단편 <금샘>으로 대상 수상하고 작품활동 시작.
2018년 제6회 직지소설문학상 대상.
2019년 제1회 무예소설문학상 최우수상.
저서
장편소설<직지 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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