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이모저모

2024 산춘문예 당선소설집

소설가 송주성 2024. 1. 24. 10:39

 2024신춘문예당선소설집

                                                      한국소설가협회 편

 

 

                                            참신하고 새로운 단편서사의 미학!!!

 

판형 신국판, 542

가격 20,000

ISBN 979-11-7032-101-9(03810)

발행일 2024 1 26

()한국소설가협회

 

이 책은

2024년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스물네 편을 수록한 작품집이다. 신춘문예의 어려운 심사 관문을 통과한 이 작품들은 새로운 문제의식과 빛나는 문장으로 우리 시대의 고민을 성실하고 진지하게 묘사하고 있다.

2024년신춘문예 당선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은 사물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안목과 깊고 진지한 사유, 탄탄한 주제와 구성으로 단편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면서, 오래 갈고 닦은 문체의 발화법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마음껏 펼치고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소설작법을 고수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소설문법을 파괴하는 실험적인 소설, 영화적인 상상력과 이미지로 시공을 마음껏 넘나드는 소설, 마치 게임을 하듯 유희적인 서술을 견지하는 등 다양한 작품들의 다양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독자들은 2024년신춘문예 당선소설집에 실린 작품들을 읽으면서 소설의 새로운 진화와 성숙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치열한 신인정신으로 무장한 패기 넘치는 작품들과 만날 수 있다. 또 한편으로는 우리 주변의 인간 삶에 공감하고 대화하고 성찰하는 모습을 생생한 개성으로 역은 단편 서사를 통해 흡족하고도 기분 좋은 소설적 성취를 맛보게 될 것이다.

2024년 신춘문예소설당선소설집은 이 시간에도 소설가가 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하는 소설가 지망생들에게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목차

책머리에 | 김호운(한국소설가협회 이사장)

강원일보 임희강시계視界를 넘어

경남신문 곽민주인어의 시간

경상일보 강세영마리모

경인일보 이준아하찮은 진심

경향신문 허성환i

광남일보 김진표필인더블랭크

광주일보 유재연벽장 밖은 어디로

국제신문 김슬기공존

농민신문 곽재민내규에 따라

동아일보 임택수오랜 날 오랜 밤

매일신문 홍기라안나의 방

무등일보 정대성러닝

문화일보 기명진유명한 기름집

부산일보 조성백6이 나올 때까지

불교신문 김성희나비춤

서울신문 이지혜북바인딩 수업

세계일보 유호민붉은 베리야

영남일보 이수정코타키나발루의 봄

전라매일신문 이은정커튼이 없는 방

전북도민일보 김하진우는 여인

전북일보 신가람미지의 여행

조선일보 권희진러브레터

한국일보 김영은말을 하자면

한라일보 윤호준상구와 상순

 

본문 속으로

혜진은 대단한 부자가 되기를 꿈꾸며 집 주인이 된 건 아니었다. 그저 원룸이 불편했고 전세금을 떼이는 게 불안했다. 저녁으로 먹은 생선 냄새 정도는 환기시킬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의 주거 시설에서 살고 싶었다. 혜진은 비싸지 않은 외곽의 아파트를 매수했고 그곳은 곧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다. 아파트 곳곳에 안전진단을 준비한다는 현수막이 붙었고 여러 부동산에서 매도를 권유하는 전화를 걸어왔다.

혜진은 자연스럽게 갈아타기를 거듭하며 금세 목돈을 마련했다. 적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였다. 혜진은 스스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외에 투자한 낡은 다세대 주택도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강 할아버지 사건이 터졌지만 좀 놀랐을 뿐이지 금전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건 아니었다. 상만은 이런 혜진의 사고방식에도 낯설다는 표현을 했다. (시계(視界)를 넘어)

 

아내의 손을 꽉 잡았다. 내 손과 아내의 손이 닿은 공간에 땀이 찼다. 우리의 모습을 차분히 지켜보고 있던 방사선사가 화면을 띄웠다. 우선 아기 크기를 재 볼 건데요. 여기 하얗게 보이는 게 위에서 본 머리뼈예요. 좀 더 내려오면……. 심장 뛰는 거 보이세요? 이쪽 아래가 배 부분이고요. 까맣게 보이는 게 위장이에요. 여기 보시면 양수를 먹기 때문에 위 안이 이렇게 차 있습니다. 여기가 머리고 이게 뒤통수, 요게 정수리, 이 안에 하얀 거 보이시나요? 이게 코뼈 부분인데요. 뼈를 확인하는 이유는 이 주수에 코뼈가 안 보이는 아기들이 다운증후군이나 염색체 이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서 확인하는 거예요. 같은 의미로 목뼈 뒤에 투명한 이 부분을 확인해야 하는데 아기의 척추 뼈 일부가 불완전하게 닫혀서 척추가 노출되는 선천성 기형으로 개방성 이분 척추거나 폐쇄성 이분 척추인지 보는 거예요. 아기가 태어났을 때, 배뇨장애, 하지마비 같은 증상이 올 수 있거든요. 목뼈가 굽지 않고 반듯하네요. 크기도 주 차에 딱 알맞은 크기구요. 좋아요. 아주 좋아요. (i)

 

빈소 한편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피곤함이 몰려왔다. 나는 집어 삼켜지듯 잠에 빠져들었다. 꿈을 꾸었다. 나는 어린 시절 살았던 파란 양철 대문 집에 누워 있었다. 옷가지들과 책가방과 참고서들이 옛 모습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그 사이에 20대에 썼던 물건들도 드문드문 섞여 있었다. 나는 꿈에서도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알지만 많은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가 사라지길 반복할 때마다 옛 마음이 되어 초조했다. 누군가 덕수야, 하며 잊고 있던 아버지의 이름을 나에게 다시 일깨워 줄 것만 같았다. 불쑥 스무 살 승환이 빈털터리가 되어 집으로 돌아와 울 것도 같았다. 꿈속에서의 나는 작은 몸뚱이를 가졌다. 현관문이 잘 보이는 쪽으로 몸을 가볍게 뒤집었다. 나는 현관 너머로 들려올 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빈 공간을 울리는 무수한 발소리 사이에서 고모의 것을 기다린다. 요란한 소리를 내는 알루미늄 문이 열리고, 하루의 고단한 냄새를 끌어안고 돌아올 고모. 나는 고모의 젊은 시절을 떠올렸다가 이내 나이가 지긋하게 든 고모를 떠올렸다. 푸들 밥도 주고, 물도 갈아주고, 오줌도 똥도 누는 것을 본 고모가 돌아오는 것 같았다가 곧 아닌 것이 되었다. 모두가 떠나는 그 집으로 고모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딱 손가락 두 개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고모는 내가 있는 곳으로 반드시 올 것이었다. 우리가 아직, 공존하고 있는 이곳에. (공존)

 

해수의 옆머리는 희끗희끗했지만 정수리는 하얗게 세어있었다. 만으로 아직 쉰이 되지 않은 나의 친구는 손가락 끝으로 백발을 탈탈 털고 손빗으로 빗어 넘기고는 모자를 도로 썼다. 빈손을 털었다. 모자 속에서 묵어버린 하루를 털어내려는 것 같았다. 손끝에 달라붙는 삶을 떨치려는 것 같았다. 주영이 보고 싶었다. 만나서 잔뜩 수다를 떨고 싶었다. 해수를 다시 보게 될 것 같지 않았다.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새치 많은 머리를 까맣게 물들인 주영을 만나 아무라도 좋으니 한 놈을 찍어서 실컷 험담을 하고 잔뜩 욕을 퍼부어 주고 싶었다.

나는 가방을 고쳐 메고 일어났다. 마침 택시가 보였고 팔을 들었다. 비틀거리며 걸음을 내디뎠다. 가방에 든 유리병 두 개가 꺾이는 관절처럼 덜그럭거렸다. 고소한 향은 아른아른 피어올랐다. (유명한 기름집)

 

이모네 집에 들어간 지 세 달쯤 지났을 때 윤재가 이모부에게 크게 혼났다. 그날은 이모부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았다. 도중에 이모부가 윤재를 때리려고 해 이모가 말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공부방으로 들어온 윤재가 테이블 앞에 주저앉았다. 윤재 눈에서 눈물이 한두 방울 떨어지는가 싶더니 줄줄 흘러내렸다. 소리 없이 우는 윤재를 보다가 나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왜 그랬는지 윤재가 하는 것처럼 숨죽여 울었다. 한번 터진 울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누군가 내 등을 다독이는 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자 윤재가 테이블 앞으로 몸을 숙인 채 내 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윤재의 눈에서도 계속 눈물이 흘렀다. 간식을 들고 온 이모가 우리 둘 사이에서 눈가를 훔치는 모습을 나는 봤다.

와달라는 윤재의 요청을 끝내 거절하지 못한 것, 머뭇거리면서도 뒤돌아 책방에서 나가지 못한 것, 이게 다 그 순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날 이후 나는 자주 울었고 또 웃기도 했으니까. 단지 그것뿐이라고 속으로 되뇌며 윤재에게 손을 흔들었다. (북바인딩 수업)

 

그건 그렇고 여기 16층은 조금 이상한 곳이다. 맥락 없이 서태지 사장님 같은 사람들을 떠오르게 만든다는 면에서 그렇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여기엔 어떤 기운들이 있는 게 분명하다. 높은 곳에 혼자 올라왔던 사람들이 남기고 간 고독의 흔적이랄까. 여기는 뭐 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도 없는 시시한 옥상인데도 사람들은 매일같이 이곳을 드나들며 그런 흔적들을 남겨두고 떠났다. 나는 그들이 출입할 수 있도록 밤새 잠가두었던 문을 새벽 6시에 열어두는 일을 했다. 그것 말고도 재떨이 통에 쌓인 담배꽁초를 비운 다음 가래침을 닦아냈으며 가끔 시간이 남으면 어설픈 화단에 질서 없이 자라난 잡초를 뽑거나 바닥을 쓸기도 했다. 그리고 자정이 되면 다시 문을 잠갔다. 옥상 열쇠는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 중 나에게만 있는 특별권한 같은 것이었다. 여기에서 죽은 노인을 발견하기 전까진 나는 그런 일들을 성실히 해냈다. (러브 레터)

 

 추천의 글

2024년 신춘문예에 당선한 소설가 여러분들이 앞으로 우리 사회를 밝게 맑게 만들어 주기를 희망합니다. 문학 작품 한 편이 나무 한 그루와 같다는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나무가 없으면 우리가 사는 지구는 사막이 됩니다. 그런 사막에서 인간이 살 수가 없습니다. 문학 작품은 그런 나무 한 그루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인정의 향기로 이어주어 인정이 메마른 사막이 되는 것을 막아줍니다.

-김호운(소설가·한국소설가협회이사장)

 

수록작가

임희강 곽민주 강세영 이준아 허성환 김진표 유재연 김슬기 곽재민 임택수

홍기라 정대성 기명진 조성백 김성희 이지혜 유호민 이수정 이은정 김하진

신가람 권희진 김영은 윤호준